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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9.12.10(화) -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스터디 뒷풀이 본문

건빵/일상의 삶

19.12.10(화) -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스터디 뒷풀이

건방진방랑자 2019. 12. 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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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밌고 신나던 한시 스터디를 함께한 인연들

 

 

임용고사 1차 시험이 끝나고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작년 같으면 1주일 사이에 지금은 군대에 가있는 단재학교에서 근무할 때 인연을 맺은 건호가 전주에 찾아와 12일 동안 시간을 보냈고 김형술 교수님과 중화요리집에서 공부에 대한 화끈한 대담을 나눈 회식이 있었으며 청주에 마련된 ‘The 앵두란 공간을 방문하여 앵두님의 근황을 청취하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자유의 시간이 남은 만큼 그간 하지 못했던 것들을 연거푸하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었는데 올핸 그렇게 활달하게 외부활동을 하진 않은 채 일주일이 흘렀다.

 

 

▲  작년엔 시험이 끝나자마자 1주째엔 정말 바쁘게 지냈다.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참여하는 이유

 

김형술 교수님과의 만나는 일은 충분히 할 만한데도 하지 못한 이유는 교수님이 스터디원들과 함께 맥주파티를 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쯤 하려나 기다리고 있었더니 시험이 끝난 지 2주일이 되는 123일의 화요일 저녁에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 시간을 아기다리고 또 고기다렸다.

 

 

▲  기다렸던 저녁 장소를 찾아 갑니다. 

 

 

이 날은 630분에 전주대 신정문 근처의 먹자골목에 위치한 고산한우에서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나는 620분에야 집을 나섰고 음식점에 도착하니 이미 교수님과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이런 자리를 은근히 좋아하지만 예전의 나였다면 꺼렸을 것이다. 4학년 학생들과는 스터디할 때나 회식을 할 때 마주치며 서로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기에 친밀하게 말한 적은 없기에, 어찌 보면 이런 자리는 교수님과 4학년 학생들의 의기투합의 자리로 남겨두고 나는 빠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불청객이 되지 않는 상황을 은근히 좋아한다. 변태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의 자세는 어색한 관계, 익숙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변곡점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데엔 에피쿠로스의 클리나멘Clinamen의 인연론을 깊이 체득한 데서 기인한다. 작년에 갑작스레 임용을 다시 준비하게 된 것이나, 교수님들이 하는 스터디에 참여한 것이나, 518일에 교수님이 갑자기 제안한 생맥파티에 참여한 것이나, 66일에 2학년 학생들과 내소사와 관음봉에 트래킹을 간 것이나, 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계획에서 벗어난 계획이자, 인연에서 엇나간 인연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엇나가고 삐거덕대며 휘청거리는 이 상황들을 무한정 긍정하며 좋아한다. 그렇기에 이 순간 만나는 모든 것, 그리고 하게 되는 모든 일들에 충실히 의미를 부여하며 달라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이었기에 이 날도 자리에 함께 참여하며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서 먹었고 교수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이다.

 

 

 

▲  4월에 스터디를 찾아와 하게 됐고 교수님과 2학년 아이들과 내소사에도 갔었다. 

 

 

 

각별한 스터디

 

이미 여러 글(한문이란 늪에 빠지다 / 소화시평 책거리 / 방학 중 서사한시 스터디를 마치며 / 뜨거웠던 한문 스터디를 마치다)에서 밝혔다시피 올해 스터디는 더욱 각별한 느낌이 있다. 나를 비롯한 현종이나 운호, 지인이와 예진이 같은 졸업생들이 몇몇 참여하긴 했지만 4학년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올 한해가 알차게 꾸려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놀란 점은 1월부터 스터디가 시작됐고 한 주에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씩 스터디가 진행됐는데 4학년 아이들은 방학 중이라 쉬고 싶을 텐데도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꼬박 채웠다는 사실이다. 내가 저들과 똑같은 4학년이었다면 나는 과연 참여했을까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임용이 이제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뭔 스터디? 내 공부하기도 빠듯한데...’라 생각하며 한치의 여유도 없었던 모습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아이들은 이 스터디를 중심에서 이끌어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이땐 뭐 이제 1년의 시작이니까 열정이 넘칠 때이니 한 거겠지.’라고 정리했다.

