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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 공손추 상 - 2-1. 나는 40살이라 부동심의 경지에 이르렀다 본문

고전/맹자

맹자 공손추 상 - 2-1. 나는 40살이라 부동심의 경지에 이르렀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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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나는 40살이라 부동심의 경지에 이르렀다

 

 

公孫丑問曰: “夫子加齊之卿相, 得行道焉, 雖由此霸王不異矣. 如此, 則動心否乎?”

, 去聲.

此承上章, 又設問孟子, 若得位而行道, 則雖由此而成霸王之業, 亦不足怪. 任大責重如此, 亦有所恐懼疑惑而動其心乎?

 

孟子: “. 我四十不動心.”

四十强仕, 君子道明德立之時. 孔子四十而不惑, 亦不動心之謂.

 

: “若是, 則夫子過孟賁遠矣.”

, 音奔.

孟賁, 勇士.

 

: “是不難, 告子先我不動心.”

告子, 不害. 孟賁血氣之勇, 蓋借之以贊孟子不動心之難. 孟子告子未爲知道, 乃能先我不動心, 則此亦未足爲難也.

 

: “不動心有道乎?”

程子: “心有主, 則能不動矣.”

 

: “. 北宮黝之養勇也, 不膚撓, 不目逃, 思以一豪挫於人, 若撻之於市朝. 不受於褐寬博, 亦不受於萬乘之君. 視刺萬乘之君, 若刺褐夫. 無嚴諸侯. 惡聲至, 必反之.

, 伊糾反. , 奴效反. , 音潮. , 去聲.

北宮, . 膚撓, 肌膚被刺而撓屈也. 目逃, 目被刺而轉睛逃避也. , 猶辱也. , 毛布. 寬博, 寬大之衣, 賤者之服也. 不受者, 不受其挫也. , 殺也. , 畏憚也. 言無可畏憚之諸侯也. 蓋刺客之流, 以必勝爲主, 而不動心者也.

 

孟施舍之所養勇也, : ‘視不勝猶勝也. 量敵而後進, 慮勝而後會, 是畏三軍者也. 豈能爲必勝哉? 能無懼而已矣.’

, 去聲, 下同.

, . , 發語聲. , 名也. , 合戰也. 自言其戰雖不勝, 亦無所懼. 若量敵慮勝而後進戰, 則是無勇而畏三軍矣. 蓋力戰之士, 以無懼爲主, 而不動心者也.

 

孟施舍曾子, 北宮黝子夏. 夫二子之勇, 未知其孰賢, 然而孟施舍守約也.

, 音扶.

務敵人, 專守己. 子夏篤信聖人, 曾子反求諸己. 故二子之與曾子, 子夏, 雖非等倫, 然論其氣象, 則各有所似. , 猶勝也. , 要也. 言論二子之勇, 則未知誰勝; 論其所守, 則舍比於黝, 爲得其要也.

 

昔者曾子子襄: 子好勇乎? 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 去聲. , 之瑞反.

此言曾子之勇也. 子襄, 曾子弟子也. 夫子, 孔子. , 直也.

檀弓: “古者冠縮縫, 今也衡縫.” 又曰: “棺束縮二衡三.” , 恐懼之也. , 往而敵之也.

 

孟施舍之守氣, 又不如曾子之守約也.”

孟施舍雖似曾子, 然其所守乃一身之氣, 又不如曾子之反身循理, 所守尤得其要也. 孟子之不動心, 其原蓋出於此, 下文詳之.

 

: “敢問夫子之不動心, 告子之不動心, 可得聞與?”

聞與之與, 平聲.

 

告子曰: 不得於言, 勿求於心; 不得於心, 勿求於氣.

告子謂於言有所不達, 則當舍置其言, 而不必反求其理於心, 於心有所不安, 則當力制其心, 而不必更求其助於氣, 此所以固守其心而不動之速也.

 

不得於心, 勿求於氣, ; 不得於言, 勿求於心, 不可. 夫志, 氣之帥也; , 體之充也. 夫志至焉, 氣次焉. 故曰: ‘持其志, 無暴其氣.’”

夫志之夫, 音扶.

此一節, 公孫丑之問. 孟子告子之言, 又斷以己意而告之也.

孟子旣誦其言而斷之曰, 彼謂不得於心而勿求諸氣者, 急於本而緩其末, 猶之可也; 謂不得於言而不求諸心, 則旣失於外, 而遂遺其內, 其不可也必矣.

