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시인의 감정은 담지 않고 계급적 억압을 담담이 담아내다
이 시는 한 기생 신분의 여성이 사랑과 절조를 지킨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다.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이 사적(事蹟)은 자신이 예조좌랑(禮曹佐郎)으로 있을 때 접수된 것으로 밝혔다. 「서포연보(西浦年譜)」에 김만중이 예조좌랑에 보임된 것은 을사년 5월인데 이 「단천절부시(端川節婦詩)」를 지은 것도 그해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시의 창작연도는 그의 나이 29세 때인 현종 6년(1665)인 것이다.
함경도 『단천읍지(端川邑誌)』를 보면 열녀조(烈女條)에 ‘관비일선(官婢一仙)’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기(妓)는 신분적으로 비(婢)에 속하기 때문에 관비(官婢)라고 했을 것이며 이름은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르게 씌어졌을 것이다.
“일선은 소시에 태수의 아들 진사 기인(奇寅)의 고임을 받았던바 기인이 죽자 그가 남긴 머리털이 문득 하얗게 변했다. 일선은 도보로 분상(奔喪)하여 서울까지 가서 삼년복을 입었다. 그리고 쇄환(刷還)이 되어 돌아왔는데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니 스스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사람들의 구원을 입어 살아났다. 끝끝내 절개를 바꾸지 않고 살다가 나이 70이 지나 죽었다. 숙종 신미년(1691)에 정문을 내렸다. 『여지도서(輿地圖書) 함경도(咸鏡道) 단천(端川)』”
이 읍지 기록으로 실재 근거를 재확인하는데, 일선이 사랑을 바친 대상이 기인이라는 인물임을 알게 되며 일선의 후일담도 듣는다. 그런데 기인의 죽음과 일선이 수청을 강요당한 두 중요한 사건의 순차가 서로 다르다. 전문의 차이일 터인데 이 시는 그 고을에서 예조로 올라온 문서에 의거하였으므로, 오히려 시쪽이 사실에 근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자상하면서도 구체적 정황을 묘사하면서 엮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일선과 기진사 사이에 사랑의 곡절이 펼쳐지면서 일선의 신의와 애정을 지키는, 기구한 사연과 인간의 견결(堅決)한 자세가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 이별의 장면이나 일선이 진사의 집을 찾아가 시어미와 본부인을 대면하고 그 집에서 인정을 받는 과정의 서술은 양인의 사랑의 심도를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주인공의 인물 형상을 풍부한 내용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일선의 신상에 가해진 핍박이 피억압자의 저항하는 측면은 강하고 뚜렷이 제시된 반면, 억압자의 측면은 애매하게 넘어갔다. 안사(억압자)의 몰염치는 작중에 사건의 진행으로 간파하도록 하였으나, 그에 대한 시인의 분노의 정서나 비판의 시각은 보이지 않고 잠잠할 뿐이다. 시인의 계급적 입장의 반영이 아닌가 본다.
원님 아들과 기생 사이의 사랑은 우리 서사문학의 한 전형이다. 『춘향전』은 이 전형이 만든 최대의 걸작인바, 지금 「단천절부시(端川節婦詩)」는 『춘향전』으로 발전하는 문학사의 중간 결산이라 하겠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189~190쪽
계기 | 지은 이유. 미천한 신분 때문에 절개를 지켰음에도 정표되지 못하다 |
1 | 서울로 떠나야 하는 낭군과 단천에 남아야 하는 일선 |
2 | 헤어지던 날 피로 맹세하다 |
3 | 단천에 들른 안찰사 일선에게 맘을 품다 |
4 | 수청을 거부한 일선, 죽기를 결심하다 |
5 | 색이 변한 동심결과 낭군의 비보 |
6 | 서울에 들어와 결국 한 가족으로 인정받다 |
7 | 세상에 드문 절개이니 역사가들이여 소홀히 말라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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