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물과 코로나가 바꾼 시험일 아침의 풍경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2021학년도 임용시험일이 밝았다. 이쯤 되면 긴장이 되어 덜덜 떨릴 만한 데도 이상하게 떨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실력이 출중하기에, 또는 여러 번 임용시험을 봤기에 그렇다고 생각하진 마시라. 아마도 새벽 5시에 일어난 만큼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탓에 긴장도 되지 않은 것이겠지.
▲ 임용일의 기온. 아침엔 좀 선선하지만 낮부턴 더워진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희희락락
올핸 시험을 보기 전에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예전에 임용을 준비할 땐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도 있고 시험을 본다는 것도 여러 사람들이 알아 임용시험이 다가오면 전화가 오기도 했고 잘 보라는 의미로 선물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3년 전에 다시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는 같이 공부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임용시험을 본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용히 임용고사일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핸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으니 오랜만에 가슴 뭉클한 기분마저 들더라. 그만큼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턴 많이 고립되어 있었다는 얘기겠지.
작년부터 김형술 교수 스터디에 16학번 아이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겨울방학이건 여름방학이건 상관없이 교수님은 매주 2번씩 스터디를 진행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었음에도 이 아이들은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고 4학년 학기 중에 스터디는 매주 한 번씩 진행되었음에도 빠지지 않고 그 시간을 메웠다. 그렇게 2년 간 스터디를 진행해온 것이고 그 시간을 통해 실력도 일취월장한 것이다. 그 아이들을 보며 나 또한 자극이 됐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바로 그와 같은 심경을 담아 ‘한문을 맘껏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는 글을 썼던 것이다.
▲ 올해 함께 공부한 아이들과 교수님. 10월에 함께 회식을했다.
11월 17일은 스터디 마지막 시간이었다. 임용시험이 있는 기간까지 스터디를 진행할 수 있는 김형술 교수의 깡다구도 대단하지만 이에 대해 누구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은 아이들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역시 그 교수에, 그 제자들인가^^;; 시험은 코 앞에 다가왔지만 스터디 또한 삶의 활력소였기에 맘을 편안히 먹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스터디 좌장인 아이가 나에게 핫팩 2개를 선물로 주더라. 이미 거기엔 쪽지 같은 것도 달려 있었고 그 쪽지엔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세상에 이런 선물은 처음이다. 시험을 보지 않는 사람이 시험을 보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주는 경우는 봤어도, 같은 입장에 있는데 스터디원들 전체에게 핫팩을 챙겨주고 모두 쪽지까지 써줄 정도라니. 이걸 준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돈도 돈이지만, 그보단 쪽지를 모두에게 쓰려 보낸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한문과에선 ‘음덕(蔭德)’이란 가치를 중시한다. 손숙오가 머리 둘 달린 뱀을 보고 남들이 해를 입을까봐 죽인 이야기나 홍서봉의 어머니가 썩은 고기를 모두 사서 마당에 묻은 이야기처럼 남 몰래 베푼 은덕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다. 거기엔 남에게 보답받으려는 마음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그저 그게 옳은 일이기에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서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스터디장도 이런 선물을 통해 스터디원들에게 음덕(蔭德)을 베푼 셈이다. 아마도 이 선물 덕에 시험일 새벽에 일어났을 때에 조금도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거겠지.
▲ 스터디장이 마음과 정성을 담아 모두에게 선물을 줬다. 그 마음이 정말 따뜻하다.
시험장으로 향하는 길이 만만치 않네
아침으론 어제 사온 컵라면과 김밥을 먹었고 출발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7시 30분부터 교실 입실이 가능하기 때문에 작년엔 6시 50분쯤 숙소에서 나왔었지만 올핸 40분 정도 걸어가야 된다는 사실 때문에 6시 35분에 숙소에서 나왔다.
