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어설픈 기대보다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담다
시의 작자 정민교(鄭敏僑)는 1725년(영조 1년)에 평안도 감사 밑에서 해세를 감독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그때 연해 고을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굶주리는 정경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웠다. 이 시는 당시 목도한 사실을 잡아서 쓴 것이다.
중세사회에서 민(民) 일반은 국가에 대해 역(役)을 의무로 지고 있었다. 역도 갖가지 명목이 있었지만 군역(軍役)이 그중에 대종(大宗)을 이루었다. 조선왕조는 16세에서 60세까지의 남성을 정(丁)으로 파악하여, 여기 해당하는 남자는 모두 군정(軍丁)이 되었다. 제목이 그렇듯 이 시는 군정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작중에서처럼 갓 태어난 아기가 군정으로 뽑히는 사례도 허다했다. 황구첨정(黃口簽丁)이 그것이다. 유복자로 태어난 귀한 아기가 제 어미의 등에 업혀 점호를 받으러 갔다가 마침내 죽었다. 이 어처구니없이 기막힌 사연은 군역의 제도가 빚은 참극이다.
이처럼 비극적인 상황을 설정한 작품은, “북풍이 소슬하고 해는 서산에 졌는데 /외딴 마을 한 아낙네 하늘을 부르며 통곡한다[朔風蕭瑟塞日落 孤村有女呼天哭]”라고 서두에서부터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 “하늘을 불러 통곡하지 마오[莫呼天哭]”라고 말한 다음, “아무래도 하루빨리 황천길로 떠나가서[早從黃泉去]” 내세의 행복을 찾으라 한다. 물론 부조리한 제도의 개혁을 내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절망의 소리지만 어설픈 기대나 체념으로 호도한 것보다는 현실의 한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 시에서 “하늘을 불러 통곡한다[呼天哭]”가 수미를 관통하는바, 하늘에 대한 회의의 감정이 드디어 노출된 점이 흥미롭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21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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