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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이 - 10. 임금들이 공자와 정치를 논하는 까닭 본문

고전/논어

논어 학이 - 10. 임금들이 공자와 정치를 논하는 까닭

건방진방랑자 2021. 9. 25.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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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임금들이 공자와 정치를 논하는 까닭

 

 

子禽問於子貢: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之與之與, 平聲, 下同.

子禽, , . 子貢, 端木, . 孔子弟子. 或曰: “, 子貢弟子.” 未知孰是. , 反語辭.

 

子貢: “夫子溫, , , , 讓以得之.

, 和厚也. , 易直也. , 莊敬也. , 節制也. , 謙遜也. 五者, 夫子之盛德光輝接於人者也.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其諸, 語辭也. , 他人也. 言夫子未嘗求之, 但其德容如是, 故時君敬信, 自以其政就而問之耳, 非若他人必求之而後得也. 聖人過化存神之妙, 未易窺測, 然卽此而觀, 則其德盛禮恭而不願乎外, 亦可見矣. 學者所當潛心而勉學也.

氏曰: “學者觀於聖人威儀之間, 亦可以進德矣. 子貢亦可謂善觀聖人矣, 亦可謂善言德行矣. 今去聖人千五百年, 以此五者想見其形容, 尙能使人興起, 而況於親炙之者乎?”

張敬夫: “夫子至是邦必聞其政, 而未有能委國而授之以政者. 蓋見聖人之儀刑而樂告之者, 秉彝好德之良心也, 而私欲害之, 是以終不能用耳.”

○ 『仲尼弟子列傳: “子貢一出, , , 而霸. 子貢一使, 使勢相破, 十年之中, 五國各有變.”

○ 『貨殖列傳: “子贛旣學於仲尼, 退而仕於, 廢著鬻財於之閒, 七十子之徒, 最爲饒益. 原憲不厭糟穅, 匿於窮巷. 子貢結駟連騎, 束帛之幣以聘享諸侯, 所至, 國君無不分庭與之抗禮. 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 子貢先後之也. 此所謂得埶而益彰者乎.”

 

 

 

 

 

 

해석

子禽問於子貢: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자금이 자공께 부자께서 이 나라에 오시면 반드시 정치를 들으시는데 부자께서 구하여서 그리 된 것입니까? 임금이 그 얘기를 전해주는 것입니까?”라고 여쭈었다.

之與之與, 平聲, 下同.

子禽, , .

자금은 성이 진이고 이름은 항이다.

 

子貢, 端木, . 孔子弟子.

자공은 성이 단목이고 이름은 사니 모두 공자 제자다.

 

或曰: “, 子貢弟子.” 未知孰是.

어떤 이는 자공의 제자라고도 하나 누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 反語辭.

()은 반어사다.

 

子貢: “夫子溫, , , , 讓以得之.

자공이 말했다. “부자께서는 온화하고 어질며 공경하고 겸양함으로 그것을 얻으신 것이네.

, 和厚也. , 易直也.

()은 화목하고 후덕함이다. ()은 내면이 평이하고 곧음이다.

 

, 莊敬也.

()은 장엄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 節制也. , 謙遜也.

()은 절제하는 것이다. ()은 겸손한 것이다.

 

五者, 夫子之盛德光輝接於人者也.

다섯 가지는 부자의 성대한 덕이 발휘되어 사람에게 접하는 것이다.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부자께서 구하심은 다른 사람이 구한 것과는 다르다네.”

其諸, 語辭也. , 他人也.

기저(其諸)는 어조사다. ()은 다른 사람이다.

 

言夫子未嘗求之, 但其德容如是,

부자는 일찍 구하지 않았으나 다만 덕스런 용모가 이와 같았기 때문에

 

故時君敬信, 自以其政就而問之耳,

당시의 임금이 공경하고 믿어 스스로 정치로써 나아와 물었을 뿐이다.

 

非若他人必求之而後得也.

그건 다른 사람이 반드시 얻은 것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聖人過化存神之妙,

성인이 지나가면 교화되고 그 자리에 있으면 신묘함이 깃드는 오묘함을 지닌 존재로

 

未易窺測,

쉽게 헤아릴 수 없다.

 

然卽此而觀,

그러나 이에 나아가 보면

 

則其德盛禮恭而不願乎外, 亦可見矣.

덕이 성대하고 예가 공순하여 몸 밖에서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學者所當潛心而勉學也.

학자는 마땅히 마음을 집중하여 힘써 배워야 한다.

 

氏曰: “學者觀於聖人威儀之間,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학자가 성인의 위의(威儀)의 사이에서 보면

 

亦可以進德矣.

또한 덕에 나갈 수 있다.

 

子貢亦可謂善觀聖人矣,

자공과 같은 경우라면 또한 잘 성인을 보았다고 할 수 있고

 

亦可謂善言德行矣.

또한 잘 덕행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今去聖人千五百年, 以此五者想見其形容,

이제 성인과의 시간 상 거리가 1500년이지만 이 다섯 가지로 그 모습을 상상해보면

 

尙能使人興起, 而況於親炙之者乎?”

오히려 사람을 흥시시킬 수 있는데, 하물며 직접 수업을 받은 경우임에랴.”

 

張敬夫: “夫子至是邦必聞其政,

장경부가 말했다. “부자가 이 나라에 도착하면 반드시 정치를 들었지만

 

而未有能委國而授之以政者.

