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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들어가는 말 - 1. 『장자』를 읽는 이유와 그 의미, 우화로 글을 쓴 이유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들어가는 말 - 1. 『장자』를 읽는 이유와 그 의미, 우화로 글을 쓴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1. 6. 3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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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화로 글을 쓴 이유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항상 타자와 조우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라 유한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자와 조우할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 하나는 차이보다 동일성을 긍정하는 경우다. 우리는 조우한 타자로부터 발생하는 차이를 억압하고 지배하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타자를 삶의 짝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장자처럼 동일성보다 차이를 긍정하는 경우다. 이것은 우리가 타자를 삶의 짝으로 긍정하고 타자에 맞게 자신의 동일성을 새롭게 구성하는 경우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자라는 고전도 상이한 두 가지 방식으로 독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우리가 기존의 선입견, 예를 들면 장자는 문명을 비판하면서 대자연과의 화해를 주장했다든가, 아니면 장자는 예술적인 정신적 자유를 주장했다든가라는 선이해를 가지고 장자를 독해하는 방법이다. 사실 이와 같은 독해 방법은 장자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자세이기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던 장자에 대한 이해를 확인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런 식의 독해는 비록 장자를 읽었다고 할지라도 읽지 않은 것과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가 권고하고 싶은 둘째 방법은 장자를 읽으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자이해를 비우고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키면서 독해하는 방법이다. 이런 독해 방법에 따르는 경우에만, 우리는 장자와 더불어 전혀 새로운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자는 그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타자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은 짧은 우화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가는 대붕에 대한 이야기’, ‘소를 능숙하게 잡는 포정이라는 백정에 대한 이야기’, ‘원숭이와 원숭이 키우는 사람 사이에 진행되는 조삼모사에 대한 이야기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장자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논문 형식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장 깊이 있고 심오한 통찰력을 가진 장자가 자신의 사상을 이런 형식으로 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자신의 글을 읽고 있던 독자와 그 독자를 통해 생성되기를 바랬던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글을 마치 아름다운 여인처럼 만들었다. 아름다운 여인과 만날 때, 우리는 그녀에게 매혹되고 그녀가 지금 원하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매혹적인 장자의 이야기들과 만나면, 우리는 이 이야기들에 빨려 들어가고 이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만약 장자가 논문 형식으로 어떤 것을 주장하였다면, 우리는 직접적으로 그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평가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장자는 재미있는 우화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평가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롭게 된다. 우리는 일단 그의 이야기들을 읽고 그 내용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직접 장자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도 삶을 살아가면서 ! 그래서 장자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만큼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장자이해란 하나의 이념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장자를 읽기 전과 읽은 후 스스로 완전히 달라지게끔 독해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또한 장자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독자를 필요로 하는 법이다. 고전이 하나의 고정된 의미 속에 박제가 되어갈 때, 고전은 죽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박제가 된 고전을 통해서 우리는 다르게 생성될 수 없는 법이다. 이 책은 박제가 된 장자를 다시 고전으로 살려내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고전으로서의 장자를 읽고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장자로부터 떠나려고 쓰여진 것이기도 하다. 장자가 중국의 철학과 문화에 대해 지니는 위상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이런 작업은 중국적 정신이나 의식의 핵심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이란 작업은 처음에는 외부로 향해지는 것 같지만 바로 그 다음에는 자신으로 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장자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취하게 될 것이다.

 

 

 

 

인용

목차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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