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묵자의 시적 고질병
제시화총림후(題詩話叢林後)
임방(任埅)
玄默子, 癖於詩, 癖者病也. 古人有泉石膏肓烟霞痼疾, 夫泉石烟霞, 豈可爲人之膏肓痼疾者? 而苟使惑好之, 則能爲疾若此, 況詩之可喜可愛, 不翅泉石烟霞, 則其膏肓痼疾於人者, 不旣大矣乎?
玄默子於詩, 沈濳淪溺, 耽嗜之不已, 古今諸詩, 旣自飫觀而熟. 復乃於東方詩大家名家, 有集行世者, 皆包括無餘, 凡雜出傳記及傳誦街巷者, 搜遺鉤匿, 唯恐有失. 以至小儒賤流緇黃婦孺, 數句一語之可取者, 靡不採掇, 細加評隲, 目之曰『小華詩評』, 更續以補遺置閏.
又復上自麗代, 下至今日, 裒聚文人韻士譚詩瑣說, 輯爲『詩話叢林』四册. 余得而徧閱之, 掩卷而歎曰: “美哉! 詩話之作, 蔑以加矣! 此可與元美『巵言』ㆍ元瑞『詩藪』, 繼武並駕, 亦足誇示中華藝苑之功夫, 豈小哉!” 然而玄默子之癖, 可謂病矣, 苟非膏肓痼疾, 其竭力殫心, 奚至是耶? 余少也, 亦有是病, 始草『漫錄』若干語, 聞玄默者所著已成, 輟不復爲. 今觀是書, 余之『漫錄』, 混收入焉, 爲之一笑, 是亦不可以已者耶.
噫! 詩者, 陶寫性情者也, 只可吟咏遣懷而止, 何必窮探極索, 耗精弊神 而後快哉?
余老而覺其病, 盡去其癖, 而悔其晚也. 今玄默者之癖, 至老不休, 其所撰錄, 贍悉弘博, 傳後無疑. 而第其癖則病也, 老子曰: “夫惟病病, 是以不病.” 余旣自病其病, 而今不病矣, 玄默子盍亦病其病, 而以求不病也哉!
甲午暮春, 水村愚拙翁任埅大仲書.
해석
玄默子, 癖於詩, 癖者病也.
현묵자(玄默子)는 시에 버릇이 있으니 버릇은 병이다.
古人有泉石膏肓烟霞痼疾, 夫泉石烟霞, 豈可爲人之膏肓痼疾者?
옛 사람은 천석고황연하고질(泉石膏肓烟霞痼疾)【당나라 은사(隱士) 전유암(田遊巖)이 기산(箕山)에 들어가 사는데, 고종(高宗)이 친히 그 집에 찾아가니, 유암이 야복(野服)으로 나와 영접하였다. 고종이 “선생은 근일에 평안하신가.”라 하니, 대답하기를 “신(臣)은 연하고질(煙霞痼疾)이요, 천석고황(泉石膏肓)입니다.”라고 하였다.】이 있었으니 대체로 천석연하(泉石烟霞)가 어찌 사람의 고황고질膏肓痼疾)이 될 수 있는가?
而苟使惑好之, 則能爲疾若此, 況詩之可喜可愛, 不翅泉石烟霞, 則其膏肓痼疾於人者, 不旣大矣乎?
가령 현혹되어 좋아한다면 이 같이 고질이 될 수 있는데 더군다나 시는 좋아할 만하고 사랑할 만함이 천석연하(泉石烟霞) 정도일 뿐만이 아니니 고황고질(膏肓痼疾)이 사람에게 이미 크지 않은가?
玄默子於詩, 沈濳淪溺, 耽嗜之不已, 古今諸詩, 旣自飫觀而熟.
현묵자(玄默子)는 시에 있어서 푹 잠기고 한참 빠져 즐김을 그치지 않았고 고금의 여러 시를 이미 스스로 넉넉하게 보아 익숙해졌다.
復乃於東方詩大家名家, 有集行世者, 皆包括無餘, 凡雜出傳記及傳誦街巷者, 搜遺鉤匿, 唯恐有失.
다시 우리나라의 명시인이나 문집으로 세상에 유행한 것을 모두 남김 없이 포괄했으니 대체로 길거리의 전기나 전송된 데서 마구 나온 것 중 빠진 것을 찾고 숨은 것을 뽑아냈으니 오직 일실(逸失)될까 걱정되어서다.