나라를 맡겨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진 않았다.

 

蓋見聖人之儀刑而樂告之者,

대개 성인의 좋은 모습만을 보고 즐거이 알려준 것은

 

秉彝好德之良心也,

타고난 떳떳함을 잡고 덕을 좋아하는 양심이지만

 

而私欲害之, 是以終不能用耳.”

사욕이 그것을 해쳤기 때문에 마침내 등용할 수 없었을 뿐이다.”

 

○ 『仲尼弟子列傳: “子貢一出,

중니제자열전에서 말했다. “자공이 한 번 나가면

 

,

노나라는 보존되었고 제나라는 혼란스러워졌으며,

 

, 而霸.

오나라는 망가졌고, 진나라는 강성해졌으며, 월나라는 패자가 되었다.

 

子貢一使, 使勢相破,

자공이 한 번 사신으로 가니 세력의 균형이 서로 깨져

 

十年之中, 五國各有變.”

10년 만에 다섯 나라가 각각 변화가 생겼다.”

 

○ 『貨殖列傳: “子贛旣學於仲尼,

화식열전에서 말했다. “자공은 이미 중니에게서 배웠으며,

 

退而仕於,

물러나선 위나라에서 벼슬했고

 

廢著鬻財於之閒, 七十子之徒,

조나라와 노나라 사이에서 물건을 저장해두며 장사를 하여 70명의 제자 가운데

 

最爲饒益.

자공이 가장 부자가 되었다.

 

原憲不厭糟穅, 匿於窮巷.

그에 반해 원헌은 쌀지게미와 겨도 먹질 못하며 구석에 숨어 살았다.

 

子貢結駟連騎, 束帛之幣以聘享諸侯,

자공은 사두마차를 타고 호위병을 거느리고 비단 폐백으로 제후와 교제했는데,

 

所至, 國君無不分庭與之抗禮.

이르는 곳마다 나라의 임금들이 뜰에 내려와 동등한 예로 대우하지 않음이 없었다.

 

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

공자로 하여금 천하에 이름이 유포되고 드날리게 한 것은

 

子貢先後之也.

자공이 앞뒤에서 모셨기 때문이니,

 

此所謂得埶而益彰者乎.”

이것이야말로 세력을 얻으면 명성이 더욱 더 드날리게 된다는 것이다.

 

자공은 논어의 실제적 주인공이다. 안회는 너무 완벽하게 이상화되어 있고, 자로는 최다출연자이기는 하지만 항상 조연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자공은 자로를 제외하면 논어의 최다출연자이다. 그리고 그는 항상 스승 공자와 맞대결하면서 깨달음을 축적해가는 주인공적 캐릭터로서 등장한다. 자공이 없으면 논어는 무너진다. 바로 자공을 제1편에 등장시켜 그로 하여금 공자에 관하여 이야기하게 한다는 것이 학이편 편자의 탁월한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자공에게 공자학단의 대표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말한 주제는 바로 공자의 일생에 관하여 후대에 가장 많은 비판을 몰아온 측면에 대한 격조 높은 아폴로지라는 데 그 특색이 있다. 학이편에서 선포한 공자의 온양공검양(溫良恭儉讓)논어전편이 전개해나가고 있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공의 아폴로지(apology, 변명)의 수준이 아니라 공자의 인간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덕성이리는 것을 논어는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354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금(子禽)이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공자께서는 어떤 나라에 도착하면 반드시 그 나라의 정치를 들으십니다. 그것은 공자께서 요구하신 겁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주는 것입니까[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공자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건지, 아니면 위정자들이 공자의 정치 감각을 높이 평가해 그렇게 된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자공이 누군가. ‘화식열전에 따르면, 언어에 뛰어나 외교 관계 등 대외 협상에 능했고 늘 공자를 모시고 제후국을 주유했으며 공자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제자였다. 자공이 사두마차를 타고 기마행렬을 거느리며 제후국을 방문하면 가는 곳마다 왕들이 몸소 뜰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그 곁에는 공자가 있었다.

자금의 물음에 자공의 답은 이러했다. “어른께서는 따사로움 선량함 공경 절약 겸양으로 그것을 얻은 것이니, 어른께서 그것을 구한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과는 다르겠지요[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이 문장에서 기저(其諸)’는 자신의 말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하는 말투로 스승의 자발적인 정치행위를 한마디로 평가하는 게 조심스럽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자공이 이런 평가를 내린 데는 공자가 내세우는 정치가 기존 틀과는 전혀 다른 덕치에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인()과 예()를 주창했고 늘 이상론에 치우친 공자의 비현실성은 거의 모든 제후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을 자공이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공자는 학자였지 정치가는 아니었고 이론가였지 실천가도 아니었기에 그가 주장한 내용들이 제후들에겐 공허하게 들렸으며, 비록 필문기정(必聞其政)’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공자가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 교육에 정열을 바쳐 25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사표(師表)로서 추앙받고 있으니, 공자의 입지는 정치보다는 교육에서 독보적이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주희 다산
溫良恭儉讓, 以得之 溫良恭儉, 讓以得之
溫良恭儉讓으로써 그것을 얻으셨다. 溫良恭儉하셔서 사양하셨지만 그것을 얻게 됐다.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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