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God
지배적인 특정 종교가 없는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가 생활에 특별히 큰 영향을 준다는 느낌이 없다. 그러나 종교의 의미를 넓혀 생활양식이나 세계관으로 이해하면 어느 사회든 종교적 심성이 없는 곳은 없다. 추석과 설에 차례를 지내는 우리 사회의 풍습도 조상을 숭배하는 일종의 종교로 볼 수 있다.
종교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면 아직도 세계의 주요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는 중동이나 발칸의 쟁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20세기에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던 발칸의 경우 역사적으로 형성된 세 가지 종교【동방정교, 이슬람교, 로마 가톨릭교】가 혼재되어 있고 민족 갈등에도 종교적 요소가 깊이 작용하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낡은 종교를 가지고 싸우느냐고 조롱한다면, 외세가 우리나라를 정복하고 추석이나 설을 쇠지 말라고 강요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교 구역의 옥외식당에서 그리스도교도들이 돼지고기를 우적우적 씹고 있다면 이슬람교도들의 기분이 어떨까? 혹은 신 이외의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그리스도교 구역에서 이슬람교의 무아딘(mu'addin)이 하루에 다섯 차례씩 미나레트(minaret)에 올라가 큰 소리로 기도 시간을 알린다면 그리스도교도들의 마음이 어떨까?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종교는 단지 사제들과 교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하나의 생활양식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특정한 세계관이다. 그러나 동양의 경우에는 종교적 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넓은 의미의 종교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신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종교에는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처럼 강력한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신이 없으면 계율도 없고 계율이 없으면 종교가 생활에 밀착되지 못한다. 불교의 경우 현재는 부처가 일종의 신처럼 섬겨지지만 원래 부처는 불교의 창시자일뿐 신이 아니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메시아는 구세주라는 뜻이니까 ‘신의 자격’이 충분하지만 부처는 ‘깨달은 자’라는 뜻이므로 스승은 될지언정 신은 아니었다. 그런 탓에 초기불교에서는 불상을 만들어 신처럼 섬기는 게 금지되었다. 그림에서 굳이 부처의 모습을 표현해야 할 때는 빈 의자나 발 모양을 그려 부처의 상징으로 나타내곤 했다. 불상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헬레니즘 시대에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간다라 미술부터다.
체계화된 종교는 아니지만 동아시아의 역사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유교 사상에는 아예 신과 비슷한 존재조차 없었다. 유교적 세계관의 수직적 질서 맨 꼭대기에 있는 것은 천자라고 불리던 중국의 황제였다. 기원전 1세기의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 BC 145~85)은 하늘에 고정된 북극성을 천자에 비유하고 그 주변을 매일 한 바퀴씩 도는 스물여덟 개의 별자리를 제후들【한반도의 왕은 제후로 취급되었다】에 비유하는 유교적 국제질서를 제시했다.
천자는 하늘의 이치와 명령, 즉 천리(天理)와 천명(天命)을 지상에서 실현하는 지고의 존재였다. 이런 정교일치(政敎一致) 체제는 진 시황제(秦 始皇帝, BC 259~210)가 중국 대륙을 통일한 기원전 3세기부터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 제국이 무너지는 20세기 초까지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 고대에는 이 체제가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룰 수 있었으므로 사회를 통합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될수록 이러한 경직된 체제는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통치기구가 관료제화되어 지배집단의 무능과 부패를 낳았다. 15세기까지 경제적ㆍ문화적으로 서양에 앞섰던 중국이 그 뒤부터 힘을 잃고 서양 세력의 침탈을 당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동양과 달리 유럽의 종교에는 처음부터 신의 개념이 확고했다. 신은 세계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의 사후에 심판을 내리는 절대자였다. 신이 존재했기에 지상에는 절대 군주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럽의 중세에는 각국 군주들이 세속의 영역을 통치하면서도 교회의 제어를 받는 독특한 분권적 질서가 유지되었다. 로마의 교황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임명하는 관습이 그 질서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중세를 지배한 교회가 종교개혁으로 무너지자 군주들은 즉각 자기 왕국의 절대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절대주의 시대에는 군주들이 교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으므로 서로 부국강병을 도모하면서 다투었고, 이 진통이 새로운 통합적 질서를 낳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다(→ 그리스도교).
신의 존재와 관련된 동·서양의 종교적 차이는 큰 역사만이 아니라 작은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이 없다는 것은 곧 내세관(來世觀)이 없다는 뜻이다.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일찍부터 현실적인 사고가 지배했다. 초기 그리스 철학이 자연철학으로 발전할 때 중국의 제자백가들은 인간과 국가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를 물었던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유물론).
서양의 종교에 의하면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은 죽은 뒤에 신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으므로 현세에서의 삶은 비교적 중시하지 않았다. 현세는 오히려 내세의 영원한 삶을 위한 시험장과 같은 역할이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종교적 가치관이 크게 약화되어 현실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신의 개념은 변하지 않았다. 동양의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종말론이 서양의 종교에 있는 이유도 신의 위상이 여전히 튼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신은 인간이 창조해 낸 최고의 지적 발명품으로 남아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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