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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산문선, 분방한 기질의 탈속적 문인인 유몽인 - 2. 분방한 문인적 기질과 장자의 영향 본문

한문놀이터/인물

태학산문선, 분방한 기질의 탈속적 문인인 유몽인 - 2. 분방한 문인적 기질과 장자의 영향

건방진방랑자 2020. 1. 1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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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방한 문인적 기질과 장자의 영향

 

유몽인(1559~1623)은 한양 명례방(明禮坊)지금의 명동·충무로 일대에서 4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고흥으로 고려조에 시중을 지낸 유비(柳庇)가 시조다. 조선조에 들어와 그의 선대에는 그다지 현달한 인물이 없다가 조부 유충관(柳忠寬)이 대과에 급제, 사간을 지내며 장래가 촉망됐으나 4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부친은 주부(主簿) 벼슬을 지낸 유당(柳樘)으로 유몽인의 나이 6세 때 일찍 돌아가셨으며, 모친은 여흥 민씨로 참봉 민위(閔褘)의 따님이다. 이렇게 볼 때 유몽인의 가세는 크게 내세울 만한 처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몽인은 자가 응문(應文)이고, 호는 어우(於于)ㆍ간암(艮庵묵호자(默好子) 등을 썼다. 그의 호는 도가적 취향을 느끼게 하는데, 이 중 가장 즐겨 사용한 어우라는 호는 의미 없는 허사로 이루어져 독특한 느낌을 준다. 홍만종(1643~1715)순오지(旬五志)에서 역대 인물의 호의 유래에 대해 언급하면서, ‘김시습의 청한자(淸寒子)와 유몽인의 어우자(於于子)는 각기 그 숭상하는 바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金時習之淸寒子, 柳夢寅之於于子, 以其所尙而號之也].’라고 한 바 있다. ‘어우란 말은 장자』 「천지편에서 세속을 떠난 은자가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을 힐난하는 대목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는 의태어로서 대략 자랑하여 떠벌리며 자신을 내세우는 모습을 뜻한다. 유몽인이 언제부터 이를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부정적 의미의 허사를 자신의 호로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도 그의 독특한 기질을 엿볼 수 있겠다.

 

유몽인은 대부분 독학으로 학업을 성취하였다. 성균관에서 잠시 공부한 기간을 빼고는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청년 시절에 대개 서울 주변의 산사를 두루 다니며 독서한 것이다. 15세에 고령 신씨 판관(判官) 신식(申栻)의 따님을 아내로 맞이하는데, 신식의 자부가 곧 유명한 성리학자 우계 성혼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성혼으로부터 한때 성리학을 배웠으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그가 이처럼 일정한 스승 밑에서 수학하지 않고 산사를 전전하며 독학한 것은 그의 산수벽과 함께 분방한 기질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보인다.

 

독학을 하면서 유몽인은 유가 외에 도가와 불가 등의 다양한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형성하였으며, 이는 시속의 문풍과는 다른 것이었다. 1589년 그는 31세의 나이로 과거 시험에서 삼장에 모두 장원을 차지하며 중앙 정계에 화려하게 등극한다. 이때 그의 글을 두고 백년 이래 처음 보는 기이한 문장’(노수신, 유성룡)이라는 극찬과 법식을 벗어난 문장’(심수경, 정문부)이라는 혹평이 함께 했다.

 

 

어느 한 편에 들어간 사람은 각기 하나의 세력이 되어 나머지 네댓 편과 대적하게 되니, 한 개인이 외롭지 않으랴? 한 편의 세력이 강성하면 한 편의 세력은 쇠약하기 마련이다. 어느 한 편만을 따라 진퇴를 삼으면서 스스로 절의가 있다고 하는데, 그 절의가 한 개인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누런 것은 스스로 누렇다하고, 푸른 것은 스스로 푸르다 하는데, 그 누렇고 푸른 것이 과연 그 본성이겠는가? 갑에게 물으면 감이 옳고 을은 그르다고 하고, 을에게 물으면 을이 옳고 갑은 그르다고 한다. 그 둘 다 옳은 것인가? 아니면 둘 다 그른 것인가? 갑과 을이 둘 다 옳을 수는 없는 것인가?

入於一者, 各自爲一, 與四五敵, 爲一人者, 其不孤乎? 一之勢盛, 卽一之勢衰, 守於一而爲進退, 自以爲節義, 其節義可移於一人乎?

黃者自黃, 靑者自靑, 其靑黃果其性乎? 問于甲, 卽是甲而非乙; 問于乙, 卽是乙而非甲, 其俱是乎? 其俱非乎? 其甲乙不能相是乎? 贈李聖徵令公赴京序

 

 

오늘날에도 백가(百家)를 뇌롱(牢籠, 모두 포용함)했다’(김태준, 조선 한문학사)는 평을 받는 그의 글에는 무엇보다 장자의 영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위의 글을 장자』 「제물론의 다음 대목과 비교해 보라.

 

 

나와 그대가 논쟁을 하였다고 가정하자.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나는 그대를 이기지 못하였다고 과연 그대가 옳고 나는 그른 것일까?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는 나를 이기지 못하였다면, 과연 내가 옳고 그대는 그른 것일까? 그 어느 쪽은 옳고 그 어느 쪽은 그른 것일까? 우리 모두가 옳거나 우리 모두가 그른 것일까?

旣使我與若辯矣, 若勝我, 我不若勝, 若果是也? 我果非也耶? 我勝若, 若不吾勝, 我果是也? 而果非也耶? 其或是也? 其或非也耶? 其俱是也? 其俱非也耶?

 

 

 

 

인용

작가

1. 네모난 마음을 지닌 이

2. 분방한 문인적 기질과 장자의 영향

3. 전란의 체험과 시화로 인한 파직

4. 금강산 은거와 최후의 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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