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죽림칠현을 본받았던 죽림고회와 나와의 인연
칠현설(七賢說)
先輩有以文名世者七人, 自以爲一時豪俊, 遂相與爲七賢, 蓋慕晉之七賢也. 每相會飮酒賦詩, 傍若無人, 世多譏之.
時余年方十九, 吳德全許爲忘年友, 每携詣其會. 其後德全遊東都, 余復詣其會, 李淸卿目余曰: “子之德全, 東遊不返, 子可補耶?” 余立應曰: “七賢豈朝庭官爵而補其闕耶? 未聞嵇阮之後, 有承之者.” 闔坐皆大笑.
又使之賦詩, 占春人二字, 余立成, 口號曰: “榮參竹下會, 快倒甕中春. 未識七賢內, 誰爲鑽核人.” 一座頗有慍色, 卽傲然大醉而出.
余少狂如此, 世人皆目以全狂客也.
해석
先輩有以文名世者七人,
선배 중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 난 사람이 일곱 명 있었는데
自以爲一時豪俊, 遂相與爲七賢,
스스로 한 때의 호탕하고 준수하다 여겨 마침내 서로 함께 칠현이 되었으니
蓋慕晉之七賢也.
아마도 진나라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사모해서 그런 것이리라.
每相會飮酒賦詩, 傍若無人,
매번 서로 모이면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면서 곁에 사람이 없는 듯했으니
世多譏之.
세상 사람들 중 대부분이 그들을 헐뜯었다.
時余年方十九, 吳德全許爲忘年友,
당시 나의 나이 19살로 오덕전이 망년우가 되길 허락하여
每携詣其會.
매번 데리고 그 모임에 나갔다.
其後德全遊東都, 余復詣其會,
훗날 덕전이 경주에 유람갔을 때 나는 다시 그 모임에 나갔는데
李淸卿目余曰: “子之德全,
청경 이담지(李湛之)가 나를 지목하며 말했다. “자네의 덕전이
東遊不返, 子可補耶?”
경주로 유람 가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자네가 채울 수 있겠는가?”
余立應曰: “七賢豈朝庭官爵而補其闕耶?
내가 곧바로 응답했다. “칠현이 어찌 조정의 녹봉 받는 벼슬아치라도 된다고 궐석(闕席)을 보충하겠습니까?
未聞嵇阮之後, 有承之者.”
혜강(嵇康)과 완적(阮籍) 이후로 그 사람을 승계한 이가 있다는 걸 듣지 못했습니다.”
闔坐皆大笑.
좌중이 모두들 크게 웃어댔다.
又使之賦詩, 占春人二字,
또 시를 짓도록 시키며 ‘춘(春)’과 ‘인(人)’ 두 글자를 뽑자[拈]
余立成, 口號曰: “榮參竹下會, 快倒甕中春. 未識七賢內, 誰爲鑽核人.”
나는 곧 완성하여 입으로 다음과 같이 소리냈다.
榮參竹下會 快倒甕中春 | 영광스럽게 대나무 아래의 모임에 참여하여 항아리 속 술【춘(春): 술의 별칭】을 유쾌하게 마셔대네. |
未識七賢內 誰爲鑽核人 | 알지 못하겠구나. 칠현 중에 누가 오얏[李]의 씨를 뚫을【찬핵(鑽核): 왕융이 씨를 뚫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곧 지나치게 인색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왕융은 진(晉)나라 사람으로 완적(阮籍)과 함께 죽림 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데, 사람이 너무 인색하여 자기 집에 있는 오얏[李]을 저자에 내다 팔 때 그 오얏씨를 송곳으로 뚫은 뒤에 팔았다 한다. 이것은 그 오얏 종자가 매우 좋은 것이어서 남들이 취종(取種)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이다. 『진서(晉書)』 「왕융전(王戎傳)」】 사람이 되련지? |
一座頗有慍色, 卽傲然大醉而出.
좌중이 매우 화난 기색이 있었지만 곧 떳떳하게 만취하여 나왔다.
余少狂如此, 世人皆目以全狂客也.
내가 어렸을 적 멋대로 행동한 게 이와 같아 세상사람들이 모두 ‘완전 미친놈’이라 지목했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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