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보정 시를 읽었더니 그곳에 가고 싶어지다
『소화시평』 권상69번을 개발새발 해석했을 땐 잘 몰랐다. 하지만 교수님과 수업을 하면서 「영후정자(營後亭子)」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라. 어디까지나 정자를 묘사하며 지은 시였는데, 정자를 묘사한 방식도 탁월해서 정말 그곳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地如拍拍將飛翼 | 땅이 푸드덕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날개 같고, |
樓似搖搖不繫篷 | 누각은 흔들흔들 거려 매어 있지 않은 배와 같다. |
北望雲山欲何極 | 북쪽으로 바라보니 구름 낀 산은 어디서 끝나려는가? |
南來襟帶此爲雄 | 강물이 남으로 와 띠처럼 둘렀으니 이곳이 웅장해지네. |
海氣作霧因成雨 | 바다 기운이 안개가 되었다가 인하여 비를 이루고 |
浪勢飜天自起風 | 파도의 기세가 하늘로 솟구쳐서 저절로 바람을 일으키네. |
暝裡如聞鳥相喚 | 어둠 속에 새가 서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
坐間渾覺境俱空 | 어느새 혼연히 경계가 모두 텅비었다는 것을 완전히 알게 되었네. |
1~2구는 정자의 형상을 묘사하고 있다. 누각은 하늘로 솟구쳐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날개로 표현한 부분은, 박인범이 지은 「경주용삭사(徑州龍朔寺)」의 ‘翬飛仙閣在靑冥 月殿笙歌歷歷聽’라는 구절이 절로 생각난다. 하늘로 솟구칠 거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2구에서 ‘매어 있지 않은 배[不繫篷]라고 왜 썼는지?’를 질문하셨다. 왜 배 같다는 것일까? 누구 하나 명료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건 이 정자가 놓여 있는 장소와 관련이 있었다. 이 정자는 보령시 바닷가에 있는 정자라고 한다. 그러니 거기에 앉아 있으면 매어 있지 않은 배에 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허균은 『국조시산』에서 ‘공중에 신기를 얽어서 매어 놓았다[架出空中蜃樓]’라고 평했다고 한다.
3~4구는 누각에서 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실제를 다음뷰를 찾아보면 북쪽 저멀리엔 낮은 산이긴 해도 뭔가 튀어나온 게 보인다. 그러니 그 당시엔 더욱 아득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4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쪽으로 정자를 둘렀다고 했으니, 그게 무얼까 쉽게 생각나는 게 없다. 당연히 산이 두르고 있겠거니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말씀해주셨다. 왜냐하면 3구에서 이미 산을 말했기에, 4구에선 다른 게 나와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그건 다름 아닌 물이나 강이 아닐까 싶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의 지도를 찾아보면 강이나 물은 없지만 실제 그 당시엔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지도상으로는 산 같은 삥 둘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긴 하다.
4구에서 웅(雄)으로 끝냈고 그걸 그대로 받듯이 5~6구에선 아주 웅장한 느낌을 그리고 있다. 바다 기운이 안개로 되다가 결국은 비가 되어 내리고, 거센 파도가 하늘까지 솟구쳤다가 떨어지니 그게 바람이 되어 분다. 마치 ‘나비효과’ 같은 느낌이지만, 충분히 그 상황들이 그려진다. 나에게 이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것은 2015년에 변산에 단재학교에서 놀러갔을 때였다. 그땐 해일이 밀려오던 여름바다였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진귀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이 구절에 대해선 ‘말 모는 기세[驅賀氣勢]’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여기서 반전을 시도한다. 이 정자에 앉아 아주 웅장한 장면들을 봤고 그걸 시적으로 아주 기세 좋게 묘사했는데, 작자는 7~8구에서 완전한 변화를 시도한다. 활기차고 웅장한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아주 잔잔하게 새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들린다. 그러다 그 모든 것마저도 사라지고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무아지경으로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즉 정자에 대한 시 한 편에 인생의 삼라만상까지 함께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구절에 대해선 ‘또한 묘한 경지에 들어갔다[又入妙境]’라고 평했다고 한다. 충분히 이런 표현은 이 시만 읽어봐도 절로 느껴질 정도로 적확한 평가다.
일반적인 시는 ‘경치묘사→자기반성→자연으로 돌아가자’와 같은 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정자를 통해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삶의 자세를 드러내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이 시는 그런 일반적인 진행을 따라가지 않는다. 오묘하게 끝을 내며, 정자에 대한 얘기와 함께 여운을 짙게 남기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고 나니 정말로 영보정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절에 대한 묘사처럼 과장법이 잔뜩 섞여 있다는 걸 알지만, 전혀 알지도 못하던 곳인데 관심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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