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장의 만사
이숙장만(李叔章挽)
홍세태(洪世泰)
種穀不須嘉 嘉者多不實
종곡불수가 가자다불실
作人不須才 才者輒夭折
작인불수재 재자첩요절
久病喜相見 幽窻雪中語
구병희상견 유창설중어
今朝哭君來 昨日留客處
금조곡군래 작일류객처
我作短歌行 送君從此去
아작단가행 송군종차거
懷璧卽爲罪 造物寧置汝
회벽즉위죄 조물녕치여 『柳下集』 卷之七
해석
種穀不須嘉 嘉者多不實 | 곡식을 심는데 꼭 좋은 씨일 필욘 없다. 좋은 씨여도 많이 열매 맺질 못하니. |
作人不須才 才者輒夭折 | 사람을 지어낼 때 꼭 재주 있는 사람일 필욘 없다. 재주 있는 사람은 번번이 요절하니. |
久病喜相見 幽窻雪中語 | 오랜 병에도 서로 보니 좋고 그윽한 창에서 눈 내린 중에 말 나눴지. |
今朝哭君來 昨日留客處 | 오늘 아침 그대 곡하고 온 곳 어제 나그네 머물던 곳이지. |
我作短歌行 送君從此去 | 내가 짧은 노래 지어 그대에게 보내 여기로부터 떠났네. |
懷璧卽爲罪 造物寧置汝 | 옥을 품은 게 죄가 되었으니 조물주가 어째서 너를 방치한 것인가? 『柳下集』 卷之七 |
해설
이 시는 이숙장에 대한 만사(輓詞)이다.
좋은 곡식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많으니 반드시 곡식을 심을 때 좋은 씨앗을 뿌릴 필요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번번이 요절을 하니, 꼭 재주 있는 사람을 낳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대중은 『청성잡기(靑城雜記)』에, “홍세태는 처음 역관(譯官)에 소속되었을 때, 미천한 신분 때문에 동료들이 그를 배척하자, 관직을 버리고 문장 짓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등 여러 선비들이 기꺼이 그와 교류하였고, 후세 사람들도 그의 시를 읊기를 시들지 않았다[洪世泰初屬譯職 以隷故擯之 去而力學爲文章 農巖諸公 樂與之交,後世稱其詩不衰].”라 하여, 재주는 있었으나 신분 때문에 동료에게 배척당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근체시에서 같은 글자는 쓰지 않는다는 규칙을 어겨 가면서 뛰어난 인재가 요절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홍세태는 자신의 평생을 시와 함께한 문인이었다. 당대에 시로 일찍부터 명성을 얻었고, 위항인(委巷人)의 신분이었지만 사대부 문인들에게서도 그의 시는 높이 평가되었다. 문장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었으나, 당풍(唐風)을 추구한 시에서 문학적 역량을 더 강하게 드러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시 작품에 응축하면서 평생의 회한(悔恨)인 사회적ㆍ신분적 갈등과 욕망을 유루(遺漏) 없이 나타내었다. 또한 시문에서 천기(天機)를 발현해야 진시(眞詩)를 이룰 수 있다는 문학론을 펼쳐 위항문인들의 문학론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박수천, 「柳下 洪世泰의 시문학」).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231~232쪽
인용
'한시놀이터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하곤 - 주분원이십일 무료중효두자미기주가체 잡용이어 희성절구(住分院二十餘日 無聊中效杜子美夔州歌體 雜用俚語 戱成絶句) (0) | 2019.02.28 |
---|---|
이의현 - 여래남경년 이이시재지척 연장걸면 부득순행열읍(余來南經年 而以時宰之斥 連章乞免 不得巡行列邑 今將遞歸 漫賦七絶 歷叙一路山川風俗 以替遊覽) (0) | 2019.02.27 |
김창업 - 파릉(菠薐) (0) | 2019.02.27 |
김창흡 - 야등연광정 차조정이운(夜登練光亭 次趙定而韻) (0) | 2019.02.27 |
김창흡 - 방속리산(訪俗離山) (0) | 2019.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