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 퇴
퇴계(魋髻)
만이(蠻夷)의 수식(首飾)인 북상투를 말한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퇴고(推敲)
시문(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일. 당(唐)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나귀를 타고 가다 시 한 수가 떠올랐다. 그것은 “새는 연못 가 나무에 자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鳥宿池邊樹僧推月下門)”라는 것이었는데, 달 아래 문을 민다보다는 두드린다(敲)고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다 그만 경조윤(京兆尹) 한유(韓愈)의 행차 길을 침범하였다. 한유 앞으로 끌려간 그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한유는 노여운 기색도 없이 한참 생각하더니 “역시 민다는 퇴(推)보다는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겠군” 하며 가도와 행차를 나란히 하였다는 고사(故事)에서 생겨난 말로 이때부터 퇴고란 말이 쓰이게 되었다. 『당시기사(唐詩紀事)』
퇴도옹(退陶翁)
퇴계 이황(李滉) 선생을 말한다.
퇴문총(堆文冢)
장사(長沙) 사람 유태(劉蛻)가 자신의 문장 초고(草稿)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모두 모아서 매장해 둔 무덤이다.
퇴발(退髮)
‘빠진 머리카락’을 말한다.
퇴부(堆阜)
농지(農地)를 제대로 다루지 않아서 언덕이 됨을 말한다.
퇴비익(退飛鷁)
『춘추(春秋)』에 “여섯 마리 물새가 후퇴하여 날아 송나라 도읍을 지나다[六鷁退飛 過宋都].”라는 말이 있다.
퇴식(退食)
조정에서 물러나와 식사를 하는 것. 또는 관리가 관청으로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것. 『시경(詩經)』 소남(召南) 「고양(羔羊)」
퇴어급류(退於急流)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용감하게 물러난다는 뜻으로, 즉 다사다난한 벼슬 자리를 용감하게 사양하고 물러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퇴옥산(頹玉山)
용자(容姿)가 아름다운 사람이 술에 만취된 것을 형용한 말이다. 동진(東晉) 때 산도(山濤)가 말하기를 “혜강(嵇康)의 사람됨은 우뚝해서 마치 외로이 서 있는 고송(孤松)과 같고, 그가 술에 취했을 때는 마치 옥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하였다.
퇴우(退憂)
조정에서 물러나 외방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송(宋) 나라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백성들을 걱정하였고, 멀리 물러나 강호(江湖)에 거하게 되면 임금을 걱정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 나아가서도 걱정이요, 물러나서도 걱정이었으니[是進亦優 退亦優], 어느 때인들 즐거울 수 있었겠는가.”라는 말이 나온 데에서 유래하였다.
퇴일과(退日戈)
『회남자(淮南子)』 「남명훈(覽冥訓)」에,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초(楚)나라의 노양공(魯陽公)이 군대를 거느리고 한(韓)나라의 군대와 싸움을 하였는데, 싸움이 한창 달아올랐을 때 하늘의 해가 저물었다. 이에 노양공이 창을 한번 휘두르자 해가 3사(舍)나 뒤로 물러났다.” 하였다.
퇴지(退之)
당 나라 한유(韓愈)의 자(字)가 퇴지(退之)인데, 육조(六朝) 시대의 부화(浮華)한 문장의 구습(舊習)을 일소(一掃)하고 고문(古文)을 창도하였다.
퇴지경(退之檠)
퇴지는 한유(韓愈)의 자이다. 한유의 「단등경가(短燈檠歌)」에, “긴 등걸이는 여덟 자로 부질없이 긴데, 짧은 등걸이는 두 「자로(子路)」 편리하고 밝구나[長檠八尺空自長 短檠二尺便且光].”하였다.
퇴지금시(退之琴詩)
한유(韓愈)의 청영사 탄금시(聽穎師彈琴詩)를 말한다. 청영사 탄금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昵昵兒女語 恩怨相爾汝 劃然變軒昻 勇士赴敵場 浮雲柳絮無根蔕 天地闊遠隨飛揚 暄啾百鳥羣 忽見孤鳳凰 躋攀分寸不可上 失勢一落千丈强 嗟余有兩耳 未省聽絲篁 自聞潁師彈 起坐在一房 推手遽止之 濕衣淚滂滂 潁乎爾誠能 無以氷炭置我膓” 『주문공교창려선생집(朱文公校昌黎先生集)』 第五卷
퇴지명수발(退之冥搜發)
석고문(石皷文)이 처음에는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가 당(唐)에 와서 위응물(韋應物)과 한유(韓愈)가 「석고가(石鼓歌)」를 지어 나타내어 밝힘으로써 비로소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퇴지산석구(退之山石句)
퇴지오물(退之傲物)
한퇴지(韓退之)의 남에 대한 오만성.
퇴지효이두(退之效李杜)
한퇴지(韓退之)는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를 본받았다.
퇴퇴(堆堆)
겹겹이 쌓인 모양, 오래도록 앉아 움직이지 않는 모양
퇴파묘황양(頹波渺滉漾)
무너진 물결이란 곧 쇠퇴해진 세상을 뜻한 것으로, 세상에 정도(正道)가 아주 없어져서 정도를 찾을 길이 없음을 한탄한 말이다.
퇴형혹어선언(退熒惑於善言)
춘추(春秋) 시대에 송(宋) 나라의 분야(分野)에 해당하는 곳에 형혹성(熒惑星)이 나타났으므로 송 나라의 군주인 경공(景公)은 이를 크게 걱정하였다. 천문을 담당한 자위(子韋)라는 자가 “정승에게 재앙을 돌리자.”고 하였으나 경공은 “정승은 나의 고굉(股肱)이다.” 하고 거절하였으며, “백성에게 돌리자.”고 하였으나 “군주는 백성이 있어야 한다.” 하고 거절하였으며, “연사(年事)에 돌리자.”고 하였으나 “연사가 흉년이 들면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니, 내가 어떻게 군주 노릇을 하겠는가.” 하고 거절하였다. 이에 자위는 “군주께서 군주다운 말씀을 세 번 하셨으니, 반드시 형혹성이 옮겨갈 것입니다.” 하였는데, 과연 1도(道)를 옮겨갔다 한다. 『사기(史記)』 「송세가(宋世家)」, 『여씨춘추(呂氏春秋)』 「계하기(季夏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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