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자』라는 책의 구성과 편찬자
1. 장자가 남기고 싶었던 진정한 가르침
통행되는 『장자』의 판본은 곽상(郭象: 252~312)이 편집한 것으로,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33편은 「내편」, 「외편」, 그리고 「잡편」으로 묶여 있는데, 「내편」은 7편, 「외편」은 15편, 그리고 「잡편」은 11편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서기 1세기 경에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를 보면, 『장자』는 전체 52편으로 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노장신한열전(老莊申韓列傳)」에서 장자는 10여만 언을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통용되는 곽상의 판본에 따르면 『장자』는 6만 4606자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곽상이 편집한 것은 사마천과 반고가 본 『장자』중 약 3분의 1 정도가 유실된 판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이 52편의 고본은 위진(魏晉)시대에도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당(唐)나라 사람 육덕명(陸德明)의 『경전석문(經典)』 「서록(序錄)」을 보면 “『한서』 「예문지」의 ‘『장자』 52편’이란 사마표(司馬彪)와 맹씨(孟氏)가 주석을 붙인 것이 이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육덕명이 말한 맹씨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진서(晉書)』를 보면 사마표는 진(晉)의 비서랑(祕書郞)을 지낸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미 위진시대에도 이 고본이 통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덕명은 이 고본에 대해 『장자』는 「내편」 7편, 「외편」 28편, 「잡편」 14편, 「해설」 3편으로, 모두 52편이라고 말한다.
위진시대에는 이 고본 외에도 이 고본을 추린 선집본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최선(崔譔)과 향수(向秀)가 주석을 붙인 27편으로 된 판본과 이이(李頤)가 주석을 붙인 30편으로 된 판본이다. 그렇다면 이런 위진시대의 다양한 『장자』판본을 기초로 해서 곽상은 지금 통용되는 33편의 『장자』를 자신의 주를 달아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한서』 「예문지」에 기록되어 있는 『장자』의 구성과 곽상이 편집한 『장자』에서는 모두 「내편」이 7편으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는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경전석문』에 따르면 최선의 판본도 「내편」이 7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위진시대에도 「내편」 7편은 거의 확정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결국 우리는 곽상이 비록 『장자』를 약 3분의 2로 줄였다고 할지라도, 그는 「내편」의 체제 자체는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런 우리의 추론은 「내편」과 「외ㆍ잡편」의 ‘편명’으로도 강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내편」 7편의 제목(「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등등)은 모두 전체 편의 요지라고 생각되는 세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외ㆍ잡편」의 20편 대부분 천하」, 「지북유」, 「추수」 등등)은 각 편에서 시작되는 처음 몇 글자를 추려 편의 이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고본 『장자』가 편찬했던 「내편」이 곽상의 판본에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추정은 『장자』 「내편」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내편」에 속한 일곱 편 가운데 제일 마지막 편이 「응제왕(應帝王)」이고, 이 편의 가장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는 우화가 바로 유명한 ‘혼돈(混沌)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남쪽 바다의 임금을 숙(儵)이라 하고, 북쪽 바다의 임금을 홀(忽)이라 하였으며, 그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고 하였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때마다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길이 없을까 의논하면서 말했다. 사람에게는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이런 구멍이 없으니 구멍을 뚫어줍시다.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주었는데, 칠일이 지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南海之帝爲儵北海之帝爲忽, 中央之帝爲渾沌. 儵與忽時相與遇於渾沌之地, 渾沌待之甚善. 儵與忽謀報渾沌之德, 曰: “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此獨無有, 嘗試鑿之.” 日鑿一竅, 七日而渾沌死.
우리는 여기서 일곱 구멍[七竅]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외부와 연결되는 감각기관은 아홉 구명[九竅]으로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물론(齊物論)」에서도 확인될 수 있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아홉 구멍이란 눈구멍 둘, 귓구멍 둘, 콧구멍 둘, 입구멍 하나, 소변구멍 하나, 대변구멍 하나를 합쳐서 부르는 것으로, 인간이 세계와 관계하는 아홉 가지 감각적인 통로를 의미한다. 그런데 혼돈 이야기에서는 아홉 구멍이 아니라 일곱 구멍을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혼돈 이야기의 논점이 구멍[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곱이라는 숫자에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만약 혼돈 이야기의 핵심이 감각기관을 상징하는 구멍에 있다는 전통적 해석이 옳다면, 이 이야기에서는 일곱 구멍이 아니라 아홉 구멍이라고 표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곱 구멍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그것은 지금까지 독자가 읽은 「내편」 7편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아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위의 우화는 장자 본인이 지은 것이라기보다는 『장자』를 최초로 편찬한 그의 후학들이 지은 것이라고 추정할 수가 있다.
『장자』의 최초의 편찬자들은 지금까지 독자가 읽은 「내편」 7편의 내용을 독자들이 글자 그대로 맹신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들의 경고에 따르면 우리는 「내편」 7편을 읽은 후 장자 본인이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진정한 가르침, 혼돈이라고 상징되는 핵심 취지를 파악해야만 할 것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