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런 햇볕을 담은 밀양의 성당에서 묵게 되다
밀양을 알게 된 건 전도연, 송강호 주연의 ‘밀양’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였다. 그 영화에서 묘사된 밀양은 좀 비밀스러우며 한적한 마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기에 친근감이 있었던 것이다.
비밀의 햇볕을 담은 고장, 밀양
영화에서 송강호는 “밀양이 어떤 곳이냐꼬요, 아~뭐라케야 되노. 경기가 엉망이고, 여론은 한나라당 도시고, 부산 가깝고… 말씨도 부산말씨고, 인구는 많이 줄었꼬….”라며 밀양을 소개하고. 전도연은 ‘밀양’이란 이름을 풀이하며 “비밀밀[密], 볕양[陽], 비밀의 햇볕(Secret Sunshine)… 좋죠?(실제로는 密‘은 ‘비밀’이 아닌 ‘빽빽하다’라는 뜻으로 풀어야 한단다. ‘볕 잘 드는 고장’이 원래 뜻임)”라고 말한다. 비밀의 햇볕이 스며드는 고장에 비밀을 한아름 안고 드디어 온 것이다. 과연 이곳에서는 어떤 사람여행기를 써나갈 수 있을까.
음식점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성당이 있다는 팻말이 보인다. 그 순간 ‘난 왜 지금까지 성당이나 절에서 잘 생각은 하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아무래도 습관은 무의식에 자리 잡아 행동ㆍ생각을 제약하는 게 틀림없다. 과거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기에 무의식적으로 교회만 찾아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그 팻말을 계기로 오늘은 성당에 얘기해 보겠노라고 맘을 먹었다.
밀양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근처에 있는 성당의 위치를 물었다.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더라. 가는 길에 원불교 교당도 보이기에 거기도 들어가 봤다. 그런데 어딜 찾아봐도 교무님은 안 계시더라. 처음으로 원불교란 것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밀양시청 출입구엔 비행기 모양의 장식물이 설치되어 있다. 영남 신공항 문제가 떠오르면서 밀양시의 의지를 보여주려고 설치한 것이리라. 그런데 어제 백지화 발표가 났으니, 어제 시청 직원들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오늘 저녁에 시청 앞에서 촛불 집회가 있을 거란다. 비행기 모양의 장식물 앞에서 높이 드는 촛불은 굳이 무언가를 외치고 성토하지 않더라도 그 의사가 저절로 전달될 것이다. 생각 같아선 나도 어떤 분위기인지 한 번 나와 보고 싶긴 하더라.
신의 권능을 확인할 수 있던 밀양
성당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다. 밀양 시내가 내려 보이는 명당자리다. 중세의 주거공간은 배산임수에 자리하고 있어 높은 고지대를 기피했던 반면, 서양의 경제적 합리주의는 높은 장소를 선호하는 듯하다.
그래서 요즘의 최고가 아파트들은 산을 깎아내고 들어서서 아파트 거주자들만 독점적으로 자연경관과 도시경관을 향유한다.
당시 천주교회가 그 자리에, 그 높이에 건물을 지은 것은 한편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도 불사한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순결한 성도들을 무참히 학살한 조선 왕실과 정부를 능멸하기 위해서였다. 조선 사람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이들 건물은 죽은 자를 기리는 건물이되 산 자의 공간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건물이었고, 도성 안에 있으면서 왕궁을 위압하는 건물이었다. 모양이나 재질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그 ‘위치와 방향’이 충격적이었다.
-『서울은 깊다』, 전우용, 돌베개, 2008, PP 154~155
위의 글에서 보다시피 성당이 높은 곳에 터 잡게 된 데엔 조선왕조의 서학 기피증이 직접적인 영향이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사대문 밖 평지에 자리하지 않고 높은 산에 자리하고 있다는 데서 높은 곳, 모두에게 과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서양의 이성주의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명동성당이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제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듯이 여기도 밀양시청을 내려다보며 신의 권능으로 제압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타종교에 포용적인 종교’라는 등식이 깨지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공사 중이어서 한참이나 헤맸다. 성당의 규모는 꽤 컸다.
처음 보이는 건물에 들어가니 어떤 분이 일을 하고 계신다. 그분에게 이야기했더니 사무실에 이야기해본다며 따라오라신다. 사무실에서 이야기하니 처음엔 절차에 따라 이것저것 물었고 곧 방을 배정해줄 듯했다. 큰 성당이기에 신도들이 묵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단다.
그런데 내가 천주교 신자가 아닌 걸 알게 되자 행동이 갑자기 달라졌다. 난처하다는 듯,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신다. 신부님과의 통화내용을 듣고 있으니, 영 반응이 찝찝했다. 이미 주민등록증도 보여주고 여행의 이유도 말했음에도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불미스런 일이 많다는 둥, 어쨌다는 둥 말씀하시며 신원(身元)이 확실치 않아 어렵겠다는 답변을 주셨다.
곧바로 신부님이 사무실로 오셔서 사정을 다시 이야기해야 했다. 그러자 좀 난처하다는 듯 한참이나 가만히 있으신다. 그러더니 성당 관리인들이 쉬는 공간에서 잘 수는 있는데 추울 거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나야 허락만 해준다면 어떤 상황이든 무조건 오케이였기에 “그곳이라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라고 선뜻 대답했던 것이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잠자리가 정해져서 다행이다. 그런데 궁금한 점은 ‘천주교인이 아니라는 말에, 왜 태도가 급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하는 점이다. ‘기독교=타종교에 배타적인 종교 / 천주교=타종교에 포용적인 종교’라는 인식이 여태껏 있었는데, 막상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니 실망스러웠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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