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
植民史觀
한 나라를 정복하려면 총칼의 힘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정복한 나라를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는 무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식민지 지배는 언제나 물리력만이 아닌 정신적인 측면의 공작이 병행되었다.
고려 말 120년간의 몽골 지배 시기보다도 훨씬 짧은 기간이지만 훨씬 더 혹독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한반도를 완전히 복속시키려면 무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력에만 의존하는 통치는 장기화될 수도 없고 정당화될 수도 없다. 그래서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측면을 지배하고자 했는데, 그 일환으로 실행된 계획이 바로 식민사관의 날조였다.
민족의 정신을 짓밟고 정기를 빼놓으려면 그 민족의 역사를 조작하고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 주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과거의 역사가 초라했다면 지금 식민지 상태가 된 것은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식민지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서는 그런 문화적 전략이 가장 중요했다.
식민사관은 한민족의 특성을 일제의 뜻에 맞도록 재규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식민사관에 의하면 한민족은 세 가지 민족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타율성이다. 이른바 반도(半島) 사관이라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반도이므로 중국 같은 대륙과도 다르고 일본 같은 섬과도 다른 어중간한 민족성을 가졌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한민족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며, 중국이나 일본 같은 외재적 요인에 의해서 민족의 운명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정학적(地政學的) 요인은 한 사회와 민족의 성격을 진단할 수는 있어도 운명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한반도처럼 반도 국가인 고대 로마가 지중해의 패자가 된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식민사관의 둘째는 정체성(停滯性)이다. 이는 경제적 측면을 지적한 것으로, 조선사회는 봉건시대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자본주의 발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근거로 삼아 일본은 한반도에 전기와 철도를 부설하고 자본주의적 경제제도를 이식한 일을 ‘식민지적 발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물론 일본의 본래 의도는 한반도를 발전시키는 데 있지 않고 대륙 침략과 이른바 ‘대동아(大東亞) 경영’을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데 있었으나, 적어도 일본에 의해 한반도가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적 맹아가 존재했으므로 독자적인 자본주의화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가정일 뿐이다. 일본의 침략적 의도를 지적하는 것과 그 현실적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식민사관의 셋째는 가장 악명 높은 일체성이다. 한민족과 일본인은 뿌리가 같다는 주장이다. 얼핏 생각하면 식민지를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같지만 그것은 한반도의 완전한 병합을 위해 고안된 이데올로기였다. 일본 학자들이 최근까지도 열심히 주장하다가 사실무근임이 밝혀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 그 대표적인 예다. 과거에 한반도 남부 지역을 일본이 지배했다는 주장인데, 이것은 광개토왕 비문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지금은 일본 역사학계에서조차 학설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 고대 3국이 일본에 정치적·문화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는데도 일본 내 일부 극우파들은 이 주장을 여전히 신봉하고 있다.
인용
'어휘놀이터 > 개념어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념어 사전 - 신분(Status) (0) | 2021.12.18 |
---|---|
개념어 사전 - 신(God) (0) | 2021.12.18 |
개념어 사전 - 소외(Alienation) (0) | 2021.12.18 |
개념어 사전 - 소수자(Minority) (0) | 2021.12.18 |
개념어 사전 - 성서(Bible) (0) | 2021.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