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쌍
쌍각반룡(雙角盤龍)
송 나라 때에 임금에게 진상하는 차(茶)를 용의 형상으로 뭉쳐서 만들었다.
쌍감두주(雙柑斗酒)
두 밀감과 한 말 술을 이른다. 『운선잡기(雲仙雜記)』에 “戴顒春日携雙柑斗酒 人問何之曰 往聽黃鸝聲”이라 하였다.
쌍검곡(雙劍曲)
만가(挽歌)를 이른다. 쌍검은 바로 춘추시대(春秋時代)에 간장(干將)ㆍ막야(莫邪) 부부(夫婦)가 만들었던 자웅(雌雄) 이검(二劍)을 이르는데, 그 칼이 일찍이 서로 떨어져 있다가 수천 년 뒤에 다시 서로 만나서 용(龍)으로 변화하여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부부가 다 죽어 합장한 것을 말한다.
쌍검합(雙劍合)
① 고향 땅에 부부가 합장(合葬)된다는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가 연평진(延平津)에서 다시 만나 두 마리의 용으로 변한 뒤 물 속으로 사라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② 진나라 장화(張華)가 뇌환(雷煥)을 시켜 풍성(豐城)의 옥터(獄基)를 파서 보검(寶劍)한 쌍을 얻었는데, 하나는 장화가 가지고 하나는 뇌환이 가졌었다. 장화가 화(禍)를 당하여 죽은 뒤에 칼이 어디 간지를 몰랐다. 뇌환이 죽은 뒤에 그 아들이 그 칼을 차고 연평진(延平津)을 건너가다 칼이 문득 칼집에서 빠져나와서 강물 속에 뛰어 들어갔다. 잠수부(潛水夫)를 시켜 물속에 들어가 보니 두 용(雙龍)이 서리어 있었다. 뇌환의 아들이 말하기를, “전일에 선공(先公)이 이 칼은 신물(神物)이므로 반드시 끝에 가서는 서로 합쳐질 것이라 하더니, 과연 오늘에 두 칼이 서로 합친 것이다.” 하였다.
쌍검회중연(雙劍會重淵)
춘추시대(春秋時代) 오(吳) 나라의 장인(匠人)인 간장(干將)ㆍ막야(莫邪) 부부가 명검(名劍) 두 자루를 만들어 웅검(雄劍)을 간장, 자검(雌劍)을 막야라 하였는데, 진(晉) 나라 때에 와서 장화(張華)와 뇌환(雷煥) 두 천문가(天文家)가 천문(天文)을 인하여 이 쌍검(雙劍)을 풍성현(豐城縣)에서 발굴한 다음 둘이 한 자루씩을 나누어 가졌던바, 그들이 죽은 뒤에는 결국 그 쌍검이 연평진(延平津)의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쌍룡(雙龍)으로 변화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진서(晋書)』 卷三十六
쌍궐(雙闕)
옛날 궁전, 사묘(祠廟), 능묘(陵墓) 등의 앞 양쪽 높은 대 위에 세웠던 누관(樓觀).
쌍궐풍운(雙闕風雲)
예측 불허의 상황에 처해 있는 도성의 분위기를 표현한 말이다. 쌍궐(雙闕)은 경도(京都), 풍운(風雲)은 변화무쌍한 국세(局勢)를 가리킨다.
쌍극(雙屐)
남조 송(南朝宋)의 사영운(謝靈運)이 명산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면서 산에 오를 때는 나막신의 앞굽을 떼어 내고 내려올 때에는 뒷굽을 떼어냈던 고사가 있다. 『남사(南史)』 「사령운전(謝靈運傳)」
쌍금(雙金)
쌍남금(雙南金)의 준말로, 보통의 금보다 두 배의 가치가 나가는 남쪽 지방의 금을 말한다.
쌍기(雙冀)
후주(後周)에서 무승군 절도순관(武勝軍節度巡官)으로 있다가, 고려 광종(光宗) 7년(956)에 후주의 사신 설문우(薛文遇)를 따라왔다가 귀화한 사람. 광종 9년에 당(唐)의 관리 임용 제도를 창설하게 하고 여러 번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과거의 시작이다.
쌍남(雙南)
쌍남금(雙南金)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袞職曾無一字補 許身愧比雙南金”의 글귀가 있다.
쌍남금(雙南金)
두 배의 가치가 나가는 황금(黃金)을 말한다. 장재(張載)의 의사수시(擬四愁詩)에 “가인이 나에게 녹기금을 끼쳐 주었으니 어찌하면 쌍남금으로 그에 보답할거나[佳人遺我綠綺琴 何以報之雙南金].”하였는 바, 그 주석에 의하면 남금을 충의(忠義)에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다.
