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용문 5일장
용문역에서 내려 역전 광장으로 나오니, 승태쌤이 기다리고 있었다. 광장에 나오기 전까지 ‘용문은 종점인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걸까?’ 궁금했는데, 광장에 나오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 용문역에서 나가는 길. 정말로 사람들이 많다.
용문 5일장이 서던 날, 용문행 전철에 몸을 싣다
도시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상설시장이 열린다. 예전부터 시장은 있었겠지만, 조선시대를 지나며 시장은 자리를 잡아 갔다. 시장의 입지조건으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 으뜸이지만, 조선시대엔 내부로까진 진출할 수 없었다. 자료 조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유추는 가능하다. 아마도 조선시대엔 ‘사士(학자)-농農(농민)-공工(수공업자)-상商(장사하는 사람)’의 위계에 따라 상인을 홀대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장사하는 사람들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 조선의 신분제도에선 상인이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시장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사대문 밖의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입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대문 밖에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어디일까? 굳이 먼 곳을 찾을 필요는 없다.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네 곳에 설치된 문을 통해서만 들어가야 하기에, 문 앞은 언제나 사람이 넘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의미로 쓰이긴 해도 ‘문전성시門前成市(문 앞엔 시장을 이룬다)’야 말로 시장 입지 조건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명맥을 유지해온 전통시장의 이름을 보면 공통적으로 사대문의 이름(서울의 남대문시장과 대구의 서문시장)을 따왔거나, 사대문의 방위를 이름(전주의 남부시장)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은 곳엔 3일장, 5일장, 7일장과 같이 정기적으로 시장이 열렸다. 시장이 열리는 날엔 곳곳에 흩어져 있던 보부상들이 한 곳으로 몰려들었으며, 그에 따라 지역민들도 시장을 중심으로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러니 사람이 차고 넘치며 활발한 물자교역과 정보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엔 전주에서 난장이란 게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곤 했다. 그땐 ‘맛있는 거 먹는 날’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1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1년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전주 풍남문 바로 바깥 쪽에 남부시장이 있다.
용문엔 5일장이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8월 30일은 5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경향 각지에서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탄 전철도 나이가 드신 분들이 많이 탔던 것이고,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내리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 임시천막을 펴서 5일장이 도로 한복판에 열렸다. 우린 그 속으로 들어간다.
용문시장에서 맛 본 짬뽕맛은?
‘시장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우린 주린 배부터 채워야 했다. 그래서 주변에 먹을 만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데, 조금 걸으니 중화요리집이 나오더라. 그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음식점 바로 앞엔 풍선 광고판이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 시선을 확 잡아끌도록 빨간 배경 위에 ‘해물짬뽕’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들어가선 각자가 먹고 싶은 걸 시키면 됐다. 나는 아침에 이미 라면을 먹고 왔기에 점심에도 면을 먹기는 그랬다. 그래서 짬뽕밥을 시켰고, 아이들도 각자 취향에 따라 짜장부터 볶음밥까지 다양하게 시켰다.
최근 들어서 ‘짬뽕’에 확 꽂혔다.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라면에 양파와 새우 등을 넣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예전엔 라면에 계란과 만두만을 넣어서 먹었는데, 1년 전부턴 좀 더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양파와 새우, 건오징어와 같은 것들을 넣어 먹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1년 전쯤부터 짬뽕에 끌렸다는 얘기되시겠다). 예전엔 돈이 없어서 외식을 거의 하지 못하던 때라 그저 짬뽕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젠 조금이라도 맛에 집중하며 내가 원하는 맛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더욱이 최근엔 3일이란 간격을 두며 최악의 짬뽕과 최고의 짬뽕을 먹어볼 수 있었다. 최악의 짬뽕은 집 근처 중국집에서 세트 메뉴를 시킨 것으로, 짬뽕맛은 밍밍하고 건더기도 푸짐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먹고 난 후에 입에 텁텁한 맛이 남아 있어서 별로였다. 거기다 함께 온 탕수육은 이미 눅눅해질 대로 눅눅해져 있고 고기도 별로 씹히지 않았으니, 이건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다 버릴 순 없으니 먹는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였다.
이에 반해 최고의 짬뽕은 차이나타운의 그나마 저렴한 곳에서 먹게 된 짬뽕이다.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고 뒷맛도 깔끔했으며 건더기까지 풍부하니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저절로 만족스러웠다. 그뿐인가 탕수육은 튀김옷은 얇고 고기의 크기도 적당했으며, 바삭바삭하기까지 하니 ‘탕수육이 아무리 맛있어봐야 거기서 거기’라던 편견이 일순간에 깨져버렸다.
과연 이집의 맛은 어떨까? 우선 내 입맛엔 매우 짰고 해물의 깊은 맛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한 뚝딱 비우긴 했지만, 가격이 꽤 비싼 편임에도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장날이라 그런지 중화요리집엔 계속 사람들이 들어오더라.
▲ 짬뽕도 최고였고, 탕수육도 최고였다. 순창에서 맛봤던 짬뽕맛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여기는 과연 어떨까?
잘 먹기 위해 집을 떠나오다
펜션으로 가기 전엔 장을 봐야 한다. 장을 보러 마트로 가는 길엔 자연히 5일장을 지나게 되어 있더라. 그래서 둘러보는데 역시 전통시장답게 다양한 품목들이 있고,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있더라. 그곳에서 승태쌤은 계곡에서 아이들과 물고기를 잡을 거라며 우산식 자동통발을 하나 샀다.
▲ 계곡에 가서 물고기를 잡으러 통발을 산다.
단재학교 전체여행의 백미는 단연 고기파티라 할 수 있다. 여행은 집을 떠나 다른 환경에서의 체험을 하는 것이지만, 실상 다른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실상 잘 먹고 잘 쉬는 가운데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잘 먹기 위해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고기를 빼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날도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고기 7근(원랜 9근을 사야 한다고 성화였으나, 초이쌤은 그건 과하다고 생각해서 그리 산 것이다)이나 샀고, 여기에 소시지까지 샀으니, 계곡에서 엄청 열심히 놀아 걸어 다닐 힘조차 없을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은 적당한 양이라 할 수 있다.
▲ 1박 2일동안 먹을 것들을 장 봤다.
인용
4. 슬펐다 기뻤다 왔다갔다
5. 용문 5일장
6. 중원폭포에서 놀다
9. 잘 먹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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