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계기. 버리지 않겠노라 약조했지만 끝내 함께 하지 못하다
章臺枝者, 故坡平尙書之姬也.
歲辛亥尙書爲成川, 姬邑婢也. 時年十五六, 旅行諸妓中退然不見態色, 公偶見而悅焉, 引欲自侍固不可.
叩其故, 對曰: “妾父良人也, 父將死時, 以女爲賤流, 顧語母甚戚之. 妾用是痛心, 苟有所從, 誓畢身於一人耳.” 公感其言, 卽許以不棄焉. 旣幸而益忠敬, 公心宜之.
居數月去成川爲海西觀察使. 與之約曰: “某時遣迎, 汝且待之.” 姬敬諾. 旣而不果, 盖之官不數月, 又遞去矣. 公居家貧, 又性拙, 不能輒置姬侍. 待更作向西一郡迎取, 屢不諧且六七年. 姬守益堅, 然已沈病矣, 其未病, 嘗一至京拜公而去.
及公留守江都, 聞其已死矣, 公大傷懊, 爲遣親信人持文往祭之, 姬死時年二十餘. 將死告母曰: “埋我官道側, 儻我公宦遊過之.” 聞者悲其言.
尙書余重表叔也, 知其冲實賢者, 必不棄信於人. 姬亦感公知愛, 日夜想望, 將有待於前約, 則非其心之期於死也. 情深病㞃, 風燭奄及, 盖有不自由焉, 信可傷也. 然能自拔於賤汙之中, 得托命名公. 始終明白, 死而見謂某氏之人, 斯可以不負初誓之心, 又何求乎?
或曰: “章臺怨乎.” 章臺之死也非情也, 死於貞耳. 情猶有恩怨焉, 貞以自持而已, 何怨之有? 故曰: “貞必有情, 情未必皆貞.”
亡友曹幼安, 尙書夫人之姪也. 爲余言此事甚悉, 幼安能道其名, 未知何姓. 此事今人罕知者, 念其將久而湮沒, 爲作詩識之, 且以紓其怨恨云. 其詩曰.
해석
장대지란 돌아가신 파평 상서의 첩이다.
歲辛亥尙書爲成川, 姬邑婢也.
신해년(1731)에 상서 윤용이 성천의 사또가 되었을 적에 장대지는 읍의 기생이었다.
당시 나이 15~6세로 기생집단 의 여러 기생 중 수수하여 색기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公偶見而悅焉, 引欲自侍固不可.
공이 우연히 보고 좋아하게 되어 끌어와 스스로 모셔주길 바랐지만 짐짓 하지 않았다.
叩其故, 對曰: “妾父良人也,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했다. “첩의 아버지는 양인이었는데
父將死時, 以女爲賤流,
아버지께서 장차 돌아가실 때에 딸이 천한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顧語母甚戚之.
돌아보며 어머니에게 말씀한 것이 매우 근심스러웠습니다.
妾用是痛心,
저는 이 애통한 마음 때문에
苟有所從, 誓畢身於一人耳.”
진실로 따를 것은 맹세컨대 한 사람에게 몸을 다할 뿐입니다.”
公感其言, 卽許以不棄焉.
공은 그 말에 감격하여 곧 버리지 않겠노라고 허락했다.
旣幸而益忠敬, 公心宜之.
이윽고 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더욱 충성스럽고 공경히 하자 공은 내심 좋게 여겼다.
居數月去成川爲海西觀察使.
몇 달을 살다가 성천을 떠나 해서관찰사가 되었다.
與之約曰: “某時遣迎, 汝且待之.”
그녀와 “모시에 맞으러 올 테니 너는 또한 그걸 기다려다오.”라고 약조했고,
姬敬諾.
그녀는 공경히 응낙했다.
旣而不果,
얼마후에 과연 그러하지 못했는데
盖之官不數月, 又遞去矣.
대체로 관직이 몇 개월 되지 않아 또한 전직되어 떠났기 때문이었다.
公居家貧, 又性拙,
공의 집은 가난하고 또한 성품은 우직하여
不能輒置姬侍.
대번에 첩을 두어 모심을 받을 수는 없었다.
待更作向西一郡迎取,
다시 서쪽 한 군을 향해 가게되면 맞아 취하리라 기대했지만
屢不諧且六七年.
자주 뜻대로 되지 않았고 또한 6~7년이 흘렀다.
姬守益堅, 然已沈病矣,
그녀는 수절은 더욱 견고해졌지만 이미 병에 깊어졌고
其未病, 嘗一至京拜公而去.