然凡曰可者, 亦僅可而有所未盡之辭耳. 若論其極, 則志固心之所之, 而爲氣之將帥; 然氣亦人之所以充滿於身, 而爲志之卒徒者也. 故志固爲至極, 而氣卽次之. 人固當敬守其志, 然亦不可不致養其氣. 蓋其內外本末, 交相培養. 此則孟子之心所以未嘗必其不動, 而自然不動之大略也.

 

旣曰 志至焉, 氣次焉’, 又曰 持其志無暴其氣, 何也?”

公孫丑孟子言志至而氣次, 故問如此則專持其志可矣, 又言無暴其氣何也?

 

: “志壹則動氣, 氣壹則動志也. 今夫蹶者趨者, 是氣也, 而反動其心.”

, 音扶.

, 專一也. , 顚躓也. , 走也.

孟子言志之所向專一, 則氣固從之; 然氣之所在專一, 則志亦反爲之動. 如人顚躓趨走, 則氣專在是而反動其心焉. 所以旣持其志, 而又必無暴其氣也.

程子曰: “志動氣者什九, 氣動志者什一.”

 

 

 

 

 

 

해석

公孫丑問曰: “夫子加齊之卿相, 得行道焉, 雖由此霸王不異矣. 如此, 則動心否乎?”

공손추가 부자께서 제나라의 경상(卿相)이란 지위에 오르셔서 왕도(王道)를 행할 수 있게 된다면, 비록 이 때문에 패도(覇道)나 왕도(王道)가 실현되더라도 기이하게 생각할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진짜로 일어난다면 마음을 요동치게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다.

, 去聲.

此承上章, 又設問孟子, 若得位而行道,

여기선 윗 장을 이어 또한 가설하여 맹자가 지위를 얻어 도를 행하게 된다면

 

則雖由此而成霸王之業, 亦不足怪.

비록 이 때문에 패도와 왕도의 업적을 이루더라도 또한 괴이하게 생각할 게 없다.

 

任大責重如此,

임무는 크고 책임은 막중함이 이와 같기에,

 

亦有所恐懼疑惑而動其心乎?

또한 두려워하는 것과 의혹되는 것이 있어 마음을 요동치게 할 것이다라고 물은 것이다.

 

孟子: “. 我四十不動心.”

맹자께서 아니다. 나는 40살이라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 이르렀다.”라고 말씀하셨다.

四十强仕, 君子道明德立之時.

40강사(强仕): 40세를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曲禮)人生十年曰幼學, 二十曰弱冠, 三十曰壯有室, 四十曰彊而仕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마흔 살쯤 되면 지기(志氣)가 굳건하게 확립되어 이해(利害)나 화복(禍福)에 흔들림이 없게 되니 이제 벼슬해도 된다는 뜻이다엔 막 벼슬에 나가 군자의 도는 분명하고 덕은 확립되어 있을 때다.

 

孔子四十而不惑, 亦不動心之謂.

공자가 ‘40살에 미혹되지 않았다라 한 것도, 또한 부동심을 말한 것이다.

 

: “若是, 則夫子過孟賁遠矣.”

공손추가 이와 같다면 부자께선 제나라의 전설적인 장수인 맹분(孟賁)보다 용맹하심이 훨씬 크십니다.”라고 말씀드렸다.

, 音奔.

孟賁, 勇士.

맹분은 용사다.

 

: “是不難, 告子先我不動心.”

맹자께서 이건 어려운 게 아니다. 고자묵자의 제자로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학문경지를 개척한 사람으로 보인다. 인간의 본성은 근원적으로 선악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맹자가 고자를 매우 비판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자를 존경했다. 고자를 맹자의 제자로서 보는 견해는 모두 틀린 것이다. 고자는 맹자보다 윗세대의 사람이며 직하에서 같이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제나라에 있을 동안 왕래가 많았고 논쟁도 많이 하면서 서로를 계발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맹자, 사람의 길, 235께서도 나보다 먼저 부동심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告子, 不害.

고자는 이름이 불해다.

 

孟賁血氣之勇,

맹분은 혈기의 용맹함이 있기에

 

蓋借之以贊孟子不動心之難.

공손추는 대개 그걸 차용하여 맹자 부동심의 어려움을 기린 것이다.

 

孟子告子未爲知道, 乃能先我不動心,

맹자는 고자는 도를 알지는 못하지만 나보다 먼저 부동심을 하였으니

 

則此亦未足爲難也.

이것은 또한 족히 어려울 게 없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 “不動心有道乎?”