 

 

▲  왼쪽은 올해 1월에  스터디 시작할 때의 사진, 그리고 오른쪽은 11월 마지막 스터디의 사진이다. 

 

 

하지만 학기 중에 진행된 스터디 때도 그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7월 방학 기간에도 한 주에 두 번씩 진행하는 스터디가 진행되었으니 열정이 언제 있었냐 싶게 사라지고 슬럼프가 찾아올 만도 하다. 당연히 1월의 스터디 때와는 달리 많이 빠질 줄 알았는데 이때도 아이들은 열정을 전혀 놓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18일부터 시작된 스터디가 1114일에 1년의 스터디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아이들의 열정 속에 마무리 지어졌으니 어찌 감회가 없겠으며 아이들에 대한 동지애가 없겠으며 이 스터디에 대한 애정이 없겠는가.

그런 마음을 담아 이 날 열렸던 스터디 뒷풀이 회식 자리의 뜨거웠던, 그러면서도 한문에 대한 간절함이 넘실거렸던 순간들을 스케치해보도록 하겠다.

 

 

▲  이날 1차로 삼겹살을 먹고 2차론 생맥주집에 와서 먹게 되었다.   

 

 

 

2. 언젠가 사라질 장미로 예술작품을 만든다고?

 

 

1차 모임은 삼겹살을 먹으며 시작됐다. 고기를 구워 맛있게 먹고 있으니 문수 선생과 함께 운호가 들어오더라. 문수는 작년 2차 수업실연을 준비할 때 형태형 팀에 같이 배정되었기에 알게 되었다. 지금은 임실에 있는 중학교에서 근무하며 네 군데 학교를 순회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 올해 첫 발령을 받은 초임교사로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텐데 오늘은 교수님과 저번에 종강 모임을 하게 되면 꼭 인사드리러 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이 치료를 받고 있어 삼겹살은 일절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왔다는 말에 김형술 교수에 대한 의리 같은 게 느껴졌다. 문수는 삼겹살을 먹을 때만 함께 있다가 자리를 옮길 땐 임실로 떠났다.

 

 

맛있는저녁, 그리고 우리들의 흔적.   

 

 

 

시끄럽지 않은 2차 장소를 찾아

 

2차로 자리를 옮기려 할 때 교수님은 어디로 옮기면 괜찮을지를 물어보셨다. 그러자 여경이는 역전 할머니 맥주가 괜찮을 거 같아요.”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그곳은 너무 사람들이 많아 시끄럽기에 이곳처럼 조용해서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좋겠다고 하시더라. , 교수님은 형식적으로 그냥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니라 이렇게 모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였으니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원하셨던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공간을 좋아한다. 너무 많은 잡음이 들리고 술을 마시며 한껏 업되어 시끄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듯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좋다.

단재학교에 처음 왔을 때 교원 연수 차원에서 부산대 윤리교육과 교수인 이왕주 교수를 만나러 갔었다. 그때도 처음에 갔던 곳은 횟집이었는데 어찌나 시끄럽던지 무슨 말을 하는지 엄청 집중해야만 겨우 5/10 정도만 들릴 정도여서 이야기를 듣기보다 먹는 것에만 집중했었고 2차로 해운대에 있는 술집으로 옮기자 조금 조용해져서 그제야 이야기에 집중하게 됐던 경험이 있다. 사람들이 만나 이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도 분명히 의미가 있지만, 단순히 먹고 마시자는 의미로 만난 것은 아니니 조금이라도 조용한 곳에서 한 마디라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알 수 있었다. 이처럼 교수님의 바람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겠지.

그래서 밖으로 나와 문수를 보내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고기집 맞은편에 있는 가게를 보니 손님이 한 팀도 없더라. 그러자 교수님은 저 곳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셔서 그곳에 들어가 2차를 진행하게 됐다. 사람이 없으니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고 8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먹을 수 있다는 게 그 다음 장점이었다.

 

 

2차가 시작되었고 새 기분에 술도 술술. 

 

 

 

언젠가는 사라질 장미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

 

들어가선 여러 안주를 시키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에 깊은 인상을 안긴 얘기는 뭐니 뭐니 해도 교수님의 아내분께서 만들고 있는 패치워크patchwork라는 예술작품에 대한 것이었다. 패치워크란 직물들을 이어 붙여 예술작품을 만드는 기법인데 이런 예술작품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던 것이다. 작품 자체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두 가지 스토리텔링이 여러 가지 감상을 자아냈다.

