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노래
양양곡(襄陽曲)
이달(李達)
平湖日落大堤西 花下遊人醉欲迷
更出敎坊南畔路 家家門巷白銅鞮 『蓀谷詩集』 卷之六
해석
平湖日落大堤西 평호일락대제서 | 평평한 호수의 서쪽 큰 둑에서 해지고, |
花下遊人醉欲迷 화하유인취욕미 | 꽃 아래서 놀던 사람 거나하게 취해 해롱거리네. |
更出敎坊南畔路 갱출교방남반로 | 곧 교방의 남쪽 언덕길로 나가니, |
家家門巷白銅鞮 가가문항백동제 | 집집마다 거리마다 신나는 백동제의 노랫소리【백동제(白銅鞮): 가곡(歌曲)의 이름, 중국 양양 지방을 소재로 한 이별[送別]의 노래.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저녁 해는 현산 서쪽으로 뉘엿뉘엿, 거꾸로 두건 쓰고 꽃그늘 아래 비틀비틀. 양양의 어린애들 다 함께 손뼉치며, 길을 막고 다투어 백동제를 부르누나. 구경꾼이 무얼 보고 웃느냐고 물으면 곤드레만드레 취한 산옹 우스워 죽겠단다.[落日欲沒峴山西 倒著接䍦花下迷 襄陽小兒齊拍手 攔街爭唱白銅鞮 傍人借問笑何事 笑殺山翁醉似泥]”라는 내용이 있다.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卷6】. 『蓀谷詩集』 卷之六 |
해설
이 시는 양양에 대해 노래한 것으로, 당풍(唐風)을 느낄 수 있는 시이다.
중국 남방에 끝없이 펼쳐진 평호의 긴 둑 위로 서산의 해가 기울고 있고, 꽃놀이 나온 사람들은 꽃 아래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다. 이들은 다시 기생들이 있는 기방(妓房) 남쪽 길로 비틀거리며 걸어가자니, 집집 골목마다 백동제 노래가 흘러나온다.
당시(唐詩)는 가슴으로 써서 묘사적이고 서정적(抒情的)이며 낭만적(浪漫的)인 감성적(感性的) 취향을 지니고 있다.
신경준(申景濬)의 「시칙(詩則)」에, “당나라 사람은 광경을 즐겨 서술한다. 그러므로 그 시에는 영묘가 많다. 송나라 사람은 의론을 세우기를 즐긴다. 그러므로 그 시에는 포진이 많다. 무릇 광경을 서술함은 국풍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니, 상당히 참되고 두터운 맛이 적다. 의론을 세움은 소아(小雅)ㆍ대아(大雅)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니, 생각의 자취가 완전히 드러나 있다. 모두 삼백 편의 나머지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는데, 삼백 편과 견주어 보면 또한 차이가 많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당인은 시를 가지고 시를 삼았고, 송인은 문을 가지고 시를 삼았다고 여겨 당시가 송시보다 훨씬 뛰어나고 송시는 당시보다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당시는 영묘가 많고 송시는 포진이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시가 당시만 못한 것은 바로 기격(氣格)이 모두 밑도는 까닭이지, 포진이 본래 영묘만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唐人喜述光景, 故其詩多影描; 宋人喜立議論, 故其詩多鋪陳. 大抵述光景. 出於國風之餘, 而頗小眞厚之味; 立議論, 出於兩雅之餘, 而全露勘斷之跡. 俱未始不出於三百篇之餘, 而其視三百篇, 亦遠矣. 世之人皆以爲唐人以詩爲詩, 宋人以文爲詩, 唐固勝於宋, 宋固遜於唐. 此以唐詩多影描, 宋詩多鋪陳故也. 然而宋之不如唐, 是因氣格俱下之致也, 非由於鋪陳素不如影描而然也].”라 하여, 당시는 影描(그림자를 묘사함), 송시는 鋪陳(사실 그대로 진술함)이라 말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59~6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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