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백이숙제의 예시로 공자의 의중을 떠보다
冉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爲, 去聲.
○ 爲, 猶助也. 衛君, 出公輒也. 靈公逐其世子蒯聵. 公薨, 而國人立蒯聵之子輒. 於是晉納蒯聵而輒拒之. 時孔子居衛, 衛人以蒯聵得罪於父, 而輒嫡孫當立, 故冉有疑而問之. 諾, 應辭也.
入, 曰: “伯夷, 叔齊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伯夷ㆍ叔齊, 孤竹君之二子. 其父將死, 遺命立叔齊. 父卒, 叔齊遜伯夷. 伯夷曰: “父命也”, 遂逃去. 叔齊亦不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其後武王伐紂, 夷ㆍ齊扣馬而諫. 武王滅商, 夷ㆍ齊恥食周粟, 去隱于首陽山, 遂餓而死.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 曰: “夫子不爲也.”
怨, 猶悔也. 君子居是邦, 不非其大夫, 況其君乎? 故子貢不斥衛君, 而以夷ㆍ齊爲問. 夫子告之如此, 則其不爲衛君可知矣. 蓋伯夷以父命爲尊, 叔齊以天倫爲重. 其遜國也, 皆求所以合乎天理之正, 而卽乎人心之安. 旣而各得其志焉, 則視棄其國猶敝蹝爾, 何怨之有? 若衛輒之據國拒父而惟恐失之, 其不可同年而語明矣.
○ 程子曰: “伯夷ㆍ叔齊遜國而逃, 諫伐而餓, 終無怨悔, 夫子以爲賢, 故知其不與輒也.”
해석
冉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염유가 “부자께서 위나라 임금을 도우실까?”라고 말하자, 자공이 “좋다. 내가 장차 물어보겠다.”라고 말했다.
爲, 去聲.
○ 爲, 猶助也.
위(爲)는 돕는다는 것이다.
衛君, 出公輒也. 靈公逐其世子蒯聵.
위나라 임금은 공출첩이다. 영공이 그 세자 괴외를 내쫓았다.
公薨, 而國人立蒯聵之子輒.
영공이 승하하자 나라 사람들이 괴외의 자식인 첩을 옹립했다.
於是晉納蒯聵而輒拒之.
이에 진나라에서 괴외를 들여보내자 공출첩이 그를 막았다.
時孔子居衛,
이때에 공자는 위나라에 거주했는데
衛人以蒯聵得罪於父,
위나라 사람이 괴외가 아버지께 죄를 지었고
而輒嫡孫當立,
첩은 적손이기에 마땅히 즉위해야 한다고 했다.
故冉有疑而問之.
그러므로 염유는 의심하고서 물어본 것이다.
諾, 應辭也.
락(諾)은 응답하는 말이다.
入, 曰: “伯夷, 叔齊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들어가서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여쭈니, “옛적의 현인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伯夷ㆍ叔齊, 孤竹君之二子.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의 두 아들이다.
其父將死, 遺命立叔齊.
그 아버지가 장차 죽으려 할 때 유명으로 숙제를 세우라 했다.
父卒, 叔齊遜伯夷.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숙제는 백이에게 사양했고
伯夷曰: “父命也”, 遂逃去.
백이는 “아버지의 명이다”라고 말하며 마침내 도망갔다.
叔齊亦不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숙제 또한 즉위하지 않고 도망가니 나라사람이 둘째 자식을 옹립했다.
其後武王伐紂,
그 후에 무왕이 주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夷ㆍ齊扣馬而諫.
백이와 숙제가 말고삐를 당겨 간했다.
武王滅商,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夷ㆍ齊恥食周粟,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곡식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가서
去隱于首陽山, 遂餓而死.
수양산에 은둔하여 마침내 굶주려 죽었다.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 曰: “夫子不爲也.”
자공이 “원망하였습니까?”라고 여쭈니,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는데 또한 어찌 원망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나와서 “부자께선 돕지 않을 것이네.”라고 염유에게 말해줬다.