▲ 아침으로 컵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그제 비가 온 후로 깜짝 추위가 찾아왔지만 아침도 든든히 먹고 옷도 따뜻하게 입고 와서인지 하나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위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지만 싫지 않은 느낌이다. 이렇게 임용시험을 볼 때가 아니면 새벽 거리를 어느 때 쏘다닐 것인가? 그때 잠시 갈등을 하기도 했다. 걷기엔 조금 먼 거리이니 택시를 탈까? 그냥 걸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일찍 나온 만큼 그리고 새벽공기가 나쁘지 않은 만큼 그냥 걷기로 했다.
▲ 오늘 다음 지도가 알려준 길은 수도산을 통과하는 경로다.
보통은 다음 지도를 확인하며 알려주는 길을 통해 갈 때 대로변을 중심으로 알려주게 마련인데, 이번엔 매우 특이하게도 좁은 길로 가는 길을 알려주더라. 당연히 다음 지도에서 알려주는 경로만을 믿고 길을 따라 가는데 갑자기 언덕을 올라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되돌아갈 순 없기에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길이 뚝 끊기더니 철제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 여기는 바로 개인 사유지였던 것이고, 가정집이었던 것이다. 다음 지도상에선 이 길로 가는 게 맞기에 어쩔 수 없이 야심한 아침에 남의 집 철제 울타리를 넘어가는 충분히 오해를 살 법한 행동을 해야만 했다. 걱정 마셔요. 저는 훔치러 온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길이니까요~ 그곳을 넘으니 바로 언덕길이 계속 이어졌고 그 이후론 콘크리트가 깔린 보통길이 이어졌다.
▲ 새벽 거닐을 걸어 고사장으로 간다. 새벽 바람 선선해서 걷기에 정말 좋다.
코로나가 바꾼 입실의 풍경
7시 7분 정도에 학교에 도착했다. 40분이 걸린다고 해서 숙소에서 일찍 나온 것인데, 32분만에 도착한 것이다. 이미 학교 앞엔 수험생을 내려주는 차들이 있었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수험생들도 여럿 보였다. 학교는 벌써부터 시험 준비에 들어갔는지 여기저기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더라.
▲ 드디어 고사장 도착. 여기에 오고 나니 실감이 난다.
올핸 코로나가 휩쓴 시기에 임용고사가 치루어진다. 그러니 예전에 보지 못한 풍경이 교문부터 펼쳐지고 있었다. 작년만 해도 교문엔 사람이 서 있지 않았고 건물 입구에만 사람이 있어 수험표를 확인하는 과정만을 거쳤지만 올핸 교문부터 사람이 서서 수험표를 확인하고 수험생이 아닌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그곳을 통과하니 교문에 서 있던 교사는 “7시 10분부터 입실 가능합니다.”라고 알려주더라.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엔 신발에 껴서 신을 수 있는 덧신이 준비되어 있어 수험생들은 덧신을 신어야 했고 그곳을 들어서면 체온기를 통해 체온을 재야 했다. 만약 발열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걸러져 시험을 못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광경이 예년엔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코로나가 휩쓴 올해 임용 시험만의 풍경이다.
한문 고사장은 2층에 마련되어 있어 바로 올라왔고 고사장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오지 않은 고사장을 한바퀴 훑어보며 내 자리에 앉았다. 앉고 나선 바로 공부를 하지 않고 그 순간의 심경을 메모장에 남겼다.
7시 7분: 벌써 학교에 도착했다. 32분 만에 도착한 거다. 벌써 학교는 준비에 들어갔고 입실도 가능하더라. 코로나 시대에 맞게 열상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체크를 마친 사람에겐 팔목에 팔찌를 채워준다. 마치 롯데월드에 갈 때 자유이용권을 끊은 사람에게 팔찌를 채워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여긴 임용월드쯤 되려나. 신나게 놀아보자. 오는 길은 적당히 선선해서 걷는 데 딱 좋았다.
▲ 어코로나가 바꾼 입실하기까지의 풍경. 손에 팔찌를 차니 여기가 놀이공원인 거 같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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