공손추가 부동심(不動心)을 하는 방법이란 게 있습니까?”라고 말씀드리니,

程子: “心有主, 則能不動矣.”

정이천이 말했다. “마음에 주장하는 게 있으면, 움직이지 않게 할 수 있다.”

 

: “. 北宮黝之養勇也, 不膚撓, 不目逃, 思以一豪挫於人, 若撻之於市朝. 不受於褐寬博, 亦不受於萬乘之君. 視刺萬乘之君, 若刺褐夫. 無嚴諸侯. 惡聲至, 必反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당연히 있지. 북궁요의 용맹을 기르는 방법이 그 하나인데, 살이 흉기에 찔리더라도 의지를 꺾지 않았으며, 눈이 찔리더라도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욕을 보이면 그는 마치 자신이 저자에서 매질 당했다고 생각하여 천민에게도 욕을 받지 않았고, 또한 만승의 임금에게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만승의 임금을 칼로 찌는 것 보는 것을 천민을 찌르는 것처럼 보듯 무서워하는 제후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헐뜯는 소리가 들려오면 반드시 되갚아줬다.

, 伊糾反. , 奴效反. , 音潮. , 去聲.

北宮, .

북궁은 성이고 요는 이름이다.

 

膚撓, 肌膚被刺而撓屈也.

부뇨(膚撓)는 살갗이 칼에 찔려 의지가 흔들리고 굽히는 것을 말하며,

 

目逃, 目被刺而轉睛逃避也.

목도(目逃)는 눈이 칼에 찔려 눈동자를 굴려 시선을 회피하는 것을 말한다.

 

, 猶辱也.

()는 욕 당한다는 뜻이다.

 

, 毛布.

()은 털로 만든 포다.

 

寬博, 寬大之衣, 賤者之服也.

갈관(寬博)은 품이 너른 옷으로 천한 이들의 옷이다.

 

不受者, 不受其挫也.

받지 않는다는 것은 꺾임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殺也.

()는 죽인다는 뜻이다.

 

, 畏憚也.

()은 두려워하고 꺼린다는 뜻으로,

 

言無可畏憚之諸侯也.

두려워하고 꺼릴 만한 제후가 없다는 말이다.

 

蓋刺客之流, 以必勝爲主,

북궁유는 대개 자객의 부류로 필승을 주장으로 삼아

 

而不動心者也.

부동심했던 사람일 것이다.

 

孟施舍之所養勇也, : ‘視不勝猶勝也. 量敵而後進, 慮勝而後會, 是畏三軍者也. 豈能爲必勝哉? 能無懼而已矣.’

맹시사의 용맹을 기르는 방법이 그 하나인데, 그는 늘 이기지 못할 것을 보고서 이길 것 같이 여겨야지. 쫌생이처럼 적을 헤아린 후에 붙으려 하고, 이길 만하다는 걸 고려한 후에 싸우려 한다면, 이것은 삼군(三軍)군대의 총칭. 춘추시대 대국(大國)들은 대부분 삼군(三軍)을 설치했는데, 상군 · 중군 · 하군 또는 좌군 · 중군 · 우군 등으로 나누었다. 보병(步兵) · 거병(車兵) · 기병(騎兵)3종 부대를 가리키기도 했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내가 어찌 반드시 이길 걸 자신하겠는가?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 去聲, 下同.

, . , 發語聲. , 名也.

맹은 성이고 시는 발어성이며, 사는 이름이다.

 

, 合戰也.

()는 모여 싸운다는 뜻이다.

 

自言其戰雖不勝, 亦無所懼.

맹시사가 말했다. ‘그 전투에서 비록 이기지 못하더라도 또한 두려워하지 않았다.

 

若量敵慮勝而後進戰,

만약 적을 계산하고 승리를 고려한 후에 나아가 싸운다면

 

則是無勇而畏三軍矣.

이것은 용기도 없고 삼군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蓋力戰之士, 以無懼爲主,

맹시사는 대개 힘써 싸우는 전사로, 두려움이 없는 것을 주장으로 삼아

 

而不動心者也.

부동심했던 사람일 것이다.

 

孟施舍曾子, 北宮黝子夏. 夫二子之勇, 未知其孰賢, 然而孟施舍守約也.

맹시사는 증자와 같고, 북궁유는 자하와 같다. 이 두 사람의 용맹이 누가 나은지는 알 수 없지만, 맹시사의 지킴이 요약되었다.

, 音扶.

務敵人, 專守己.