怨, 猶悔也.
원(怨)은 후회한다는 것이다.
君子居是邦, 不非其大夫,
군자는 이 나라에 거처하며 대부를 비난하지 않는데,
況其君乎?
하물며 그 임금이겠는가.
故子貢不斥衛君,
그러므로 자공이 위나라 임금을 가리키지 않고
而以夷ㆍ齊爲問.
백이와 숙제로 물음을 삼았다.
夫子告之如此,
부자가 이와 같이 말해줬으니,
則其不爲衛君可知矣.
위나라 임금을 돕지 않았다는 걸 알 만하다.
蓋伯夷以父命爲尊, 叔齊以天倫爲重.
대개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을 높였고 숙제는 천륜을 중요하게 여겼다.
其遜國也, 皆求所以合乎天理之正,
그 나라를 사양한 것이 모두 천리의 바름에 합하길 구한 것이고
而卽乎人心之安.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가길 구한 것이다.
旣而各得其志焉, 則視棄其國猶敝蹝爾,
이윽고 각각 뜻을 얻어선 그 나라 버리기를 헌신짝처럼 여겼을 뿐이니,
何怨之有?
어찌 원망이 있겠는가?
若衛輒之據國拒父而惟恐失之,
만약 위나라 첩이 나라를 점거하고 아버지를 막아서 오직 잃을까 두려워했다면
其不可同年而語明矣.
똑같이 놓고 말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 程子曰: “伯夷ㆍ叔齊遜國而逃,
정이천이 말했다. “백이와 숙제는 나라를 사양하여 도망갔고
諫伐而餓, 終無怨悔,
정벌에 간하다가 굶어 죽었지만 마침내 후회와 원망은 없었다.
夫子以爲賢,
그래서 부자가 어질다고 여겼기 때문에
故知其不與輒也.”
첩과 함께 하지 않은 것을 안 것이다.”
○ 공자와 제자들은 신념을 에둘러 밝히고는 했다. ‘논어’ 술이(述而)편에서 제자들은 위(衛)나라의 내분(內紛)에 대해 공자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해 했다. 위나라 영공(靈公)은 어리석고 부인 남자(南子)는 음탕했다. 기원전 496년, 세자 괴외(괴외)는 남자(南子)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국외로 망명했다. 영공이 죽은 뒤 남자(南子)는 공자 영(영)을 즉위시키려 했으나 사양하자, 괴외의 아들 첩(輒)을 세웠다. 그가 출공(出公)이다. 이로써 16년 동안 부자간에 정권 다툼을 벌였다.
공자의 제자 염유(冉有)가 “선생님은 위나라 임금(즉 出公)을 인정할까요?”라고 하자 자공(子貢)은 “내가 곧 물어보죠”라고 했다. 자공이 들어가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어떤 사람입니까?” 물으니 공자는 “옛날의 어진 사람이다”고 했다. 자공이 “그들은 세상을 원망했습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자공은 나와서 “선생님은 위나라 임금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구인(求仁)은 인을 추구한다는 뜻이고, 득인(得仁)은 인을 실행했다는 뜻이다. 하(何)는 의문사이다. 한문에서는 의문사가 목적어이면 술어(동사)보다 앞에 온다. 또 한문에서는 과거 시제의 보조사가 발달하지 않았다. 문맥상 하원호(何怨乎)를 ‘무엇을 원망했겠는가’로 풀이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들이었다. 아버지가 숙제를 후사로 세웠으나 숙제는 형 백이에게 양보했고 백이는 부친의 명을 어길 수 없다며 도망했다. 숙제도 도망했다. 공자는 그들이 인을 실행했으며 부자 사이에도 형제 사이에도 원망이 없었다고 보았다. 인륜(人倫)을 중시한 공자는 왕위(王位) 때문에 부자가 다투는 일 자체를 악으로 보았기에 출공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적 맥락을 떠나, 구인이득인(求仁而得仁)은 이상의 추구야말로 인간의 숭고한 행위임을 가르쳐 준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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