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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산문선, 사람의 길을 걸은 정약용 - 3. 남을 돕고 세상을 건지려 본문

한문놀이터/인물

태학산문선, 사람의 길을 걸은 정약용 - 3. 남을 돕고 세상을 건지려

건방진방랑자 2020. 1. 1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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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이야기: 남을 돕고 세상을 건지려

 

태학생(太學生) 시절의 다산이 남긴 시 중에도 또 이런 엉뚱한 시가 있다. 호박[南瓜歎]이란 시다. 다산 시의 전체적인 특징대로 산문적인 사연을 뒤에 깔고 있는데, 그 사연이란 이렇다. 1784년 여름, 장마가 열흘 넘게 계속되던 어느 날이다. 장마로 온통 진창이 돼버린 서울 회현방 어느 골목을 23세의 다산이 들어서고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다르다. 계집종 하나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서 있고, 아내 홍씨는 상기된 표정이다. 바지런하고 웬만해선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깐깐한 성품의 홍씨지만, 그렇다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다루는 일도 없는 사람이다. 사연인즉 오랜 장마로 끼니가 끊긴 지 오래, 호박죽을 끓여서 연명했는데, 그나마 호박도 남은 것이 없었다. 옆집 텃밭에 열린 탐스런 호박 하나를 발견한 계집종은 얼른 그 호박을 따 왔다. 죽을 끊여 주인께 올렸으나, 대쪽 같은 성품의 홍씨는 오히려 매를 들었다. “누가 너더러 도둑질을 하라더냐?” 젊은 다산은 그만 무안해져 버렸다. 이 일대의 촉망받는 문원(文苑)의 기재(奇才)’장래 재상감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한다. “아서라, 그 아이 죄 없다. 꾸짖지 말라. 이 호박은 내가 먹을 테니,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라.” 그리고는 속으로 탄식한다. ‘만 권 책을 읽은들 아내가 배부르랴, 두 이랑 밭만 있어도 계집종이 죄짓지 않아도 될 것을’, ‘나도 출세하는 날 있겠지. 하다 못해 안되면 금광이라도 캐러가리라.’

 

젊은 다산은 가장으로서, 식솔들의 굶주림을 외면하고서 하는 독서, 치국평천하의 포부가 얼마나 허상인지, 배고파 고작 호박 하나를 도둑질한 어린 계집종을 윤리를 들어 꾸짖고 매질한다는 짓이 얼마나 가증스런 위선인가를 외면하지 않고 고백한다. 가난 가난[]이란 시에선 솔직히 말한다. “안빈낙도하리라 말을 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안빈(安貧)’이 안 되네. 아내의 한숨 소리에 그만 체통이 꺾이고, 굶주린 자식들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

 

육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다산인지라, 다산은 생활의 깊은 엄숙함을 외면하지 않았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어떤 고상한 이상이건 이데올로기이건, 생활의 진지함 앞에 경건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외면하고 왜곡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러므로 다산의 사유는 지금 여기서이루어지는 사람의 삶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끝내 어떤 방식으로든 초월적인 태도는 갖지 않는다. 생애 전반기의 어사재기(於斯齋記)같은 것에서는 좀 더 경직된 모습으로 유배기의 부암기(浮菴記)에서는 좀 여유 있는 달관을 곁들인 모습을 띠지만, ‘지금 여기서 이 사람들과 사는 삶을 최종적인 진··미의 가치로 삼는 그의 태도는 한결같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의 삶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밥 먹고 똥싸고 애낳고 살아야 하는 구체적인 생활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끝까지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사람다운 방식으로 성화(聖化)’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다산 평생에 걸친 것이고, 이웃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완성된다. 내 자식의 굶주림과 남의 자식의 굶주림을 똑같이 여겨야 할까? 그것은 위선이다. 생활에 매몰되고 말아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인정과 실정에 반하는 지나친 고상함도 사람의 길은 아니다. 내 자식의 굶주림 때문에 남의 자식의 굶주림도 구원해주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다산이 걸어간 사람의 길이었다.

 

다산은 63녀를 낳아서 42녀를 잃었다. 대부분 마마를 앓다가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다산은 이 절통한 심정을 모든 피부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마과회통(麻科會通)을 저술하는 것으로 넓혀 나간다. 다산의 출발은 내 집의 생활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정직함이지만 그것은 온 천하의 굶주림을 책임지려는 태도로 발전한다. 배가 고파 호박을 훔친 계집종은 가장인 자신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않은 책임이지만, 18세기 후반, 고향을 떠나 유리걸식하다가 길거리에서 굶어죽어, 굶어죽은 시체가 구렁을 메우고 산을 덮었다는 백성들의 피폐한 삶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 책임도 독서한 선비로서의 의무로 떠맡으려 했던 것이 다산이었다.

 

조선 후기, 드러나는 봉건 말기의 병폐 앞에 속수무책으로 가혹하게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피를 토하듯 고발하는 다산의 사회시들과 구조적인 해결의 길을 모색했던 경세서(經世書)들의 한 쪽에 이런 태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다산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대의를 위해 소아(小我)를 희생시킨다는 명분 아래 가족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래 잘못된 남성문화에 대한 통렬한 질책이기도 하다. ‘사람답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을 돕고 세상을 건지겠나?

 

 

 

 

인용

작가

1. 마재의 신혼부부들

2. 위대한 범부

3. 남을 돕고 세상을 건지려

4. 유배지에서의 고투

5. 둘째 형 정약전

6. 인생을 즐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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