쌍남금(雙南金)
품질이 좋은 황금. 증답하는 시문(詩文)을 말한다.
쌍대(雙對)
사율(四律)의 중간 두 연구(聯句)를 말한다.
쌍동(雙銅)
이교(李嶠)의 하설표(賀雪表)에 말하기를, “쌍동(雙銅)의 조화로운 음악이 눈 앞의 일이요, 먼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쌍룡검(雙龍劍)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다. 진(晉) 나라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명검을 얻어 하나는 자기가 차고 하나는 장화(張華)에게 주었는데, 그 뒤에 장화가 복주(伏誅)되면서 그 칼도 없어졌다. 그런데 뇌환의 칼을 아들이 차고 다니다가 복건성(福建省) 연평진(延平津)에 이르렀을 때, 차고 있던 칼이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면서, 없어졌던 장화의 칼과 합하여 두 마리의 용으로 변한 뒤 사라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쌍룡기(雙龍氣)
나중에 두 마리의 용으로 변했다는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보검의 기운이라는 뜻이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쌍륙몽(雙陸夢)
쌍륙은 장기의 일종으로 쌍륙(雙六)이라고도 한다. 『신당서(新唐書)』 「적인걸전(狄仁傑傳)」에 “한번은 무후가 적인걸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요즘 자주 꿈에 쌍륙을 두어 지는데, 어떠한가?’ 하고 묻자, 인걸은 함께 자리에 있던 왕방경(王方慶)과 동시에 대답하기를 ‘쌍륙을 두어 이기지 못하는 것은 아들이 없을 조짐이니 하늘이 폐하를 경계하는 뜻인가 합니다.’ 하여 중종(中宗)을 복위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였다.
쌍리(雙鯉)
편지를 말한다. 잉어는 기러기와 함께 소식을 전하는 방편으로 여겨져 왔다. 고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손이 멀리서 와, 나에게 잉어 두 마리를 주었네. 아이 시켜 잉어를 삶으라 했더니, 뱃속에서 척서가 나왔네[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童烹鯉魚 中有尺素書].” 하였다. / 인용: 燕灘上(김구용)
쌍리어(雙鯉魚)
한쌍 잉어는 중국의 옛 악부(樂府)에 “나그네가 멀리서 찾아들어와 나에게 한쌍 잉어 주고 가기에 아이 불러 잉어를 삶게 했더니 뱃속에는 한 자의 비단의 편지[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童烹鯉魚 中有尺素書].”라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서찰을 말한다. 한(漢) 나라 때 풍속에는 서찰을 보낼 때 비단폭에다 내용을 적어 그것을 두 마리 물고기 모양으로 접어 보냈다고 한다. / 인용: 燕灘上(김구용)
쌍림(雙林)
석가모니가 열반(涅槃)한 사라쌍수(沙羅雙樹)의 숲으로, 보통 ‘사찰’의 별칭으로 쓰인다.
쌍모(雙旄)
당(唐) 나라 때 절도사나 관찰사 등 지방 장관이 부임할 적에 위에서 내리던 의장(儀仗)을 말한다.