북궁요는 남을 대적하는 데에 힘썼고, 맹시사는 자기를 지키는 데에 전심했다.

 

子夏篤信聖人, 曾子反求諸己.

자하는 독실하게 성인을 믿었고, 증자는 돌이켜 자기에게서 구했다.

 

故二子之與曾子, 子夏, 雖非等倫,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과 증자와 자하는 같은 등급의 무리라 할 수 없다.

 

然論其氣象, 則各有所似.

그러나 기질의 형상으로 얘기해본다면 각각 비슷한 게 있다.

 

, 猶勝也. , 要也.

()은 승()과 같다. ()은 요약이란 뜻이다.

 

言論二子之勇, 則未知誰勝;

두 사람의 용맹으로 말한다면, 누가 나은지 알지 못하지만,

 

論其所守, 則舍比於黝, 爲得其要也.

그 지킴으로 말한다면 맹시사는 북궁요에 비해 그 요약됨을 얻었다라고 말한 것이다.

 

昔者曾子子襄: 子好勇乎? 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옛적에 증자께선 제자인 자양(子襄)에게 '자네는 용맹을 좋아하는가? 내가 일전에 공자께 큰 용맹에 대해 들어보니, 스스로 돌아봐 올바르질 못하면 비록 천민인의 대군이 있더라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돌아봐 올바르다면 비록 천만인의 대군이 있더라도 나는 가서 대적하리라라고 하셨네'라고 말씀하셨다.

, 去聲. , 之瑞反.

此言曾子之勇也.

여기선 증자의 용맹을 말했다.

 

子襄, 曾子弟子也.

자양은 증자의 제자다.

 

夫子, 孔子. , 直也.

부자는 공자를 말한다. ()은 곧다는 뜻이다.

 

檀弓: “古者冠縮縫, 今也衡縫.”

단궁옛적엔 관을 곧게 꿰맸지만, 지금은 가로로 꿰맨다라고 쓰여 있다.

 

又曰: “棺束縮二衡三.”

또한 관의 묶음에 곧게 두 번, 가로로 세 번 하라.”고 쓰여 있다.

 

, 恐懼之也. , 往而敵之也.

()는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은 가서 대적한다는 뜻이다.

 

孟施舍之守氣, 又不如曾子之守約也.”

그렇기 때문에 맹시사의 지킴은 기운 때문으로, 증자의 지킴이 요약한 것과 같지 않다.”

孟施舍雖似曾子, 然其所守乃一身之氣,

맹시사가 비록 증자와 비슷하지만, 그 지킨 것은 곧 한 몸의 기운이었다.

 

又不如曾子之反身循理,

또한 증자가 몸을 돌이켜 이치를 따라

 

所守尤得其要也.

지킴이 더욱 그 요약됨을 얻은 것과는 같지 못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孟子之不動心, 其原蓋出於此,

맹자의 부동심은 그 근원이 대개 여기에서 나왔으니

 

下文詳之.

아래의 문장에 자세히 풀어져 있다.

 

: “敢問夫子之不動心, 告子之不動心, 可得聞與?”

공손추가 감히 여쭙겠습니다. 부자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에 대해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리자,

聞與之與, 平聲.

 

告子曰: 不得於言, 勿求於心; 不得於心, 勿求於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고자께서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음에서 (이해할 것을) 구하려 하지 말고,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에서 (이해할 것을) 구하려 하지 말라. 그래야 부동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告子謂於言有所不達, 則當舍置其言,

고자는 말의 뜻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마땅히 그 말을 버려둬야지

 

而不必反求其理於心,

반드시 도리어 그 이치를 마음에서 구하지 않아야 하고,

 

於心有所不安, 則當力制其心,

마음에 불안한 게 있다면 마땅히 힘써 그 마음을 없애야지

 

而不必更求其助於氣,

반드시 다시 도움을 기에서 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으니,

 

此所以固守其心而不動之速也.

이것이 그 마음을 견고하게 지켜 부동하기를 신속하게 하는 방법이다.

 

不得於心, 勿求於氣, ; 不得於言, 勿求於心, 不可. 夫志, 氣之帥也; , 體之充也.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기에서 구하려 하지 말라는 것은 옳지만,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마음에서 구하려 하지 말라는 것은 그르다. 말이 이해될 때까지 마음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고자 선생의 생각일 뿐,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의지란 기를 통솔하는 장수요, 기는 온 몸에 가득 찬 기운이다.

