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자에 대한 선입견을 뚫을 때 장자와 만나게 된다
통용되는 33편의 곽상의 판본은 선집임에도 불구하고, 「내편」 7편을 거의 건드리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곽상의 판본에 실린 「내편」 7편이 『장자』를 최초로 편찬한 한대의 고본 『장자』의 「내편」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곽상 당시에 아직도 이 고본 『장자』와 최소한 세 종류의 선집본 『장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함부로 자신이 선집한 『장자』에 자신의 글을 삽입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이런 추론은 『장자』라는 책의 진위문제를 제기한 소식(蘇軾, 1037~1101) 이래로 주장되었던 지금까지의 많은 학자들의 일반적인 의견과 일치한다. 이런 의견에 따르면 「내편」에는 기원전 4세기 말에 살았던 장자 본인의 사상이 그래도 온전히 들어 있고, 「외ㆍ잡편」은 장자에게 직ㆍ간접적으로 사상적 영향을 받은 장자 후학들에 의해 이루어진 일종의 논문집의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곽상 판본에 고본 형태의 내편이 보존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내편」이 기원전 4세기 말에 살았던 장자의 사상을 온전히 담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장자』 고본의 편찬자가 황로파들이라면, 이들이 편찬한 「내편」도 그들의 절충주의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절충주의자들이 「천하(天下)」편에서 장자의 사상을 기술한 것을 보면, 이들이 결코 장자 본인의 사상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하(天下)」에서 그들은 장자를 제외한 다른 사상가들, 예를 들면 묵가ㆍ송견(宋鈃) 등을 기술할 때, 현재의 관점에서 보아도 인정할 만한 균형잡힌 감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는 최선(崔譔)ㆍ향수(向秀)ㆍ이이(李頤)ㆍ곽상을 거쳐 완성되는 선집 과정에서 이질적인 사상 경향들이 유입되었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내편」의 전체 사상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정합적인 이해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장자』라는 책 자체는 현재의 우리에게 해석학적 모험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통용되는 장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뚫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통용되는 하나의 선입견에 따르면, 장자의 철학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인위적으로 제어하거나 조작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는 주장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이런 반문명적이고 반인위적인 사상경향은 장자 본인의 사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외ㆍ잡편」에 실려 있는 장자 후학들의 사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곽상을 포함한 역대 주석가들의 주석과 해석뿐만 아니라 『장자』에 실려 있는 장자 후학들의 사상도 뚫고 지나가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는 장자 본인의 사상과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2000여 년 전에 살았던 장자 본인의 사상에 대해 쌓이고 쌓인 다양한 의미들과 해석들이라는 먼지를 털어 내야 우리는 중국 철학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진지하고 영민했던 고독한 철학자, 전쟁과 논쟁의 혼란 속에서 인간의 삶과 소통의 진실을 탐구했던 철학자, 그러나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않았고 인간에 대해 희망 섞인 미소를 보였던 철학자를 만나서 대화하고,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대화가 항상 의미와 해석의 충돌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장자와 대화하려는 우리의 노력도 많은 저항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노력이 저항에 부딪혀 혹이 날 때에만, 우리는 장자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채소 기르는 사람(The Vegetable Gar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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