병 들기 전에 일찍이 서울에 와서 공에게 안부를 전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及公留守江都, 聞其已死矣,
공이 강화도의 유수였을 적에 그녀가 이미 죽었다는 걸 듣고
公大傷懊,
공은 매우 속상해하고 한스러워하며
爲遣親信人持文往祭之,
친한 믿음직스런 사람을 보내 제문(祭文)을 가지고 가서 그녀를 제사지내도록 했으니,
姬死時年二十餘.
그녀의 죽은 나이는 20여살이었다.
將死告母曰:
장차 그녀가 죽을 때에 어머니에게 말했다.
“埋我官道側, 儻我公宦遊過之.”
“나의 관을 길가에 묻어주세요. 혹시나 우리 공이 벼슬길에 지나실 수 있으니.”
聞者悲其言.
듣는 사람들이 그 말에 슬퍼했다.
尙書余重表叔也,
상서는 나의 종대고모(從大姑母: 할아버지의 사촌 누이)의 아들로
知其冲實賢者, 必不棄信於人.
충심하고 진실하며 어진 사람으로 반드시 사람에게 신의(信義)를 버리지 않으리란 걸 안다.
姬亦感公知愛, 日夜想望,
그녀 또한 공이 알아주고 사랑함에 감격하여 낮밤으로 생각하고 바라며
將有待於前約, 則非其心之期於死也.
장차 전의 약조를 기다렸을 것이니 그 마음이 죽기를 기약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情深病㞃, 風燭奄及,
정이 깊기에 병이 깊어져 바람 앞의 촛불처럼 갑자기 그리된 것이지
盖有不自由焉, 信可傷也.
대체로 스스로 그리하도록 한 것은 아니니 진실로 속상할 만하다.
然能自拔於賤汙之中, 得托命名公.
그러나 스스로 미천한 신분 속에서도 빼어나 이름 있는 공에게 의탁하여 명명될 수 있었고
始終明白, 死而見謂某氏之人,
시종 명백하여 죽어서 아무개의 사람이라 일컬어지게 했다.
斯可以不負初誓之心, 又何求乎?
이것이 처음의 맹세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니 또한 무얼 구하리오.
或曰: “章臺怨乎.”
혹자는 “장대는 원망했구나.”라고 말한다.
章臺之死也非情也, 死於貞耳.
장대의 죽음은 정 때문이 아니고 정절 때문에 죽었을 뿐이다.
情猶有恩怨焉, 貞以自持而已,
정은 오히려 은혜와 원망이 있지만 정절은 스스로 지킬 뿐이니
何怨之有?
어찌 원망함이 있겠는가?
故曰: “貞必有情, 情未必皆貞.”
그러므로 “정절은 반드시 정이 있지만 정은 반드시 모두 정절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겠다.
亡友曹幼安, 尙書夫人之姪也.
죽은 친구인 조유안은 상서의 조카이다.
爲余言此事甚悉,
나에게 이 일을 매우 자세하게 말해줬는데
幼安能道其名, 未知何姓.
유안은 그 이름은 말해주었지만 무슨 성인지는 알지 못했다.
此事今人罕知者, 念其將久而湮沒,
이 일이 지금 사람들도 아는 이가 드문데 장차 오래되어 잊혀질까 염려되어
爲作詩識之, 且以紓其怨恨云. 其詩曰.
시를 지어 알리려 하고 또한 원한을 풀어주려 한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인용
- 장대지(章臺枝): ‘장대(章臺)’는 원래 전국시대 진(秦) 나라 장안(長安)에 있는 누대의 이름이었는데, 한(漢) 나라 이후 장안 장대의 거리가 번화해서 기방이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다. 당나라 때 한굉(韓翃)이라는 사람이 장안의 아름다운 유(柳)씨 여자와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전란으로 인해 이별하게 되었다. 한굉은 그녀에게 "장대류, 장대류. 옛날 푸르고 푸르더니 지금 그대로 잘 있는가? 비록 긴 가지 전처럼 늘어져 있더라도 남의 손에 꺾이지 않았을까[章臺柳章臺柳 昔日靑靑今在否 縱使長條似舊垂 亦應攀折他人手]"라는 시를 지어 보냈다. 이에 유래하여 장대지라는 이름은 오직 한 남자에게만 꺾임을 허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문으로]
- 파평상서(坡平尙書): 윤용(尹容: 1684~1764)을 가리킨다. 그의 본관이 파평으로 예조판서를 역임했기 때문에 붙여진 칭호다. 자는 수보(受甫)이며, 부친 윤지인(尹趾仁: 1656~1718)과 함께 청백리로 이름이 났다. [본문으로]
- 여행(旅行): 현역의 기생집단을 이르는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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