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학생들과 등산하기 위해선 교사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서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렸다. 처음 가는 길이기에 지도를 꼼꼼히 찾아보며 가야 하지만, 그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다.
▲ 우린 등산객들을 따라 다니면 된다. 그러면 진입로로 알아서 가게 된다.
산을 오르기 전부터 삐걱대다
버스엔 등산복을 입고 탄 사람들이 꽤 있었기에 우린 그들을 졸졸 쫓아다니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애니메이션고등학교 옆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니, 청계산 입구에 아웃도어 매장이 즐비하듯이 이곳도 아웃도어 매장이 많더라. 그곳에서 조금 더 걸으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이때부터 한 학생이 “감기도 된통 걸린 데다가, 다리까지 아프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트래킹을 간다고 나오려 하니 엄마가 무슨 트래킹이냐며 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저는 오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줄만 알고 간다고 하고 나왔어요. 그래서 오늘은 산을 못 오를 거 같아요.”라고 운을 뗐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걸어서 올라갈라 치면, “더 이상 못 가겠어요. 그래서 아까 양해를 구했잖아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어제 지민이와 계획을 세웠다시피 오전에는 천천히 정상까지 오르고 오후에는 계곡에서 쉬자는 것이었는데, 차질이 빚어지게 되었다.
▲ 초입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좋았다.
한 아이의 불퉁거림이 전체 분위기를 망치다
초입길은 경사가 급하지도 않았으며 험하지도 않았다. 길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산책을 하듯 편하니 걸으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아이로 인해 전체의 분위기는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걸으라 치면 “더 이상 못 걷겠어요”, “그래서 제가 못 걷는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시할 수가 있어요”라는 말로 의기를 꺾어버렸으니 말이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선 화가 치밀어 오른다. 계속해서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제대로 올라가려 맘먹은 아이들의 의욕마저도 깔아뭉개버리니 말이다. 역시나 아이들과 힘든 순간을 함께 해쳐나가려면 교사에겐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나마 지리산 종주 때나 자전거 여행 때는 힘들긴 했어도 아이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며 힘을 보태줬기 때문에 힘을 보충해가며 극복할 수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오로지 나의 에너지로만 이 상황을 이해하며 극복해야 하니, 더욱 힘이 드는 것이다.
▲ 그래서 조금 걷다가 쉬었다, 걷다 쉬었다를 반복했다.
승태쌤은 이대로는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바로 근처에 계곡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니, 정상 바로 밑에 있다는 분도 있었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있다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등산로에서 벗어나 계곡이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험지의 느낌이 물씬 났고, 길 또한 평탄치만은 않았다. 그런 길을 아이들과 천천히 걷고 있으니, 꼭 오지를 탐험하는 것 같더라. 밀림을 탐험하는 대원들처럼 한 줄을 늘어서 검단산의 깊숙한 곳을 헤매며 다녔다. 그러다 계곡을 발견하긴 했는데, 물이 거의 말라 시원한 느낌은 하나도 없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승태쌤은 “조금만 더 가면 호국사라는 절이 나오니, 거기까지 가서 쉽시다”라고 말을 했다.
얼마 걷지 않으니 호국사라는 이정표가 나오더라. 조금만 가면 절이 나온다는 것이니, 우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바로 절이 나오지 않고 꽤 멀었다. 이런 상황이니 아까 그 아이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계단을 따라 올라갔고, 다행히도 거기엔 평상이 설치되어 있어서 거기에 앉아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 호국사로 올라가는 길. 이곳은 화장실과 주차장이 있는 곳인데, 여기서 밥을 먹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면 무엇이든 뚫지 못하랴
점심시간은 그 어느 시간보다도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불퉁거리는 소리도, ‘그만 올라가자’는 이의제기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땐 아이들이 싸온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었고, 서로 서로 챙겨줬기에 그 모습이 정말로 보기 좋았다.
이때 규빈이는 밥을 먹으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를 숟가락 끝에 담아 밥을 푸려던 찰라 오죽 에너지가 넘치고도 넘쳤으면 숟가락이 도시락통 바닥을 뚫고 튀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이걸 흔히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정신을 하나로 통일하면 어떤 일이든 이루지 못하랴)’라고 하는데, 규빈이의 경우는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면 무엇이든 뚫지 못하랴’라는 거였다. 이 상황에 규빈이도 깜짝 놀랐지만, 그걸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을 뿐만 아니라, 폭소가 터져 나오기까지 했다. 얼마나 자신의 얘기에 심취했으면 숟가락이 통을 뚫는데도 그걸 전혀 몰랐던 걸까 웃겼기 때문이다.
▲ 얼마나 열변을 토했으면, 숟가락이 도시락통을 뚫고 나왔다.
밥을 다 먹고 나선 그곳에서 우린 정말 아무 것도 부럽지 않은 여유를 만끽했다. 가만히 누워 평상으로 불어오는 산바람을 음미하며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누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즐겼다.
▲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만끽하다. 밥 푸지게 먹고 자유로운 시간 만끽하기.
인용
1. 건빵, 산에 살어리랏다
2. 산에 오르는 이유
4. 학생들과 등산하기 위해선 교사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5. 당연함이란 없다
7. 하류가 되려 하다
9. 검단산이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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