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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지(章臺枝) - 지은 계기. 버리지 않겠노라 약조했지만 끝내 함께 하지 못하다 본문

한시놀이터/서사한시

장대지(章臺枝) - 지은 계기. 버리지 않겠노라 약조했지만 끝내 함께 하지 못하다

건방진방랑자 2021. 8. 1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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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계기. 버리지 않겠노라 약조했지만 끝내 함께 하지 못하다

 

章臺枝, 故坡平尙書之姬也.

歲辛亥尙書爲成川, 姬邑婢也. 時年十五六, 旅行諸妓中退然不見態色, 公偶見而悅焉, 引欲自侍固不可.

叩其故, 對曰: “妾父良人也, 父將死時, 以女爲賤流, 顧語母甚戚之. 妾用是痛心, 苟有所從, 誓畢身於一人耳.” 公感其言, 卽許以不棄焉. 旣幸而益忠敬, 公心宜之.

居數月去成川爲海西觀察使. 與之約曰: “某時遣迎, 汝且待之.” 姬敬諾. 旣而不果, 盖之官不數月, 又遞去矣. 公居家貧, 又性拙, 不能輒置姬侍. 待更作向西一郡迎取, 屢不諧且六七年. 姬守益堅, 然已沈病矣, 其未病, 嘗一至京拜公而去.

及公留守江都, 聞其已死矣, 公大傷懊, 爲遣親信人持文往祭之, 姬死時年二十餘. 將死告母曰: “埋我官道側, 儻我公宦遊過之.” 聞者悲其言.

尙書余重表叔也, 知其冲實賢者, 必不棄信於人. 姬亦感公知愛, 日夜想望, 將有待於前約, 則非其心之期於死也. 情深病㞃, 風燭奄及, 盖有不自由焉, 信可傷也. 然能自拔於賤汙之中, 得托命名公. 始終明白, 死而見謂某氏之人, 斯可以不負初誓之心, 又何求乎?

或曰: “章臺怨乎.” 章臺之死也非情也, 死於貞耳. 情猶有恩怨焉, 貞以自持而已, 何怨之有? 故曰: “貞必有情, 情未必皆貞.”

亡友曹幼安, 尙書夫人之姪也. 爲余言此事甚悉, 幼安能道其名, 未知何姓. 此事今人罕知者, 念其將久而湮沒, 爲作詩識之, 且以紓其怨恨云. 其詩曰.

 

 

 

 

해석

章臺枝[각주:1], 故坡平尙書[각주:2]之姬也.

장대지란 돌아가신 파평 상서의 첩이다.

 

歲辛亥尙書爲成川, 姬邑婢也.

신해년(1731)에 상서 윤용이 성천의 사또가 되었을 적에 장대지는 읍의 기생이었다.

 

時年十五六, 旅行[각주:3]諸妓中退然不見態色,

당시 나이 15~6세로 기생집단 의 여러 기생 중 수수하여 색기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公偶見而悅焉, 引欲自侍固不可.

공이 우연히 보고 좋아하게 되어 끌어와 스스로 모셔주길 바랐지만 짐짓 하지 않았다.

 

叩其故, 對曰: “妾父良人也,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했다. “첩의 아버지는 양인이었는데

 

父將死時, 以女爲賤流,

아버지께서 장차 돌아가실 때에 딸이 천한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顧語母甚戚之.

돌아보며 어머니에게 말씀한 것이 매우 근심스러웠습니다.

 

妾用是痛心,

저는 이 애통한 마음 때문에

 

苟有所從, 誓畢身於一人耳.”

진실로 따를 것은 맹세컨대 한 사람에게 몸을 다할 뿐입니다.”

 

公感其言, 卽許以不棄焉.

공은 그 말에 감격하여 곧 버리지 않겠노라고 허락했다.

 

旣幸而益忠敬, 公心宜之.

이윽고 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더욱 충성스럽고 공경히 하자 공은 내심 좋게 여겼다.

 

居數月去成川爲海西觀察使.

몇 달을 살다가 성천을 떠나 해서관찰사가 되었다.

 

與之約曰: “某時遣迎, 汝且待之.”

그녀와 모시에 맞으러 올 테니 너는 또한 그걸 기다려다오.”라고 약조했고,

 

姬敬諾.

그녀는 공경히 응낙했다.

 

旣而不果,

얼마후에 과연 그러하지 못했는데

 

盖之官不數月, 又遞去矣.

대체로 관직이 몇 개월 되지 않아 또한 전직되어 떠났기 때문이었다.

 

公居家貧, 又性拙,

공의 집은 가난하고 또한 성품은 우직하여

 

不能輒置姬侍.

대번에 첩을 두어 모심을 받을 수는 없었다.

 

待更作向西一郡迎取,

다시 서쪽 한 군을 향해 가게되면 맞아 취하리라 기대했지만

 

屢不諧且六七年.

자주 뜻대로 되지 않았고 또한 6~7년이 흘렀다.

