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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인 - 호종성남(扈從城南) 본문

한시놀이터/삼국&고려

이숭인 - 호종성남(扈從城南)

건방진방랑자 2019. 2. 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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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에서 임금을 호위하며

호종성남(扈從城南)

 

이숭인(李崇仁)

 

 

郊甸秋成早 君王玉趾臨

교전추성조 군왕옥지림

觀魚前事陋 講武睿謨深

관어전사루 강무예모심

鼓角滄江動 旌旗白日陰

고각창강동 정기백일음

詞臣多侍從 會見獻虞箴

사신다시종 회견헌우잠 陶隱先生詩集卷之二

 

 

 

 

 

 

해석

郊甸秋成早 君王玉趾臨

교외의 가을걷이 이른데, 군왕은 옥 같은 발걸음으로 임하셨네.

觀魚前事陋 講武睿謨深

물고기 구경하던 옛 일관어(觀魚): 춘추(春秋), () 은공(隱公)이 당()에 가서 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려 하니 신하인 장희백(臧僖伯)이 말렸으나 듣지 않고 구경을 갔음. 이후로 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거나 고기가 노니는 것을 감상하는 것을 관어(觀魚)’라 함.은 비루한 일이지만, 군사훈련강무(講武): 주로 농한기를 이용하여 군사 훈련을 목적으로 임금이 참여하여 실시한 수렵대회 또는 군사 연습을 하는 것.하던 슬기로운 꾀는 깊기만 하네.

鼓角滄江動 旌旗白日陰

북 두드리고 나팔 부니 푸른 강 움직이고 깃발 나부껴 환한 해 떴음에도 그늘졌다.

詞臣多侍從 會見獻虞箴

글 쓰는 신하들 많이 모시며 따랐으니 마침내 군왕께 경계하는 글 드리겠지우잠(虞箴): 임금이 사냥에 지나치게 탐닉하면 안 된다는 것을 경계한 글. 춘추(春秋)에 진() 임금이 사냥을 좋아하므로, 위강(魏絳)() 신갑(辛甲)이 태사(太史)가 되었을 때에, 백관(百官)을 시켜 천자의 잘못을 경계하는 글을 짓게 하니, 산야(山野)의 짐승을 맡은 벼슬인 우인(虞人)의 잠()사냥을 경계하는 말이 있었습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라고 지음.. 陶隱先生詩集卷之二

 

 

해설

성남으로 사냥을 간 임금의 행차를 호종(扈從)하면서, 사냥하는 것이 무예를 익히기에는 중요한 일이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탐닉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를 주제로 한 시이다.

 

가을이 되자 임금은 성남으로 사냥을 나갔다. 옛날 노나라 은공이 장희백의 충간에도 물고기 잡는 것을 구경한 것은 비루한 일이었지만, 지금 우리 임금은 이와는 달리 무예수련을 위한 사냥을 온 것이다. 사냥을 하느라 울려대는 북과 나팔소리는 강물도 일렁이게 할 정도요, 사냥감을 쫓는 병사들의 수많은 깃발에 가려 대낮에도 어둑할 정도이다(사냥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올바른 글을 잘 짓는 문신(文臣)들이 임금을 시종(侍從)하고 있으니 임금이 지나치게 사냥에 탐닉하는 것을 경계하는 글인 우잠(虞箴)을 틀림없이 지어 올려 임금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앞에서는 사냥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지나친 사냥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隱顯을 통한 고도의 풍유법을 활용하고 있다).

 

서거정(徐居正)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이 시에 관한 삼봉(三峰)과의 일화(逸話)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반산 왕안석(王安石)과 동파 소식(蘇軾)은 서로 문재(文才)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반산이 동파의 설후우운시를 읽고서 그 시에 좇아 차운하여 예닐곱 편을 지어 본 끝에 나는 그에게 미칠 수 없다.’라고 말하니, 당시 사람들이 반산이 자기 자신을 알아봄이 매우 현명한 것에 탄복하였다. 하루는 삼봉 정도전이 설핏 선잠이 들었는데, 족질(族姪) 황현(黃鉉)이 그의 곁에서 도은 이숭인의 호종시를 낭송하기를, ……라고 하였다. 삼봉이 갑자기 감았던 눈을 뜨고, 황현에게 그 시를 다시 외워 보라고 하고는 시의 운이 청아하고 원만하니 당시(唐詩)인 듯하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황현이 이 시는 첨서 이숭인이 지은 것입니다.’라고 하자, 삼봉이 어린 녀석이 어디에서 나쁜 시[惡詩]를 가지고 왔느냐?’고 하였다. ! 반산이 스스로 자부하는 마음이 집요할 정도로 강한 사람인데도 오리려 공론(公論)을 저버리지 않았거늘, 정도전이 반산에게 미치지 못함이 또한 멀다 하겠다[半山與東坡不相能. 然讀東坡雪後又韻, 追次至六七篇, 終曰: “不可及,” 時人服其自知甚明. 一日三峰假寐, 族姪黃鉉, 從傍誦陶隱扈從鼓角滄江動, 旌旗白日陰. 詞臣多侍從, 會見獻虞箴.’ 三峰忽開眼, 令鉉再誦曰: “語韻淸圓似唐詩,” 鉉曰: “李簽書崇仁所著也.” 三峰曰: “兒子輩何從得惡詩來乎.” 嗚呼! 半山之執拗自是, 尙不廢公論, 鄭之不及半山, 亦遠矣].”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 34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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