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Existence
“인간이란 무엇인가?”
언뜻 심오한 철학적 질문처럼 보이는 이 물음은 실상 심오하지도 않고 철학적이지도 않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마치 책상 위의 볼펜이나 정원의 나무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볼펜과 나무는 철학이 아니라 과학의 대상이므로, 과학적으로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정의를 내리는 존재이지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다.
17세기부터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 이성은 이후 200여 년 동안 눈부신 활약을 보이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밝히고 규정했다. 이성으로 알아내지 못한 게 없었다. 철학적 이성은 인식의 과정을 해명했고, 정치적 이성은 근대 민주주의를 확립했고, 경제적 이성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고, 과학적 이성은 만물의 이치를 규명했다. 자신의 능력에 압도된 나머지 이성은 급기야 이성의 주체인 인간조차 대상화시켜 사물을 묻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배경에서 앞에서 언급한 대담한 질문이 나왔다.
“……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전형적인 실증주의적 탐구 방식이다. 실증주의는 이성을 확고한 주체로 삼고 그밖에 모든 것을 대상으로 확연히 분리한다. 그 성과는 대단했다. 파스퇴르는 “질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바탕으로 질병의 원인인 병원균을 발견했고, 오토는 “동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가솔린 엔진을 발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해도 자기 자신을 대상화시켜도 될까?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가능한 것일까?
실존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질문은 아예 불가능하다. 실존이라는 개념은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가 헤겔(Hegel, 1770~1831)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처음으로 제기했다. 철학을 완성했다고 자처할 만큼 헤겔은 방대하고 정교한 철학 체계를 구축했으나 키에르케고르는 그것으로도 인간의 실존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왜 그럴까? 설사 헤겔이 자부한 대로 그의 철학 체계가 완벽하다 하더라도 실존을 사유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실존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완전으로 불완전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실존의 개념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항상 구체적인 상황 속에 처한 존재다. 인간은 세계와 분리되지 않고 분리될 수도 없다. 사물은 자체의 존재 근거를 내재하고 있지만 인간은 자체의 근거가 없으므로 늘 바깥을 향하며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합리적 이성의 탐구 대상이 될 수 없다. 인간은 본질이 없기 때문에 정의되지 않는다. 인간 일반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일반적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이 주관적이고 주체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고,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에 모종의 권력이 작용한다고 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세계 속에 존재하면서 세계를 묻는 독특한 인간의 이중적 존재방식을 포함하는 의미로 현존재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썼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인간이 무(無)와 같은 존재라고 보았다. 이 실존철학자들의 공통점은 인간이 이성으로 정의되지 않는 비합리적이고 부조리와 우연성에 가득한 존재로 본다는 점이다.
이런 인간의 이미지는 어딘가 어둡고 비극적인 냄새를 풍긴다. 실제로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신 앞에 선 단독자. -『죽음에 이르는 병』”라고 말했고,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실존의 근원에 이유 없는 불안이 있다고 보았다. 심지어 사르트르는 자유를 긍정적인 가치로 보지 않고 마치 형벌처럼 주어진 것이라면서 “자유는 선고된 것.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실존적 인간의 개념이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비록 내적 근거도 없이 실 끊어진 연처럼 고독하게 세계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세계를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존재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참된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숙명적인 비합리와 부조리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한다. 곧 도로 굴러 내릴 것을 알면서도 무거운 바위를 언덕 위로 끌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인간은 불굴의 인내로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존의 윤리는 현실의 어떤 윤리보다 근원적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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