첫째 장미를 붙여 만든 작품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장미란 조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생화를 말한다. 즉 살아있는 장미를 커튼에 여기저기 배치하여 만든 것이니 마치 장미커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그건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미묘한 심리와도 연관된 것이다. 작품이란 무언가? 그건 남에게 나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며 마치 산고의 고통을 느끼는 임산부처럼 온갖 고민 속에 한 땀 한 땀 혼을 담아내는 과정이 아니던가. 그러니 작품이란 나의 예술혼이 발현된 것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작품은 당연히 길이길이 남아 나를 증명해주길,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의미를 남기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우리에게 여러모로 추앙받는 작품들은 긴 시간 동안 살아남아 우리에게 오묘한 감상을 자아내는 작품들이 대다수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처럼 생화로 작품을 만들 경우엔 이런 상식을 철저히 벗어나게 되어 있다. 생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들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완전히 흔적조차 감추게 될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건 지금 당장은 작품으로서의 의미는 지닐지 모르지만, 완전히 사라진 뒤엔 더 이상 작품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된다. 이걸 과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사모님의 패치워크 작품. 새로운 기법이라 눈을 더 휘둥그레하게 만든다(유한달_10시_패치워크_150×165cm_2013).  

 

 

 

작품은 만들어진 시간과 함께 온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얼핏 139월에 단재학교 영화팀과 함께 관람했던 정서영전에서 학생이 당돌하게 던진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해 성심성의껏 대답해준 정서영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선 그때의 대화를 들어보자.

 

 

이건호: 나무탁자를 제가 봤는데, 제가 알기로는 낙서하고 막 그런 건데,

정서영: 나무 쫙쫙 긁어 놓은 거요?

이건호: ! 줄그어 놓은 거요. 어떻게 하면 예술이 되는 건지?(관중 웃음)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 궁금해 가지고. 우연히 보면 어떤 얘가, 양아치가 낙서해 놓은 것 같잖아요. 그걸 예술이라고 하니까, 어떻게 왜 예술이 되는지?

정서영: 글쎄요. 분명히 예술이다, 아니다 갈리는 순간은 그렇게 분명하게 답을 갖고 있지는 않을 거 같아요. ‘지금 이게 왜 예술이지?’하는 질문은 어떻게 이런 모양새가 예술이지?’라는 질문과 같잖아요. 내가 아는 예술의 모양새는 이런 건데, ‘적어도 이런 모양새는 갖춰야지 예술이지하는 이런 거잖아요. 근데 사실은 그런 모양새 자체는 사실은 예술인 것 같지만, 예술이 아닌 것이 되게 많고요. 그래서 사실은 그런 모양새로 판단한다고 하기보다도, 이런 모양새가 무엇을 맞춰서 왔는지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장에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수는 있는데요. 어떤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작품이 만들어진 시간과 함께 오기 때문에, 그 부분을 살펴볼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예술인지 아닌지, 예술일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판단할 수 있겠죠.

 

 

이 대화에서 나의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흔들어재낀 말이 바로 작품은 만들어진 시간과 함께 온다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우린 작품의 결과물만을 보며 그 작품을 평가하기에 바빴지만 실상 작품은 결과물만으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 고민의 과정, 그리고 만들던 순간의 과정들이 모두 어우러져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커튼에 붙인 장미라는 작품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보고 평가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울러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시간이란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작품이야말로 완성되어 절대 변하지 않는 가치를 담으려 했다기보다 시간과 함께 변해가는 그 모습 전체를 작품으로 구성하려 했다는 걸 알게 됐다. , 이 작품의 특징은 시간은 흐르고 모든 건 변해간다라는 지극한 사실을 작품으로 구현해놓은 거였다. 그리고 그건 마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그래서 부자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변모한 예술작품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을 담아낸 작품, 바로 여기에 예술의 또 다른 진면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나의 첫째 감상이다.

 

 

건호가 이 작품을 보고 위와 같은질문을 던졌고 당황스런 질문에 정서영씨의 진심이 묻어났다.  