以至小儒賤流緇黃婦孺, 數句一語之可取者, 靡不採掇, 細加評隲, 目之曰『小華詩評』, 更續以補遺置閏.
하잘 것 없는 선비[小儒]과 계급 낮은 이[賤流]와 스님[緇黃]과 아녀자[婦孺]에 이르러 몇 구절이나 한 마디의 취할 만한 건 취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세세하게 평론을 더하고서 『소화시평(小華詩評)』이라고 하고 다시 보유(補遺)와 치윤(置閏)을 붙였다.
又復上自麗代, 下至今日, 裒聚文人韻士譚詩瑣說, 輯爲『詩話叢林』四册.
또 다시 위로 고려시대부터 아래로 지금까지 문인과 시인이 시를 풀어낸 자잘한 말을 모아 『시화총림(詩話叢林)』 네 권을 편집했다.
余得而徧閱之, 掩卷而歎曰: “美哉! 詩話之作, 蔑以加矣! 此可與元美『巵言』ㆍ元瑞『詩藪』, 繼武並駕, 亦足誇示中華藝苑之功夫, 豈小哉!”
내가 얻어 두루 보다가 책을 덮고 “아름답다! 시화의 작품이 더할 게 없구나! 원미(元美) 왕세정(王世貞)의 『예원치언(藝苑巵言)』과 원서(元瑞) 호응린(胡應麟)의 『시수(詩藪)』와 발자국을 이어[繼武] 아울러 달려 또한 중국 문단의 공부에 과시할 만하니, 어찌 하찮으리오!”라고 탄식했다.
然而玄默子之癖, 可謂病矣, 苟非膏肓痼疾, 其竭力殫心, 奚至是耶?
그러나 현묵자(玄默子)의 버릇은 병이라 할 만하니 만약 고황고질(膏肓痼疾)이 아니라면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서 어찌 여기에 이르겠는가?
余少也, 亦有是病, 始草『漫錄』若干語, 聞玄默者所著已成, 輟不復爲.
내가 어렸을 적에 또한 이런 병이 있어서 처음엔 『수촌만록(水村謾錄)』 몇 마디를 초록했지만 현묵자(玄默子)가 저술한 것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걸 듣고 그만두고 다시 하지 않았다.
今觀是書, 余之『漫錄』, 混收入焉, 爲之一笑, 是亦不可以已者耶.
이제 이 책을 보았는데 나의 『수촌만록(水村謾錄)』이 섞여 들어가 있어서 그 때문에 한 번 웃었으니 이 또한 그만둘 수 없는 것이리라.
噫! 詩者, 陶寫性情者也, 只可吟咏遣懷而止, 何必窮探極索, 耗精弊神 而後快哉?
아! 시란 성정(性情)을 도야하고 쏟아내는 것으로 다만 회포를 읊조리고 그칠 만한 것인데 하필 궁리하며 탐색하고 극렬히 탐색함으로 정신을 소모하고 피폐하게 한 후에야 만족스럽겠는가?
余老而覺其病, 盡去其癖, 而悔其晚也.
내가 늙어서야 이 병을 깨닫고 죄다 버릇을 버렸으니 늦음에 후회스럽다.
今玄默者之癖, 至老不休, 其所撰錄, 贍悉弘博, 傳後無疑.
이제 현묵자의 버릇은 늙었지만 쉬질 않아 편찬하여 기록한 것이 넉넉하고 다하며 넓고도 드넓어 후대에 전해짐에 의심할 게 없다.
而第其癖則病也, 老子曰: “夫惟病病, 是以不病.”
그러나 다만 버릇은 병이지만 노자는 “대체로 오직 병이 병임을 안다면 이 때문에 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余旣自病其病, 而今不病矣, 玄默子盍亦病其病, 而以求不病也哉!
나는 이미 스스로 병이 병임을 알아 이제는 병이 아니지만 현묵자(玄默子)는 어찌 또한 병이 병임을 알아 병이 아니길 구하질 않는 것인가?
甲午暮春, 水村愚拙翁任埅大仲書.
갑오(1714)년 음력 3월에 어촌의 어리석고 졸렬한 늙은이 대중(大仲) 임방(任埅)이 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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