쌍미(雙美)
둘이 함께 뛰어나다는 뜻이다. 충(忠)과 효(孝). “어여쁠시고, 충과 효, 쌍미로 기린각에 그렸도다[可憐忠與孝 雙美畵麒麟].” 두보시(杜甫詩)
쌍배(雙排)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어 말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쌍벽(雙璧)
한 쌍의 구슬. 여럿 중에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뛰어난 둘 또는 두 사람의 아주 뛰어난 인물을 말함
쌍봉사(雙峯寺)
두보(杜甫)의 일백운시(一百韻詩)에 “내 몸은 쌍봉사에 허여하였고 교문은 칠조의 선종을 구하노라[身許雙峯寺 門求七祖禪].”하였다. 『두소릉집(杜少陵集)』 卷十九
쌍부(雙鳧)
① 후한(後漢) 때에 신술(神術)이 있었던 왕교(王喬)가 섭현령(葉縣令)으로 있으면서 매월 삭망(朔望)으로 조회를 올 적에 그의 거기(車騎)가 보이지 않자, 임금이 몰래 태사(太史)를 시켜 그를 엿보게 한 결과, 그가 올 때마다 반드시 오리 두 마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오므로, 이를 그물로 잡아놓고 보니 바로 신 한 짝이 있을 뿐이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전하여 쌍부는 지방관의 뜻으로 쓰인다. 『후한서(後漢書)』 「왕교전(王喬傳)」
② 후한(後漢) 때 하동(河東) 사람 왕교(王喬)가 섭현(葉縣)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자주 도성(都城)에 드나들었는데, 올 때에 수레나 말도 보이지 않고 오직 두 마리의 집오리만 날아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그물로 잡은 결과 그물속에 신발 한 짝만 있더라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보통 현령의 고실(故實)을 이야기할 때 부석(鳧舃)이라는 표현을 쓴다. 『후한서(後漢書)』 方術 「왕교전(王喬傳)」
③ 한 나라 때 섭령(葉令)으로 있었던 왕교(王喬)를 가리킨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전(方術傳)」 왕교에, “왕교는 하동(河東) 사람인데 현종(顯宗) 때 섭령이 되었다. 왕교는 신술(神術)이 있어서 매달 삭망(朔望)에 대(臺)에 나와 조회하였다. 황제는 그가 자주 오는데도 수레가 보이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태사(太史)로 하여금 몰래 엿보게 하였다. 태사가 엿본 뒤에 왕교가 올 때 두 마리의 오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온다고 하였다. 이에 오리가 오는 것을 보고 그물을 펴서 잡으니, 단지 신발 한 짝만 있었다. 상방(尙方)에 명하여 자세히 살펴보게 하니 전에 상서원(尙書院)의 관속들에게 하사한 신발이었다.” 하였다.
쌍비(雙扉)
문짝이 두 개인 사립문.
쌍비(雙碑)
원(元) 나라의 황후가 보낸 『불경(佛經)』를 문수사(文殊寺)에 수장(收藏)할 때, 이제현(李齊賢)이 왕명을 받들어 지은 비문(碑文)을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卷46 「춘천도호부(春川都護府)」
쌍석(雙舃)
동한(東漢) 왕교(王喬)가 섭현(葉縣)의 수령으로 나간 뒤 서울에 올 때마다, 예전에 상서(尙書)의 관속으로 있을 적에 받았던 신발을 오리로 변하게 하여 그 위에 올라타고 왔다는 전설이 있다. 『후한서(後漢書)』 卷82上 「방술전(方術傳)」上 「왕교전(王喬傳)」
쌍선(雙扇)
오작교 앞에 달려 있는 사립문을 말한다. 당 나라 조황(趙璜)의 ‘칠석시(七夕詩)’에, “오작교 머리의 두 부채가 열려짐에 해마다 한 차례씩 은하 건너오누나[烏鵲橋頭雙扇開 年年一度過河來].”하였다.
쌍성(雙成)
서왕모(西王母)의 시녀인 동쌍성(董雙城)을 말한다. 서왕모가 한 무제(漢武帝)의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 때 그녀에게 명하여 운화(雲和)의 피리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다 한다.
쌍성(雙星)
은하(銀河)의 서쪽에 있는 견우성(牽牛星)과 은하의 동쪽에 있는 직녀성(織女星)을 이름이다.
쌍성가절(雙星佳節)
쌍성(雙星)은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을 지칭하는데, 매년 7월 칠석(七夕)에 은하수를 건너 만난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므로 7월 칠석을 말한다.
쌍성격강하(雙星隔絳河)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을 말한다.
쌍수(雙樹)
사라쌍수(沙羅雙樹)의 준말로, 학수(鶴樹)라고도 한다.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입멸(入滅)한 장소에 서 있었던 나무 이름으로, 사찰 경내에 있는 거목을 가리킨다.
쌍아탁곤(雙鵝坼坤)
병란(兵亂)의 조짐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진 혜제(晉惠帝) 때 밑으로 내려앉은 땅속에서 푸른 거위와 흰 거위가 나와 하나는 날아가고 하나는 그대로 머물러 있었는데, 이를 보고서 동양(董養)이 병란을 예언했는바, 과연 그 뒤에 유원해(劉元海)와 석륵(石勒)의 난이 잇따라 일어났다고 한다. 『진서(晉書)』 卷28 「오행지(五行志)」中ㆍ『세설신어(世說新語)』 「상예(賞譽)」
쌍어(雙魚)
잉어 두 마리라는 뜻인데, 보통 서신을 가리키나, 상사(相思)의 정(情)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고악부(古樂府)에 “먼 데서 온 손이 나에게 잉어 두 마리를 주었네. 동자(童子)에게 시켜 잉어를 삶으니, 뱃속에서 척서(尺書)가 나왔네.” 한 데서 온 말이다. / 유의어: 쌍리(雙鯉), 이소(鯉素)
쌍어척소(雙魚尺素)
서신(書信)을 말한다. 진(晉) 나라 육기(陸機)의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이라는 악부시(樂府詩)에 “멀리서 온 손님, 잉어 두 마리 전해 주네. 아이 불러 요리하라 부탁했더니, 그 속에서 나온 한 자 비단 글[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의 구절이 있다.