 

 

 

3. 김지영과 크라잉넛

 

 

교수님의 아내분이 만드신 패치워크란 작품을 보여주며 이야기해줬는데 이때 두 가지 부분에서 감상을 자아냈다. 이전 후기에서 하나는 얘기했으니 여기서 또 하나의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맛있는 안주로 우리의 모임도 풍성해지고 있다.

 

   

 

JOB, 또 하나의 김지영

 

또 하나의 작품을 보여줬는데 그건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강인한 인상을 받았다. JOB이라 쓰여져 있고 O 안엔 아이를 안은 여인이 힘겹게 손을 뻗어 매우 간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작품에 대한 간단하게 설명한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얼 표현한 것인지 알게 됐으리라. 그만큼 한 장면에 효과적으로 글씨를 비치하고 인물을 배치한 덕에 우린 현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한복판으로 순식간에 초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혼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뭇 아내들의 아련한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다. 이른바 경단녀들 지금껏 쌓아온 자기만의 커리어가 있고 자신이 하고 싶고 살고 싶은 희망 찬 미래가 있음에도 불과하고 결혼을 했단 이유로, 육아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선 매몰차게 밀어낸 것이다.

 

 

유한달_JOB_패치워크_95×194cm_2013

 

 

 

최근 개봉한 ‘82년생 김지영도 바로 이런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어렵게 취직했지만 자신의 실력을 당당히 인정받으며 여자로서도 기획자로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며 그런 꿈은 바스라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기획자로서 그녀의 실력을 인정한 옛 직장 상사가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며 그녀에게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한다. 아이도 지금은 어린이집에 나가고 있으니 잠시 아이를 봐줄 사람을 구한다면 그녀도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일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하지만 초반에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곧바로 수용했지만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시어머니의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이처럼 결혼은 두 사람이 했음에도 이 사회에선 두 사람의 문제로 보지 않고 마치 모든 건 아내의 문제인양 치부하고 강요하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줌으로 이 사회가 여성에게, 아내에게 얼마나 가혹한 사회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바로 이렇게 잔혹한 현실을 영화는 2시간 분량의 이야기를 통해 담아낸 것인데 반해, ‘JOB’이란 작품에선 한 장면으로 간절한 마음을 낚아채 담아낸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이야말로 뭇 아내들에게 보여주는 절절한 마음이자, 그런 마음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뭇 남성들에게 보내는 진심인 것이다.

 

 

올해 본 영화 중 여러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준 영화다.  

 

 

 

크라잉넛이 전해준 충격

 

이렇게 한문을 공부하러 모인 사람들이 전혀 다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마치 예전에 민들레 모임에 나가 다양한 관심과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밤새도록 여러 이야기를 종횡무진하며 나누던 때가 스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문을 공부했다고 해서, 또는 임용을 공부하다고 해서 시종일관 한문얘기만 하고 임용얘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문이 문사철文史哲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감식안 속에 생산된 다양한 글이 담긴 것이듯, 우리의 관심이나 우리의 생각도 하나로 고정되지 않은 다종다양한 삶 속에 콸콸콸 쏟아 나오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한문이란 다종다양한 삶의 경험이 우러난 생각이 담긴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음악 이야기로 이어졌다. 처음으로 등장한 그룹은 바로 크라잉넛이다. 그렇지 않아도 소화시평 스터디 때 상권 57 악부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교수님은 지금의 악부는 시인들보다 음악가들이 노래를 통해 주로 써나가는데 그 중에서 크라잉넛이 대표적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OK 목장의 젓소란 노래를 한 번 들어보세요.”라고 알려줬었다. 그만큼 교수님은 크라잉넛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때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교수님도 어찌 보면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패턴을 지니고 있던 분이다. 정읍에서 나고 자라며 전주로 유학을 왔고 거기서 늘 좋은 성적을 받아 서울의 대학에 입학하며 청운의 꿈을 펼쳤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런 성공의 스토리대로 쭉 따라가 지금의 교수가 되었다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꼰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대학 동기들이 홍대클럽에 가자는 이야기를 했었고 그 말에 따라 한 번 따라갔다가 처음으로 마주한 뮤지션이 크라잉넛이라고 했다. 첫 모습은 머리는 번개라도 맞은 듯 노랗고 파랗고 정신이 없었고 옷도 여기저기 찢어지질 않았나 징이 박혀 있질 않았나 했다는 거였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그들을 보면 도무지 저런 패션과 몰골로 무슨 좋은 노래가 나오겠냐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미 노래를 듣기 전부터 온갖 고정관념이 마음의 장벽을 치게 만들었는데 막상 노래를 부르자 어느새 마음의 장벽은 사르르 녹아버렸고 그 노래에 심취하게 됐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때 교수님은 피상적으로 배우던 악부라는 시의 형식이 그들의 노래 속에서 완전히 구현되고 있는 것을 듣고서 감탄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음유시인이었고 그들은 현재 한국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그들의 노래 속에서 자유롭게 펼쳐냈던 것이다.

