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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아비튀스(Habitus)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아비튀스(Habitus)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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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튀스

Habitus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한 가지 있다. 우리 사회에서만 유독 장학금은 주로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에게 배당된다. 특히 학교 외에서 제공되는 장학금, 이를테면 이따금 신문에 미담으로 보도되는 것처럼 한 할머니가 냉면집을 운영해 평생 모은 10억원을 대학교에 기탁했을 때 그 돈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뻔하다. 실제로 그 할머니도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등학교라면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대학교 같은 고등교육 기관이라면 집안 형편을 기준 삼기보다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을 지원하는 게 정상이다. 굳이 형편을 따진다면 공부에 뜻을 둔 학생들 중에서 가난한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는 게 원칙이 되어야 한다. 초등학교는 학생이 장차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교육의 목표를 두지만, 대학교는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할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은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배워 출세하라는 격려금이나 마찬가지다. 권력이나 재력을 물려받지 못한 사람에게 신분 상승의 가능성은 학력을 높이는 길 외에는 없다. 실제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는 학력을 하나의 자본으로 본다. 사회의 하층 계급에서 상층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자본이 필요하다면 여기에는 학력 자본도 한몫을 한다.

 

 

 

 

고전적인 계급개념은 주로 경제적인 것으로, 생산수단이나 자본의 소유 여부에 따라 계급이 구분되었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아비튀스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계급을 설명한다. 아비튀스란 인간 행위를 생산하는 무의식적 성향을 뜻한다.

 

법대 교수인 김 씨는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좋아하고, 전철역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박 씨는 하루 종일 이미자의 뽕짝 카세트만 틀어놓는다. 일반적으로 바흐의 음악은 이미자의 음악보다 고급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교수가 저명한 연극연출가인 아버지와 음악대학의 기악과 교수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면 고급하다는 말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런 집안에서 그런 문화적 여건을 가지고 그런 교육을 받았다면 김 교수의 음악적 취향은 고급, 저급을 논하기 이전에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비튀스란 의식적인 취향의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적이다. 흔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취미도 실은 무의식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아비튀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육이다. 아비튀스는 복잡한 교육 체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무의식적 사회화의 산물이다. 김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영향으로 서양 고전음악에 묻혀 살았을 테고, 무의식적으로 그 취향에 대한 아비튀스를 키워왔을 터다. 반면 박 씨는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자칭 공돌이’, 타칭 산업역군으로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던 짬짬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흘러간 가요를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나름의 아비튀스를 키워왔을 것이다. 이처럼 아비튀스는 교육을 통해 상속된다.

 

 

부르디외는 교육을 문화적 자본이라고 부른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지배하지만 예전처럼 경제적 자본만으로 지배하는 게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경제적 자본의 지배보다 문화적 자본의 지배가 강화된다. 때로는 두 자본이 서로 결합해 지배하기도 한다. 경제적 자본을 가진 자본가(기업가)는 문화적 자본을 더 추구하며, 문화적 자본을 가진 자본가(교수, 판사 등)는 경제적 자본을 더 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류층의 혼맥은 여기서 비롯된다.

 

경제적 자본만이 아니라 문화적 자본도 상속된다. 물론 아비튀스는 무의식에 속하므로 의식적으로 한두 세대에 속성 배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재에는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들이 가득하고 고전음악은 꼭 전집으로만 사들이는 졸부들의 취향이 조잡함을 면치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아비튀스는 마치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다음 세대에 자연스럽게 유전되기 때문에(이기적 유전자) 졸부들도 대를 이어 열심히 노력하면 한두 세대쯤 지나 진정으로 고급한 아비튀스를 가진 후손을 둘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식에게 재산보다 아비튀스를 물려주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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