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포로 19년을 버티고 버틴 소무(蘇武)
天漢元年, 遣中郞將蘇武, 使匈奴. 單于欲降之, 幽武置大窖中, 絶不飮食. 武齧雪與旃毛幷咽之, 數日不死, 匈奴以爲神.
徙武北海, 上無人處, 使牧羝曰: “羝乳乃得歸.”
二年遣李廣利, 擊匈奴, 別將李陵, 敗降虜. 始元六年, 蘇武還自匈奴.
武始徙北海上, 掘野鼠去草實而食之, 臥起持漢節. 漢使者至匈奴, 匈奴詭言武已死. 漢使知之言, “天子射上林, 中得雁, 足有帛書云 ‘武在大澤中.’” 匈奴不能隱, 乃遣武還.
武留匈奴十九年, 始以强壯出, 及還須髮盡白. 拜爲典屬國.
해석
天漢元年, 遣中郞將蘇武, 使匈奴.
천한(天漢) 원년에 중서 소무를 파견하여 흉노족에 보냈다.
單于欲降之, 幽武置大窖中,
선우는 소무를 투항하게 하고자 하여 소무를 가두어 큰 움 속에 두고서는
絶不飮食.
아무런 음식도 주질 않았다.
武齧雪與旃毛幷咽之, 數日不死,
소무는 눈과 모직을 씹어가며 수일 동안 죽지 않으니,
匈奴以爲神.
흉노족은 귀신처럼 여겼다.
徙武北海, 上無人處, 使牧羝曰:
그래서 소무를 북해의 사람이 전혀 없는 곳으로 옮겨 숫양을 치게 하며 말했다.
“羝乳乃得歸.”
“숫양에서 젖이 나오면 귀국할 수 있다.”
二年遣李廣利, 擊匈奴,
천한(天漢) 2년에 이광리를 파견하여 흉노를 정벌케 했는데
別將李陵, 敗降虜.
별장 이릉이 패하여 항복하고서는 포로가 되었다.
始元六年, 蘇武還自匈奴.
시원(昭帝의 연호) 6년에 소무는 흉노로부터 귀환했다.
武始徙北海上, 掘野鼠去草實而食之,
소무가 처음 북해가로 옮겨졌을 때 쥐의 굴을 파서 풀과 열매를 감춰두고서 그것을 먹으며
臥起持漢節.
앉으나 서나 한나라에 대한 절개를 지켰다.
漢使者至匈奴, 匈奴詭言武已死.
한나라 사신이 흉노에 이르니, 흉노족은 거짓말로 소무는 이미 죽었다고 했다.
漢使知之言,
그러자 한나라 사신은 정황을 알고서 말했다.
“天子射上林, 中得雁,
“천자께서 상림에서 사냥할 때 기러기를 맞춰 얻었는데
足有帛書云 ‘武在大澤中.’”
발에 백서가 있었고 거기에 ‘소무는 큰 연못 가운데에 있다’라고 써 있었다.”
匈奴不能隱, 乃遣武還.
흉노는 숨길 수 없어 마침내 소무를 귀환하게 했다.
武留匈奴十九年, 始以强壯出,
소무가 흉노에 머문 지 19년인데, 처음엔 굳세고 씩씩한 상태로 갔다가
及還須髮盡白.
돌아올 땐 수염과 머리가 모두 백발이 되었다.
拜爲典屬國.
그런 노고를 치하하여 전속국(典屬國, 이민족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관청이 장관)의 직위를 내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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