忽夢金氏娘, 容豫入門, 粲然啓齒而謂曰: “兒早識上人於半面, 心乎愛矣, 未嘗暫忘, 迫於父母之命, 强從人矣. 今願爲同穴之友, 故來爾.”
信乃顚喜, 同歸鄕里, 計活四十餘霜, 有兒息五, 家徒四壁, 藜藿不給, 遂乃落魄扶攜, 糊其口於四方. 如是十年, 周流草野, 懸鶉百結, 亦不掩體.
適過溟州蟹縣嶺, 大兒十五歲者忽餧死, 痛哭收瘞於道. 從率餘四口, 到羽曲縣(今羽縣也), 結茅於路傍而舍. 夫婦老且病, 飢不能興, 十歲女兒巡乞, 乃爲里獒所噬, 號痛臥於前. 父母爲之歔欷, 泣下數行, 婦乃皺澁拭涕, 倉卒而語曰: “予之始遇君也, 色美年芳, 衣袴稠鮮, 一味之甘, 得與子分之; 數尺之煖, 得與子共之, 出處五十年. 情鍾莫逆, 恩愛綢繆, 可謂厚緣.
自比年來, 衰病日益深, 飢寒日益迫, 傍舍壺漿, 人不容乞, 千門之恥, 重似丘山. 兒寒兒飢, 未遑計補, 何暇有愛悅夫婦之心哉,
紅顔巧笑, 草上之露; 約束芝蘭, 柳絮飄風. 君有我而爲累, 我爲君而足憂, 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 君乎予乎, 奚至此極,
與其衆鳥之同餧, 焉知隻鸞之有鏡. 寒棄炎附, 情所不堪, 然而行止非人, 離合有數, 請從此辭.”
信聞之大喜, 各分二兒將行, 女曰: “我向桑梓, 君其南矣.” 方分手進途而形開,
해석
忽夢金氏娘, 容豫入門,
문득 꿈속에서 김씨 딸이 얼굴에 미소를 띈 채 문으로 들어와
粲然啓齒而謂曰: “兒早識上人於半面,
활짝 입을 열며 말했다. “저도 일찍이 스님을 반면으로 알아【半面識: 예전에 後漢 應奉이 수레 만드는 장인의 얼굴을 반쪽만 얼핏 보았는데도 수십 년이 지난 뒤에 길에서 만나보고는 바로 알아보며 반갑게 불렀다는 ‘半面之識’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48 「應奉列傳」】
心乎愛矣, 未嘗暫忘,
사랑에 빠져 일찍이 잠시도 잊지 못했지만,
迫於父母之命, 强從人矣.
부모님의 분부에 따라 억지로 다른 사람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今願爲同穴之友, 故來爾.”
이제 부부【同穴之友: 죽어서 같은 무덤에 묻히는 벗이라는 뜻으로 偕老同穴과 같은 뜻이다.】가 되길 원하기 때문에 왔을 뿐입니다.”
信乃顚喜, 同歸鄕里,
조신은 곧바로 기뻐하며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計活四十餘霜, 有兒息五,
생활한 지 40여 년에 자식 다섯을 두었지만,
家徒四壁, 藜藿不給,
집은 다만 네 벽뿐이고 빈궁한 음식마저도【藜藿: 명아주 잎과 콩잎으로 끓인 국이라는 뜻으로, 빈궁한 자의 음식을 뜻하는 말이다.】 공급하질 못했다.
遂乃落魄扶攜, 糊其口於四方.
마침내 뜻을 얻지 못해【落魄: 뜻을 얻지 못함】 부축하고 끌며 사방으로 다니며 입에 풀칠했다.
如是十年, 周流草野, 懸鶉百結, 亦不掩體.
이와 같이 10년 동안 들판을 헤매며 해진 옷을 기웠음에도 또한 몸을 가리질 못했다.
適過溟州蟹縣嶺, 大兒十五歲者忽餧死, 痛哭收瘞於道.
마침 명주 해현령을 지날 때 15살인 큰 아이가 갑자기 아사했고 통곡하며 길에 묻었다.
從率餘四口, 到羽曲縣(今羽縣也), 結茅於路傍而舍.