 

 

  교수님은 지금의 악부라고 하면서 이 노래를 추천해줬다. 음유시인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 유쾌하다. 

 

 

그로 인해 교수님이 기존에 지니고 있었던 소위 먹물 든 사람의 자의식을 깨버리게 됐다고 했다. 배운 사람에겐 배운 사람의 티가 나게 마련이다. 무얼 말하더라도 어렵게만 말하려 하고, 대중의 언어는 잃은 채 자신만의 지식을 자랑처럼 여기저기 쏟아내며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말을 강요하려 한다. 그러니 대화가 되기보단 자기가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지를 독백하는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걸 바로 먹물 든 사람의 자의식또는 배운 사람의 지적 허영이라 부른다. 교수님도 이런 식의 지식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때마침 크라잉넛과 만나며 그런 자의식은 완전히 산산조각 났고 깨져버린 의식 사이에선 전혀 새로운 의식들이 꽃피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수님은 서울에서 개최되는 락 페스티벌에 아내분과 함께 참석하는데 마치 크라잉넛이 그랬던 것처럼 버리는 한껏 올려 세우고 징이 박힌 옷을 입고 그곳에 가서 한껏 신나게 놀고 온다고 했다. 그건 아마도 굳은 의식을 지닌, 고정관념에 빠진 지식인은 되지 말자는 발악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처럼 자유분방하게 지식과 편견 사이를 가로지르며 한껏 살아보자는 의식이 아니었을까.

 

 

교수님이 크라잉넛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4. 첫 임용을 본 아이들과의 이야기

 

 

크라잉넛을 통해 고정관념이 깨지며 지금처럼 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크라잉넛 한 뮤지션 때문에 그런 인식의 변화가 생겼겠는가. 그런 충격적인 만남이 있기까지 수많은 변곡점들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의정이가 홍합탕의 홍합을 일일이 까줘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장범준의 여수밤바다가 좋은 노래인 이유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자연스레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계속 이어졌다. 그 다음에 초대된 인물은 장범준이다. 버스커 버스커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에겐 여수 밤바다벚꽃엔딩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매년 4월이면, 그리고 여수에 내려가면 언제든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어 있는 그다.

교수님은 “‘여수밤바다라는 노래가 왜 좋은 노래인 줄 알아?”라는 깜짝 질문으로 포문을 열었다. 감미로운 선율에 연애가 맘대로 풀리지 않는 젊은 남자가 여수밤바다를 찾아가 서글픈 감정을 토로하는 노래로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노래이며, 사람들은 심심찮게 여수시는 장범준 씨한테 상을 줘야 할 것 같네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여수를 대표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교수님처럼 이 노래가 어떤 부분에서 좋은 노래인지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이 질문을 듣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김형술 교수님은 이 노래엔 여수에 대한 묘사는 전혀 나오지 않아요. 여수 밤바다 풍경을 노래한다던지, 여수의 풍광을 서술한다던지 하는 건 없어요. 그런데도 이 노래를 듣고 나면 여수밤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에 이 노래가 좋은 노래인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돌산과 연결되는 다리. 석양의 운치가 멋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소화시평 스터디를 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던 게 생각이 났다. 상권 69엔 보령에 있는 영보정을 박은이 노래한 시와 이행이 평가한 말이 실려 있다. 이 부분을 해석할 때 교수님은 박은의 시를 면밀하게 풀이해주셨고 그 풀이를 듣는 순간 영보정 한 번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박은은 이 시에서 영보정을 매우 환상적인 분위기로 그려내고 있었고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범선 같은 느낌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어찌나 시적 분위기가 압도적인지 정말 그곳에 가면 그런 게 느껴질까 싶어서 가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장범준의 여수밤바다란 노래도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여수밤바다에 가면 나도 저런 감상에 빠져들 수 있을까, 그리고 나의 이렇게 아픈 가슴도 치유받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을 자아내기에 좋은 노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영보정 시를 읽으니 정말 영보정이 가고 싶어졌다. 