 

夫志至焉, 氣次焉. 故曰: ‘持其志, 無暴其氣.’”

그래서 의지가 지극하여지면 기는 자연스레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지를 가지고서도 그 기를 포악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다.”

夫志之夫, 音扶.

此一節, 公孫丑之問. 孟子告子之言,

여기의 일절은 공손추의 물음에, 맹자가 고자의 말을 암송하여

 

又斷以己意而告之也.

또한 자기의 뜻으로 단정하여 알려준 것이다.

 

孟子旣誦其言而斷之曰,

맹자는 이미 그 말을 암송하고 그걸 단정하며

 

彼謂不得於心而勿求諸氣者,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기에서 구하려 하지 말라는 것은

 

急於本而緩其末, 猶之可也;

근본에 급하게 하고, 말단엔 천천히 한 것이기에 옳지만,

 

謂不得於言而不求諸心, 則旣失於外,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마음에서 구하려 하지 말라는 것은 이미 밖에서 잃고

 

而遂遺其內, 其不可也必矣.

마침내는 안마저 버린 게 되니, 그른 게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然凡曰可者, 亦僅可而有所未盡之辭耳.

그러나 옳다는 것은 또한 겨우 가하다는 것으로 미진한 것이 있다는 말일 뿐이다.

 

若論其極, 則志固心之所之, 而爲氣之將帥;

만약 그 최고의 방법을 얘기하자면 의지는 본래 마음이 가는 것으로, 기의 장수가 된다.

 

然氣亦人之所以充滿於身, 而爲志之卒徒者也.

그러나 기 또한 사람의 몸에 충만한 에너지로 의지의 부하가 된다.

 

故志固爲至極, 而氣卽次之.

그렇기 때문에 의지는 본래 지극한 것이고 기는 그 다음 차례라는 것이다.

 

人固當敬守其志,

사람은 본래 마땅히 그 의지를 공경히 지켜야

 

然亦不可不致養其氣.

하지만 또한 그 기를 양성하길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蓋其內外本末, 交相培養.

대개 그 안과 밖, 근본과 말단이 서로 사귀며 길러져 가는 것이니,

 

此則孟子之心所以未嘗必其不動,

이게 맹자의 마음이 일찍이 부동하길 기필하진 않았으나,

 

而自然不動之大略也.

자연히 부동심에 이르게 된 대략인 것이다.

 

旣曰 志至焉, 氣次焉’, 又曰 持其志無暴其氣, 何也?”

공손추가 이미 의지가 지극하여지면 기는 자연스레 따르게 된다라고 말씀하셔 놓고, 다시 그 의지를 가지고서도 그 기를 포악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여쭈었다.

公孫丑孟子言志至而氣次,

공손추는 맹자가 의지가 지극한 것이고 기는 그 다음 차례다라고 말하는 걸 보았기 때문에,

 

故問如此則專持其志可矣,

정령 이러하다면 그 의지를 전일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될 텐데,

 

又言無暴其氣何也?

또한 그 기를 포악하도록 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왜입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 “志壹則動氣, 氣壹則動志也. 今夫蹶者趨者, 是氣也, 而反動其心.”

맹자께서 의지가 전일하여지면 기를 움직이지만, 기가 전일하여져도 의지가 움직이는 것이다. 달리다가 넘어지는 것은 기의 일시적인 전일해짐이지만, 그럼에도 도리어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 音扶.

, 專一也. , 顚躓也.

()은 전일하단 뜻이다. ()은 넘어진다는 뜻이다.

 

, 走也.

()는 달린다는 뜻이다.

 

孟子言志之所向專一, 則氣固從之;

맹자는 의지가 향하는 곳이 전일하다면 기는 본래 그것을 따르게 되어 있다.

 

然氣之所在專一, 則志亦反爲之動.

그러나 기가 있는 곳이 전일하다면 의지 또한 도리어 움직이게 된다.

 

如人顚躓趨走, 則氣專在是而反動其心焉.

사람이 달라다가 넘어지면 기가 전일하게 여기에 있어 도리어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所以旣持其志,

그렇기 때문에 이미 그 의지를 지니고도

 

而又必無暴其氣也.

또 반드시 그 기를 포악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되는 것이다.

 

程子曰: “志動氣者什九,

정명도(程明道)가 말했다. “의지가 기를 움직이는 사람은 9/10이고,

 

氣動志者什一.”

기가 의지를 움직이는 사람은 1/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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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전문 / 역주

삼천지교 / 생애 / 孟子題辭

소통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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