쌍운(雙韻)
시를 지을 때 두 가지의 운(韻)을 내어 안 구절과 바깥 구절에 각각 나누어 다는 것을 말한다.
쌍운회문(雙韻廻文)
한시(漢詩)의 별체(別體)인데, 시구를 위에서 내리읽거나 밑에서 거슬러 읽거나, 평측(平仄)과 운(韻)이 알맞게 구성되어 있는 데다 매구(每句)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에 각기 운자(韻字)를 붙인 것이다.
쌍인주의(雙引朱衣)
학사(學士) 이상이 양부(兩府)에 들어올 때에 주의(朱衣) 입은 두 사람이 말을 끄는데, 이를 쌍인이라 한다.
쌍일(雙日)
짝수(偶數)인 날을 말한다. 『구당서(舊唐書)』 「문종기론(文宗紀論)」에 “고사(故事)에는 천자(天子)가 척일(隻日)에 일을 보았는데, 제(帝)가 재상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경(卿)들과 쌍일이면 매일 서로 만나려 한다.’ 했다.” 한다.
쌍정(雙旌)
사자(使者)가 가지고 다니는 기(旗), 또는 관찰사의 의장(儀仗)을 가리킨다. 당(唐) 나라 때 절도사나 관찰사에게는 조정을 하직하는 날 쌍정(雙旌)과 쌍절(雙節)을 하사하였던 고사가 있다. 『신당서(新唐書)』 「백관지(百官志)」 4下
쌍정행리(雙旌行李)
임금의 명을 받들고 지방으로 부임하는 수령이라는 뜻이다. 쌍정은 당(唐) 나라 때 지방 장관의 의장(儀仗), 행리는 사자(使者)를 가리킨다.
쌍조(雙鳥)
한유(韓愈)의 오언 고시(五言古詩) 가운데 ‘쌍조시(雙鳥詩)’라는 장시(長詩)가 있는데, 이 쌍조(雙鳥)를 두고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불교(佛敎)와 도교(道敎), 한유 자신과 맹교(孟郊)라는 각각 다른 주해(注解)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이백과 두보라는 설을 채택하여 해석하였다. ‘쌍조시’는 『한창려집(韓昌黎集)』 권5에 수록되어 있다. 소식(蘇軾)의 시 가운데 “化爲兩鳥鳴相酬 一鳴一止三千秋”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동파(東坡)가 이백(李白)의 화상(畵像)을 접하고 지은 시로서, 여기서의 양조(兩鳥)는 분명히 이백과 두보를 가리키고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37 書丹元子所示李太白眞
쌍주(雙珠)
형제 두 사람이 모두 출중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한(漢) 나라 공융(孔融)이 위원장(韋元將)과 중장(仲將) 두 형제를 보고는 그 부친 위휴보(韋休甫)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늙은 조개 속에서 진주 두 알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不意雙珠生于老蚌].”고 한 고사가 있다. 『삼보결록(三輔決錄)』
쌍척후(雙隻堠)
후(堠)는 곧 흙을 쌓아 돈대를 만들어서 이수(里數)를 표기한 것인데, 10리마다 쌍후(雙堠)를 두고 5리마다 척후(隻堠)를 두었다고 한다.
쌍청(雙淸)
‘마음가짐과 하는 일이 다 깨끗하다’는 뜻이다.
쌍충(雙忠)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것에 항의하여 자결한 민영환(閔泳煥)과 조병세(趙秉世) 등 두 충신을 가리킨다.
쌍충묘(雙忠廟)
이대원(李大源)과 정운(鄭運)의 위패를 모신 쌍충사(雙忠祠)로, 순천도호부 관내 흥양원(興陽縣)에 있다.
쌍학계영기(雙鶴啓塋基)
부부가 합폄(合窆)하는 것을 말한다. 조식(曹植) 선제시(先題詩)에 “쌍학이 함께 놀다가 동해 곁에서 서로 잃었다[雙鶴俱遨遊 相失東海旁].” 하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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