식솔 나머지 네 명을 데리고 우곡현에 와서 길가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夫婦老且病, 飢不能興,
부부는 늙고 병든 데다가 굶주려 일어서지도 못했고
十歲女兒巡乞, 乃爲里獒所噬, 號痛臥於前.
10살인 딸은 빌어먹고 다니다 곧 마을 개에게 물렸고 울부짖으며 앞에서 누웠다.
父母爲之歔欷, 泣下數行,
부모는 그 아이를 위해 흐느끼며 눈물이 주루룩 흐르니,
婦乃皺澁拭涕, 倉卒而語曰:
부인은 곧 표정을 바꾸고 눈물을 닦더니 갑자기 말했다.
“予之始遇君也, 色美年芳, 衣袴稠鮮,
“제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얼굴이 멋지고 나이는 꽃다웠으며 입은 저고리도 단정했습니다.
一味之甘, 得與子分之;
하나의 단맛이라도 그대와 나누어 먹었고,
數尺之煖, 得與子共之, 出處五十年.
여러 작은 옷도 그대와 나누며 함께 산 지 50년입니다.
情鍾莫逆, 恩愛綢繆, 可謂厚緣.
감정이 모여【情鍾: 감정이 모인다는 뜻으로, 『世說新語』 「傷逝」에, “王戎이 아들을 잃어 山簡이 弔問을 갔는데 왕융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에 산간이 말하기를, ‘아이는 품 안의 물건이거늘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도록 슬퍼한단 말인가?’ 하니, 왕융이 ‘성인은 일상적인 감정을 잊고 最下의 사람은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니, 감정은 정말이지 우리 같은 사람에게 모이는 것이다.聖人忘情 最下不及情 情之所鍾 正在我輩’ 하였다.”라고 한 말이 보인다.】 막역하고 은혜와 사랑이 얽혔으니 두터운 인연이라 할 만합니다.
自比年來, 衰病日益深, 飢寒日益迫,
근래로부터 쇠약하고 병듦이 날로 깊로 더욱 심해져
傍舍壺漿, 人不容乞,
곁방살이나 표주박에 담긴 밥과 호리병에 담긴 장조차 사람들이 빌어먹는 걸 용납지 않으니,
千門之恥, 重似丘山.
수많은 민가의 부끄러움이 무겁기가 언덕이나 산과 같습니다.
兒寒兒飢, 未遑計補,
아이들은 추워하고 주려 보충할 계획조차 세울 겨를이 없는데,
何暇有愛悅夫婦之心哉,
어느 겨를에 부부의 마음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겠습니까.
紅顔巧笑, 草上之露; 約束芝蘭, 柳絮飄風.
붉은 빛 얼굴과 어여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이고 지란 같은 약속도 흔들리는 버들개지입니다.
君有我而爲累, 我爲君而足憂,
그대는 내가 있어 누가 되고 나는 그대 때문에 근심스럽습니다.
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
옛날의 기쁨을 세세히 생각해보니 마침내 우환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君乎予乎, 奚至此極,
그대와 나는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與其衆鳥之同餧, 焉知隻鸞之有鏡.
뭇 새가 함께 굶주리기보단 차라리 짝 잃은 난새가 거울에 있음을 아는 게 낫습니다.
寒棄炎附, 情所不堪,
추우면 버리고 더우면 붙는 것은 인정에 할 수 없는 것이지만,
然而行止非人,
그러나 행하고 그침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離合有數, 請從此辭.”
헤어짐과 만남엔 운수가 있으니 청컨대 이 말을 따르소서.”
信聞之大喜, 各分二兒將行,
조신은 듣고 크게 기뻐하며 각각 두 아이씩 나누어 장차 떠나려 하다가,
女曰: “我向桑梓, 君其南矣.”
아내가 말했다. “저는 고향【桑梓: 『시경』 「小雅 小弁」에 “부모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공경한다.維桑與梓 必恭敬止”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부모가 살던 고향을 뜻한다.】으로 갈 테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십시오.”
方分手進途而形開,
곧바로 잡은 손을 놓고 길을 나서다가 꿈에서 깼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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