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짐작치 말기, 나답지 말기
이런 황당한 상황을 경험하고 보니, 눈이 번쩍 뜨이며 나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점심을 먹고 평상에 가만히 있으니, 피곤이 몰려와서 ‘그냥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밥을 먹고 오후의 햇살을 받고 있으니, 절로 나른해진다.
아이들의 반응에 나다움은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아이들의 적극적이면서 산에 오르려는 마음을 옆에 보게 되니, 덩달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쉽게 휩쓸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때 명확하게 알게 된 건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굳어져서 결코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완벽한 생각은 아니며, 주위 사람들이 반응에 따라 수시로 바뀔 수 있는 생각이라는 점이다.
지금 시대는 ‘자기自己’가 강조되는 시대다. 그러니 ‘자기 찾기 열풍’이라던지, ‘나다움’이란 말들이 당연한 듯 쓰이고 있다. 그 말엔 ‘나’라는 인식의 주체가 명확하게 서 있으며, 타인과 사회와 완벽하게 분리 가능한 무언가가 있다는 논리가 숨어 있다. 그 무언가는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는 ‘완전한 나다움’이라는 것이고, 나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여행, 명상, 힐링을 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 자기를 사랑한 나머지, 강에 빠진 이가 있다. 그처럼 우리도 나다움을 찾다가 나란 늪에 빠져 허우적 댄다.
나다움이 아닌, ‘우리 속의 나’를 찾다
하지만 너가 없는 나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를 제거한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실 ‘나’라는 인식 자체가 타자를 통해, 사회를 통해 가능한 인식이니 말이다. 그러니 나의 생각에서 너의 생각을 제거하고, 우리의 생각을 제거하고, 사회의 생각을 제거하면 ‘나’가 남을 거라는 생각이야말로 환상이고 착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우치다쌤은 내 안에 살고 있는 ‘제삼자’가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는 대화의 맛이 넘실대는 순간이 된다는 것을 지적해주고 있다.
진정한 대화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제삼자인 것입니다. 대화할 때 제삼자가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대화가 가장 뜨거울 때입니다. 말할 생각도 없던 이야기들이 끝없이 분출되는 듯한,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처음부터 형태를 갖춘 ‘내 생각’ 같은 미묘한 맛을 풍기는 말이 그 순간에는 넘쳐 나옵니다. 그런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치다 타츠루 저, 박동섭 역, 민들레 출판사, 『스승은 있다』, pp59
나라는 고정된 틀이 아닌, 자아라는 한정된 담론 체계가 아닌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며 전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을 말하고, 예전 같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 것을 자연스럽게 말하게 될 때, 대화는 뜨거워진다. 그것이야말로 현장에서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나의 생각을 덧붙이고 덧붙이는 활발발한 대화를 하게 된다.
▲ 짐작하지 말고, 나답지 말고, 철들지 말고.
그처럼 나도 오후엔 그냥 편안하게 있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등산할 마음이 생겼다. 이때야말로 주위 상황에 맞춰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나도 등산을 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모든 일은 짐작하거나 예측하여 미리 제단하기보다, 이처럼 맞닥뜨려보고 그 상황에 맞춰 내 생각도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이래서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하는 것이고, 사람은 오랜 시간동안 겪어봐야만 안다고 하는 건가 보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전망(?)은 곧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삶이 얼마나 변화무쌍한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얘기도 긴 얘기임으로 다음 후기에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다.
▲ 뜻하지 않게 오후의 검단산 정상을 향한 등산이 시작되었다.
인용
1. 건빵, 산에 살어리랏다
2. 산에 오르는 이유
4. 학생들과 등산하기 위해선 교사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5. 당연함이란 없다
7. 하류가 되려 하다
9. 검단산이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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