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자-맹자로 이어진 흐름이 송나라에서 다시 이어져 『대학』이 출간되다
무너진 예교(禮敎)를 세운 공자의 고군분투
及周之衰, 賢聖之君不作, 學校之政不修, 敎化陵夷, 風俗頹敗. 時則有若孔子之聖, 而不得君師之位, 以行其政敎.
於是獨取先王之法, 誦而傳之, 而詔後世, 若『曲禮』ㆍ『少儀』ㆍ『內則』ㆍ『弟子職』諸篇, 固小學之支流餘裔, 而此篇者則因小學之成功, 以著大學之明法, 外有以極其規模之大, 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
증자-맹자로 이어지는 유학의 흐름
三千之徒, 蓋莫不聞其說, 而曾氏之傳, 獨得其宗. 於是作爲傳義, 以發其意, 及孟子沒, 而其傳泯焉. 卽其書雖存, 而知者鮮矣.
맹자 사후 정치와 교육은 무너져버리다
自是以來, 俗儒記誦詞章之習, 其功倍於『小學』而無用; 異端虛無寂滅之敎, 其高過於『大學』而無實, 其他權謀術數, 一切以就功名之說, 與夫百家衆技之流, 所以惑世誣民, 充塞仁義者, 又紛然雜出乎其間.
使其君子, 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 其小人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 晦盲否塞, 反覆沈痼, 以及五季之衰而壞亂極矣.
끊어진 흐름이 송나라에서 다시 이어지다
天運循環, 無往不復, 宋德隆盛, 治敎休明.
於是河南程氏兩夫子出, 而有以接乎孟氏之傳. 實始尊信此篇, 而表章之, 旣又爲之次其簡編, 發其歸趣. 然後古者大學敎人之法, 聖經賢傳之指, 粲然復明於世.
雖以熹之不敏, 亦幸私淑而與有聞焉. 顧其爲書猶頗放失, 是以忘其固陋, 采而輯之, 間亦竊附己意, 補其闕略, 以俟後之君子. 極知僭踰無所逃罪, 然於國家化民成俗之意, 學者修己治人之方, 則未必無小補云.
淳熙己酉二月甲子, 新安朱熹書.
해석
무너진 예교(禮敎)를 세운 공자의 고군분투
及周之衰, 賢聖之君不作, 學校之政不修,
주나라가 쇠퇴하자 어질고 성스런 군주가 나오지 않고 학교의 정사(政事)가 닦이지 않아
敎化陵夷, 風俗頹敗.
교화가 침체되었고 미풍양속(美風良俗)이 퇴폐해졌다.
時則有若孔子之聖, 而不得君師之位,
이때엔 공자 같은 성인이라 해도 군주나 스승의 지위를 얻어
以行其政敎.
정치와 가르침을 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於是獨取先王之法, 誦而傳之, 而詔後世,
이에 홀로 선왕의 법을 취하여 외워 전하며 후세를 가르쳤으니
若『曲禮』ㆍ『少儀』ㆍ『內則』ㆍ『弟子職』諸篇,
『곡례』와 『소의』와 『내칙』과 『제자직』의 여러 편은
固小學之支流餘裔,
진실로 소학의 지류이며 남은 혈통으로
而此篇者則因小學之成功, 以著大學之明法,
이편들은 소학의 성공에 따라 대학의 밝은 법을 드러내
外有以極其規模之大, 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
밖으론 규모의 큼을 다했고 안으론 요소의 상세함을 다했다.
증자-맹자로 이어지는 유학의 흐름
三千之徒, 蓋莫不聞其說,
3000명의 무리가 대개 말씀을 듣지 않음이 없었지만
而曾氏之傳, 獨得其宗.
증삼의 전함이 홀로 핵심을 얻었다.
於是作爲傳義, 以發其意, 及孟子沒, 而其傳泯焉.
이에 전한 뜻을 저술하여 뜻을 발명했지만 맹자가 죽자 전해진 게 사라져,
卽其書雖存, 而知者鮮矣.
곧 책은 비록 있더라도 아는 이는 드물게 된 것이다.
맹자 사후 정치와 교육은 무너져버리다
自是以來, 俗儒記誦詞章之習,
이때로부터 이래로 속된 유학자들의 기송(記誦)과 사장(詞章)의 익히는
其功倍於『小學』而無用;
공력이 『소학』보다 두 배임에도 무용했고
異端虛無寂滅之敎, 其高過於『大學』而無實,
이단인 허무한 노자와 적멸한 불교의 가르치는 원대함이 『대학』보다 지나침에도 무실했으며,
其他權謀術數, 一切以就功名之說, 與夫百家衆技之流,
기타 권모술수와 일체 공명에 나가는 말과 제자백가와 뭇 기술을 다른 부류들이
所以惑世誣民, 充塞仁義者,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을 속임으로 인의를 막는 자들이
又紛然雜出乎其間.
또한 어지럽게 그 사이에서 잡스럽게 나왔다.
使其君子, 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
그러니 군주는 불행히도 대도의 요체를 들을 수 없었고
其小人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
소인도 불행히 지극한 다스림의 혜택을 입을 수 없어
晦盲否塞, 反覆沈痼,
어두워지고 막혀 반복적으로 지병이 되니
以及五季之衰而壞亂極矣.
오계의 쇠퇴함에 이르러선 무너지고 혼란스러움이 극심해졌다.
끊어진 흐름이 송나라에서 다시 이어지다
天運循環, 無往不復,
하늘의 운수가 순환하여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니
宋德隆盛, 治敎休明.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다스림과 가르침이 아름답고 밝았다.
於是河南程氏兩夫子出, 而有以接乎孟氏之傳.
이에 하남 정씨인 두 선생이 나와 맹자의 전함을 접하게 되었다.
實始尊信此篇, 而表章之,
그래서 실제로 비로소 이 책을 존중하고 믿어 드러냈고
旣又爲之次其簡編, 發其歸趣.
이미 또한 이를 위해 죽간의 편들을 차례지어 말의 핵심을 발명했다.
然後古者大學敎人之法, 聖經賢傳之指,
그런 후에야 옛날에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친 법과 성인의 경서(經書)와 현인의 전서(傳書)의 뜻이
粲然復明於世.
환하게 다시 세상에 밝아졌다.
雖以熹之不敏, 亦幸私淑而與有聞焉.
비록 내가 민첩하지 못하다 해도 또한 다행히 사숙했고 참여해서 들은 게 있었다.
顧其爲書猶頗放失,
고찰해보면 지어진 책이 오히려 매우 사라진 부분이 있기에
是以忘其固陋, 采而輯之,
이런 이유로 고루함을 잊은 채 모아 편집했고
間亦竊附己意, 補其闕略, 以俟後之君子.
간간이 또한 나의 의견을 덧붙여 빠진 부분을 보충했으니 뒷날의 군자를 기다리겠다.
極知僭踰無所逃罪, 然於國家化民成俗之意,
극도로 참람되어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알지만 국가의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는 뜻과
學者修己治人之方, 則未必無小補云.
학자가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방법에 반드시 조금이나마 보탬이 없진 않으리라.
순희 기유(1189)년 2월 4일에 신안에 사는 주희가 쓰다.
인용
- 『대학장구』의 서문이 완성된 시점이 1189년 2월 4일이므로 결국 『대학장구』가 일단 완성된 후 약1개월 후에 이 『중용장구』가 완성된 것이다. -『중용한글역주』, 17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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