 

姬守益堅, 然已沈病矣,

그녀는 수절은 더욱 견고해졌지만 이미 병에 깊어졌고

 

其未病, 嘗一至京拜公而去.

병 들기 전에 일찍이 서울에 와서 공에게 안부를 전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及公留守江都, 聞其已死矣,

공이 강화도의 유수였을 적에 그녀가 이미 죽었다는 걸 듣고

 

公大傷懊,

공은 매우 속상해하고 한스러워하며

 

爲遣親信人持文往祭之,

친한 믿음직스런 사람을 보내 제문(祭文)을 가지고 가서 그녀를 제사지내도록 했으니,

 

姬死時年二十餘.

그녀의 죽은 나이는 20여살이었다.

 

將死告母曰:

장차 그녀가 죽을 때에 어머니에게 말했다.

 

埋我官道側, 儻我公宦遊過之.”

나의 관을 길가에 묻어주세요. 혹시나 우리 공이 벼슬길에 지나실 수 있으니.”

 

聞者悲其言.

듣는 사람들이 그 말에 슬퍼했다.

 

尙書余重表叔也,

상서는 나의 종대고모(從大姑母: 할아버지의 사촌 누이)의 아들로

 

知其冲實賢者, 必不棄信於人.

충심하고 진실하며 어진 사람으로 반드시 사람에게 신의(信義)를 버리지 않으리란 걸 안다.

 

姬亦感公知愛, 日夜想望,

그녀 또한 공이 알아주고 사랑함에 감격하여 낮밤으로 생각하고 바라며

 

將有待於前約, 則非其心之期於死也.

장차 전의 약조를 기다렸을 것이니 그 마음이 죽기를 기약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情深病㞃, 風燭奄及,

정이 깊기에 병이 깊어져 바람 앞의 촛불처럼 갑자기 그리된 것이지

 

盖有不自由焉, 信可傷也.

대체로 스스로 그리하도록 한 것은 아니니 진실로 속상할 만하다.

 

然能自拔於賤汙之中, 得托命名公.

그러나 스스로 미천한 신분 속에서도 빼어나 이름 있는 공에게 의탁하여 명명될 수 있었고

 

始終明白, 死而見謂某氏之人,

시종 명백하여 죽어서 아무개의 사람이라 일컬어지게 했다.

 

斯可以不負初誓之心, 又何求乎?

이것이 처음의 맹세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니 또한 무얼 구하리오.

 

或曰: “章臺怨乎.”

혹자는 장대는 원망했구나.”라고 말한다.

 

章臺之死也非情也, 死於貞耳.

장대의 죽음은 정 때문이 아니고 정절 때문에 죽었을 뿐이다.

 

情猶有恩怨焉, 貞以自持而已,

정은 오히려 은혜와 원망이 있지만 정절은 스스로 지킬 뿐이니

 

何怨之有?

어찌 원망함이 있겠는가?

 

故曰: “貞必有情, 情未必皆貞.”

그러므로 정절은 반드시 정이 있지만 정은 반드시 모두 정절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겠다.

 

亡友曹幼安, 尙書夫人之姪也.

죽은 친구인 조유안은 상서의 조카이다.

 

爲余言此事甚悉,

나에게 이 일을 매우 자세하게 말해줬는데

 

幼安能道其名, 未知何姓.

유안은 그 이름은 말해주었지만 무슨 성인지는 알지 못했다.

 

此事今人罕知者, 念其將久而湮沒,

이 일이 지금 사람들도 아는 이가 드문데 장차 오래되어 잊혀질까 염려되어

 

爲作詩識之, 且以紓其怨恨云. 其詩曰.

시를 지어 알리려 하고 또한 원한을 풀어주려 한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인용

전문

해설

 
  1. 장대지(章臺枝): ‘장대(章臺)’는 원래 전국시대 진(秦) 나라 장안(長安)에 있는 누대의 이름이었는데, 한(漢) 나라 이후 장안 장대의 거리가 번화해서 기방이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다. 당나라 때 한굉(韓翃)이라는 사람이 장안의 아름다운 유(柳)씨 여자와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전란으로 인해 이별하게 되었다. 한굉은 그녀에게 "장대류, 장대류. 옛날 푸르고 푸르더니 지금 그대로 잘 있는가? 비록 긴 가지 전처럼 늘어져 있더라도 남의 손에 꺾이지 않았을까[章臺柳章臺柳 昔日靑靑今在否 縱使長條似舊垂 亦應攀折他人手]"라는 시를 지어 보냈다. 이에 유래하여 장대지라는 이름은 오직 한 남자에게만 꺾임을 허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문으로]
  2. 파평상서(坡平尙書): 윤용(尹容: 1684~1764)을 가리킨다. 그의 본관이 파평으로 예조판서를 역임했기 때문에 붙여진 칭호다. 자는 수보(受甫)이며, 부친 윤지인(尹趾仁: 1656~1718)과 함께 청백리로 이름이 났다. [본문으로]
  3. 여행(旅行): 현역의 기생집단을 이르는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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