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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2. 자료의 선택 문제: 풍요(風謠)와 위항시인(委巷詩人)의 의지④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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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서설(序說) - 2. 자료의 선택 문제: 풍요(風謠)와 위항시인(委巷詩人)의 의지④

건방진방랑자 2021. 12. 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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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삼선(風謠三選)은 속선(續選)의 속집(續集)이다. 직하사(稷下社)의 시동우(詩同友)유재건(劉在建)ㆍ최경흠(崔景欽) 등이 풍요속선(風謠續選)이후의 위항시인 305()의 시()를 선집(選集)하여 철종(哲宗) 8년 정사(丁巳, 1857)에 인행(印行)7() 3책본(冊本)이다. 소대풍요(昭代風謠)가 간행된 지 60년만에 풍요속선(風謠續選)이 간행되었고 다시 60년이 되는 해에 풍요삼선(風謠三選)이 나왔다. 소대풍요(昭代風謠)의 준비기간(準備期間)까지 합치면 120년이 훨씬 넘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도 위항시인들은 그들의 의지를 꺾지 않고 삼선(三選)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로써 위항시인들의 시편(詩篇)이 대체로 수습되었으며 사실상 이것이 독자적인 위항시인의 시집(詩集)으로는 마지막 간행이 되었다. 내용에 있어서도 속선(續選)을 편집한 천수경(千壽慶)장혼(張混)을 비롯하여 김낙서(金洛瑞)ㆍ왕태(王太)박윤묵(朴允默) 등 송석원(松石園)의 중심 구성원들이 이채(異彩)를 띠고 있으며 조수삼(趙秀三)정지윤(鄭芝潤)과 같은 일시(一時)의 명류(名流)들이 끼어 있어 이 책의 내용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편제(編制)는 속선(續選)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나 실명씨(失名氏) 4, 석자(釋子) 13, 여자(女子) 4인을 수록하고 있는 것이 위항시집(委巷詩集)으로서는 이례적이다. 이 책의 발간 경위에 대해서는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수록된 최경흠전기(崔景欽傳記)에 상술(詳述)되어 있다.

 

 

또 시문(詩文)에도 뛰어나 동지(同志)들과 더불어 이를 함께 하려 하고 마침내 시사(詩社)를 결성(結城)하였는데, 나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매양 꽃 피는 아침, 달 뜨는 저녁이면 한데 모여 시()를 읊조리곤 하였는데 계축년(癸丑年) 봄에 이르러 난정계사(蘭亭稧事)를 모방하여 직하사(稷下社)에 모이어 각각 시()를 짓고 마시고 즐길 때 치명(穉明)이 풍요(風謠)를 계속 편찬할 것을 발의(發議)하였으므로 모두들 찬성하였다. 곧 여러 곳에 두루 알려 작품(作品)을 수집하고 문장대가(文章大家)에게 나아가 질정(質正)을 받았다. 정사년(丁巳年) 겨울에 이르러 편집이 거의 완료되어 이름을 풍요삼선(風謠三選)이라 하고 마침내 성금(誠金)을 모아 300여질(餘帙)을 인행(印行)하였다. 서문(序文)은 경산(經山) 정원용(鄭元容) 대감에게 받았으며

又善於詩文, 欲與同志共之遂結社, 余亦參焉. 每於花朝月夕會而吟詠, 及癸丑春, 倣蘭亭稧事, 會于稷下社, 各賦詩飮而樂之, 穉明乃發風謠續編之議. 僉曰可 卽爲通諭于諸處 收輯諸作就正于文章大家 至丁巳冬編幾完 名曰風謠三選 遂鳩財刊印三百餘本 受序文于經山鄭相國- 劉在建, 里鄕見聞錄7, 崔景欽傳.

 

 

이 전기(傳記)는 삼선(三選)의 편자인 유재건(劉在建)이 직접 쓴 것이므로, 풍요삼선(風謠三選)의 간행이 직하사(稷下社)의 결의에 의하여 수행된 사실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직하사(稷下社) 성립경위와 분위기에 대해서도 함께 알게 해준다.

 

직하사(稷下社)의 중심인물로는 최경흠(崔景欽)유재건(劉在建)ㆍ조희룡(趙熙龍)ㆍ이경민(李慶民) 등을 들 수 있다. 그 활동은 송석원(松石園)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였지마는, 그 중심 구성원들이 저작한 호산외사(壺山外史)(趙熙龍), 희조질사(熙朝軼事)(李慶民),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劉在建) 등은 위항시인(委巷詩人)의 전기(傳記) 자료로서 값진 것이 되고 있다.

 

삼선(三選) 이후 다시 60년이 되는 1917년에 기당(幾堂) 한만용(韓晩容)이 풍요사선(風謠四選)의 편찬 문제를 최남선(崔南善)에게 의논한 일이 있었으나,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제도적으로 계급이 타파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부정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중지되었으며구자균(具滋均), 조선평민문학사(朝鮮平民文學史), p.111, 장지연(張志淵)ㆍ이기(李琦)ㆍ장홍(張鴻) 등과도 편집을 기획한 바 있으나 역시 당시 실정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장지연(張志淵) 등이 이 해에 편집한 대동시선(大東詩選)후반에 삼선(三選) 이후의 위항시(委巷詩)가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 표면상으로는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의 계급 타파를 운위(云謂)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도 구한말의 격동과 일본의 한국 강점 등을 거치는 동안 중인층의 사회적 진출이 현저해져서 사실상 계층 이동이 실현된 상태였으므로 구차하게 그 신분을 적출(摘出)하면서까지 위항시집(委巷詩集)의 속집(續輯)을 기도하는 것은 시의(時宜)를 잃은 일이다.

 

 

 

 

 

 

인용

목차

서사한시

한시미학

16~17세기 한시사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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