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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 학이 - 15. 작은 성취에 만족치 말고 더 나가라 본문

고전/논어

논어 학이 - 15. 작은 성취에 만족치 말고 더 나가라

건방진방랑자 2021. 9. 2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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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작은 성취에 만족치 말고 더 나가라

 

 

子貢: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 音洛. , 去聲.

, 卑屈也. , 矜肆也. 常人溺於貧富之中, 而不知所以自守, 故必有二者之病. 無諂無驕, 則知自守矣,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凡曰可者,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 樂則心廣體胖而忘其貧, 好禮則安處善, 樂循理, 亦不自知其富矣. 子貢貨殖, 蓋先貧後富, 而嘗用力於自守者, 故以此爲問. 而夫子答之如此, 蓋許其所已能, 而勉其所未至也.

 

子貢: “: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 七多反. , 平聲.

○ 『衛風淇澳之篇, 言治骨角者, 旣切之而復磋之; 治玉石者, 旣琢之而復磨之, 治之已精, 而益求其精也. 子貢自以無諂無驕爲至矣, 聞夫子之言, 又知義理之無窮, 雖有得焉, 而未可遽自足也, 故引是詩以明之.

 

子曰: “,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往者, 其所已言者. 來者, 其所未言者.

愚按: 此章問答, 其淺深高下, 固不待辨說而明矣. 然不切則磋無所施, 不琢則磨無所措. 故學者雖不可安於小成, 而不求造道之極致; 亦不可騖於虛遠, 而不察切己之實病也.

 

 

 

 

 

 

해석

子貢: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자공이 가난하면서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라고 여쭈었다.

, 音洛. , 去聲.

, 卑屈也.

()은 비굴하단 뜻이다.

 

, 矜肆也.

()는 거만하며 함부로 행동한단 뜻이다.

 

常人溺於貧富之中,

보통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부자가 된 상황에 처하면 몰입되어

 

而不知所以自守,

스스로 지킬 것을 알지 못하여

 

故必有二者之病.

반드시 두 가지의 병폐(가난하면 아첨하고, 부자이면 교만한 것)가 있다.

 

無諂無驕, 則知自守矣,

아첨하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않으면 스스로 지킬 것을 알지만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

가난과 부함 바깥을 넘어서진 못한다.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공자께서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기며, 부자이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다.”라고 말씀하셨다.

凡曰可者,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

일반적으로 가하다는 말은 겨우 괜찮다는 정도일 뿐, 미진함이 있다는 말이다.

 

樂則心廣體胖而忘其貧,

즐거워하게 되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넓어져 가난하단 사실을 잊게 되며,

 

好禮則安處善, 樂循理,

예를 좋아하면 편안히 선에 거처하게 되고 즐거이 천리를 따르니

 

亦不自知其富矣.

또한 스스로 그 부유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子貢貨殖,

자공은 재화를 증식시키는 일을 했으니,

 

蓋先貧後富,

대개 예전엔 가난했으나 훗날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而嘗用力於自守者, 故以此爲問.

그러나 일찍이 스스로 지키는 데에 힘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而夫子答之如此,

그러나 부자의 대답은 이와 같았으니,

 

蓋許其所已能,

대개 이미 잘 하는 것은 허용해주면서,

 

而勉其所未至也.

이르지 못한 것을 권면해주신 것이다.

 

子貢: “: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자공이 그건 시경에서 말하는 뼈를 다듬을 때 잘라낸 후에 쪼아내듯 하며, 옥을 다듬을 때 거칠게 다듬은 후에 세밀하게 다듬듯 하라라는 것이겠군요.”라고 말씀드렸다.

, 七多反. , 平聲.

○ 『衛風淇澳之篇,

시경의 위풍 기욱편이다.

 

言治骨角者, 旣切之而復磋之;

짐승뿔을 다듬는 자는 이미 먼저 잘라내고 다시 그것을 갈며,

 

治玉石者, 旣琢之而復磨之,

옥석을 다듬는 자는 이미 쪼아내고 다시 그것을 다듬으니,

 

治之已精, 而益求其精也.

다스림이 이미 정밀한데 더욱 그 정밀함을 구한다는 말이다.

 

子貢自以無諂無驕爲至矣,

자공은 스스로 아첨함도 없고 교만함도 없음으로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다.

 

聞夫子之言,

하지만 부자의 말씀을 듣고

 

又知義理之無窮, 雖有得焉,

또한 의리의 무궁함을 알아 비록 얻음이 있었으나

 

而未可遽自足也, 故引是詩以明之.

갑자기 자족할 수 없다고 여겨 이 시를 인용하여 그것을 밝힌 것이다.

 

子曰: “,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공자께서 사야, 비로소 함께 시를 얘기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줬더니, 올 것을 아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往者, 其所已言者. 來者, 其所未言者.

愚按: 此章問答, 其淺深高下,

내가 생각해보건대 이장의 문답은 그 얕고 깊음과 높고 낮음이

 

固不待辨說而明矣.

본래 변론을 기다리지 않아도 밝다.

 

然不切則磋無所施,

그러나 자르지 않으면 쪼아내는 것을 시행하질 못하며,

 

不琢則磨無所措.

쪼아내지 않으면 다듬는 것을 시행하질 못한다.

 

故學者雖不可安於小成,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이라면 비록 작은 성취에 안주해서

 

而不求造道之極致;

도로 나가는 지극한 이치를 구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亦不可騖於虛遠,

또한 허무맹랑한 데 달려서

 

而不察切己之實病也.

자기의 절실한 실제의 병을 살피지 않아서도 안 된다.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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