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에 대해
未有知而不行者. 知而不行, 只是未知. 聖賢敎人知行, 正是要復那本體, 不是著你只恁的便罷.
故『大學』指箇眞知行與人看, 說‘如好好色, 如惡惡臭.’
見好色屬知, 好好色屬行. 只見那好色時, 已自好了. 不是見了後, 又立箇心去好; 聞惡臭屬知, 惡惡臭屬行. 只聞那惡臭時, 已自惡了. 不是聞了後, 別立箇心去惡.
如鼻塞人雖貝惡臭在前, 鼻中不曾聞得, 便亦不甚惡. 亦只是不曾知臭.
就如稱某人知孝, 某人知弟, 必是其人已曾行孝行弟, 方可稱他知孝知弟. 不成只是曉得說些孝弟的話, 便可稱爲知孝弟.
又如知痛, 必已自痛了, 方知痛. 知寒, 必已自寒了; 知饑, 必已自饑了.
知行如何分得開?
해석
未有知而不行者.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있지 않다.
知而不行, 只是未知.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상 다만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聖賢敎人知行, 正是要復那本體,
성현이 사람들에게 知行을 가르친 것은 바로 본체를 회복하길 요구해서이지
不是著你只恁的便罷.
보통사람들이 다만 임의대로 편하게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다.
故『大學』指箇眞知行與人看,
그러므로 『대학』애선 개개의 참다운 知行을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여주면서
說‘如好好色, 如惡惡臭.’
‘이성을 좋아하듯 악취를 미워하듯’하라고 말한 것이다.
見好色屬知, 好好色屬行.
이성을 좋아하는 걸 보는 건 앎에 속하고 이성을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건 행동에 속한다.
只見那好色時, 已自好了.
다만 저 이성을 좋다는 걸 본 때에 이미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지
不是見了後, 又立箇心去好;
이미 보기를 마친 후에 또한 개개의 마음을 세워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니다.
聞惡臭屬知, 惡惡臭屬行.
악취를 맡는 건 앎에 속하고 악취를 미워하는 건 행동에 속한다.
只聞那惡臭時, 已自惡了.
다만 저 악취를 맡았을 때에 이미 스스로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지
不是聞了後, 別立箇心去惡.
이미 맡기를 마친 후에 별도로 개개의 마음을 세워 미워하게 되는 건 아니다.
如鼻塞人雖貝惡臭在前,
예를 들면 코가 막힌 사람은 비록 썩은 악취가 앞에 있더라도
鼻中不曾聞得,
코 속에서 일찍이 맡을 수가 없기 때문에
便亦不甚惡.
곧바로 또한 심히 미워하질 않으니,
亦只是不曾知臭.
또한 다만 이것은 일찍이 냄새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就如稱某人知孝, 某人知弟,
가령 아무개는 효를 안다고 칭송되고 아무개는 공손함을 안다고 칭송되는 경우에
必是其人已曾行孝行弟,
반드시 이 사람이 이미 일찍이 효를 실천하고 공손함을 실천해야지만
方可稱他知孝知弟.
비로소 다른 사람이 효를 알고 공손함을 안다고 칭송할 수 있는 것이다.
不成只是曉得說些孝弟的話,
다만 새벽에 효제의 말을 깨우쳤다고 해서
便可稱爲知孝弟.
문득 효제를 안다고 칭송하는 경우는 없다.
又如知痛, 必已自痛了,
또한 아픔을 아는 경우도 반드시 자기가 스스로 아파봐야만
方知痛.
비로소 아픔을 안다고 할 수 있다.
知寒, 必已自寒了;
추위를 안다는 경우도 반드시 자기가 스스로 추위를 겪어봐야만 하고
知饑, 必已自饑了.
굶주림을 안다는 경우도 반드시 자기가 스스로 굶주려봐야만 한다.
知行如何分得開?
知行이 어찌 나누어지는 것이겠는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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