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유민의 속사정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다
이 시는 유민을 전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작중의 서술자(=시인)는 갈재를 넘어 길을 가던 도중에 유민 행렬을 만나는데 그중 한 가족을 서술대상으로 잡고 있다. 늘그막에 이른 부부와 등에 업힌 손자 아기, 이렇게 세 식구다. 대개 그렇듯 이들 유민과 서술자 사이의 대화로 시는 엮인다. 내용 또한 대개 그렇듯 흉년에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못 이겨 정든 땅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삶의 구체성을 담으면서 나름의 성격을 가진 인물로 형상화를 하고 있다.
이 일가는 지난 보릿고개에 자부가 젖먹이를 남겨놓고 굶어죽었다. “죽어간 사람은 참으로 편안하지요 / 남아 있는 어린 것 어떻게 키워낼지[死者良已安 生者難終育]”하는 말이 실로 눈물겹다. 이 아기의 아버지는 수자리를 살러 갔는데 그 할아버지도 군적에 있어 신포를 바쳐야 하며, 아기까지 벌써 신포를 내야 하는 존재로 올라가 있다. 끓여먹을 양식도 떨어진 터에 신포의 독책을 면하자면 떠나가지 않고 달리 길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동쪽 이웃 부잣집은 / 사람사람 섬섬옥수 고운 손[東隣有富屋 百指垂纖白]”으로 대비하여 지주계급은 도리어 부역에서 면제되는 모순을 적시한다. 한편으로 주인공은 고향을 떠나올 때 텃밭에 보리나마 심지 못한 일을 못내 안타까워한다. 물론 자신은 구처(區處) 없이 나섰지만 이웃집을 생각해서다. 그리고 그는 죽을 지경에도 도둑질은 않겠다고 다짐한다. 떠돌이로 나선 신세 실로 절박한 인생이다. 그럼에도 이 유민은 충후(忠厚)한 마음을 잃지 않은 것이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192쪽
1 | 사람 낯빛이 아닌 굶주린 남자와 여자를 보다 |
2 | 가뭄에 죽은 아내, 남은 어린 자식과 자신은 군적에 편입되다 |
3 | 밭이 있음에도 농사도 짓지 못하고 유리걸식해야만 하네 |
4 | 갈 곳 잃은 기러기와 유리걸식하는 농민의 공통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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