 

 

 

첫 임용을 본 아이들의 심정

 

나는 2006년도 12월에 첫 임용시험을 경기도에서 봤었다. 이미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그때의 경험은 나에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처럼 올해 첫 임용시험을 본 4학년 아이들의 소감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나에게도 그 순간만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듯 이들에게도 그런 감상은 전혀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향해 물어보니 아이들은 그때 느꼈던 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이야기해주더라.

 

 

첫 임용시험을보러 갈때의 사진. 시험 때문에 수원이란 곳에 처음 왔다.   

 

 

그렇게까지 긴장하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어리둥절하고 긴가민가한 생각도 있었을 테니 그 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고 막상 시험이 끝나고 나면 그 당시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마치 포맷이나 한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올해 한문 임용고사는 예년에 비해 유형이 대폭 바뀌었다. 교과교육학은 앞부분에 조금 나오는 식이고 대부분은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내용 파악은 제대로 됐는지 만을 묻는 방식이었던 데 반해, 올해는 전면에 교과교육학적인 지식을 물었으니 말이다. 단순히 암기했어야만 채워 넣을 수 있는 교수학습방법을 여러 곳에서 묻는 경우도 많았고 성취기준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유형이 대폭 바뀌어 많이 어려웠는데 다들 괜찮어?”라고 묻자 아이들은 첫 임용을 본 사람들답게 유형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풀만 했다고 말하더라. 첫 도전이지만 주눅 들지 않고 시험장에서 느껴지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마주하고 하나하나 풀어낼 수 있던 그 당당함에 박수를 보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처럼 당당하게 임하고 부딪힐 수 있다면 좋은 결과는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올해 시험은 천안에 가서 봤다. 첫 임용부터 지금까지 무려 13년이나 흘렀는걸~ 깜놀^^;;   

 

 

 

임용을 위한 한문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은성이가 누군가는 많은 원문들을 봐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백문을 보며 원전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요?”라고 짐짓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문으로 임용을 보려는 사람은 이런 고민을 할 것이고, 나도 예전에 5년 동안 임용을 공부할 때나 작년부터 다시 임용을 공부하게 된 순간부터나 이런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분명한 건 여기엔 어떤 정답이란 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자신이 이 방법, 저 방법 모두 해보는 가운데 무엇이 더 맞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올 선생님은 도올선생 중용강의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中庸이 가르쳐 주는 것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적에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현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추구하고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가능성을 좁히지 말라는 겁니다. 끝까지 뻗어 나가서 이 시대의 위대한 석학, 인물, 기업가들이 되고 또한 자기의 가능성을 폭넓게 발휘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이미 자기의 가능성을 좁혀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의 정신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무한하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부를 원대하게 갖고 살며 무한히 뻗어나가라! 젊었을 때, 야망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가질수록 좋은 것입니다.

 

 

위의 말처럼 공부의 방식에도 첩경은 따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하나는 명확히 해야 한다. 자신의 가능성을 좁히고 자신은 할 수 없을 거라 지레 선을 그어놓고 한정지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방식이든 그 방식을 택해 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문에 대해 맛있다고, 재밌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런 순간들이 여러번 반복되다보면 한문에 대해 자신감도 생기고 그에 따라 합격도 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진 것만으로도 은성이 안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는 사실도 잘 알게 됐다. 열정이 있다면 그건 무엇이든 하게 만들 테니 걱정 말고 야망을 크게 가진 채 맘껏 뻗어나가자.

630분에 만났지만 어느덧 이야기를 하다 보니 1130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올 겨울 들어 최고로 춥다던 날이었지만 술기운 탓인지, 좋은 사람들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눠 훈훈해진 탓인지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린 아쉬운 나머지 3차를 갔다는 건 안 비밀^^

 

 

 

 

인용

지도 / 임용 공고문 / 19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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