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살면 친구, 가까이 살면 원수
수산에서 제천으로 가는 길에 청풍호가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제천시내로 나오게 되었지만, 그 덕에 청풍호를 보게 된 셈이다. 불행과 행복은 이처럼 한 끗 차이로 교차한다.
청풍호? 충주호?
버스를 타고 지나며 보는 청풍호의 야경은 정말 멋졌다. 이곳을 보지 않고 제천을 지나쳤다면 꽤나 후회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장관(壯觀)을 봤기 때문에 어리는 감정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천 시내로 버스를 타고 나가는 그 상황이 전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어찌 청풍호의 가슴 벅찬 야경을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찜질방에서 TV를 보며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알게 됐다. 그건 다름 아닌 청풍호에 대한 얘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기 전엔 충추호와 청풍호가 다른 호수인 줄만 알았다. 아무래도 외지인으로 얼핏 그런 명칭들만 들어봤기 때문에 그리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TV를 보면서 그게 아니란 걸 확실히 알게 됐다. 이곳은 남한강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인데, 같은 호수를 두고 제천시와 충주시가 각각 부르는 이름이 달랐던 것이다. 제천시는 청풍호라 부르고 있었고 충주시는 충주호라 부르고 있었다. 이건 마치 동해를 두고 우리나라에선 ‘동해’라 부르고 일본에선 ‘일본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질을 하나인데 이해관계에 따라 명칭은 둘로 나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명칭을 통일하잔 논의가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긴 한가 보다. 아무래도 명칭을 통일하여 홍보를 하는 것이 나처럼 잘 몰라서 두 개의 호수 이름인 줄 착각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얼마 전엔 제천시민들이 ‘청풍호’로 명칭을 통일하자며 충주에서 데모를 하기도 했단다. ‘멀리 살면 친구요, 가까이 살면 원수’라더니 충주와 제천이 꼭 그런 꼴이다.
벚꽃축제, 두 지역의 아귀다툼
이번엔 벚꽃축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고 방송에 나온다. 제천시 벚꽃축제는 15회라는 역사성이 있는 축제였고 충주시의 벚꽃축제는 올해가 처음인 신생 축제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충주시와 제천시가 벚꽃축제를 같은 날 열기로 한 것이다. 이에 제천시민들은 발끈했다. 아무래도 축제인파가 나뉘면 벚꽃축제를 장시간 개최해온 제천시의 경제적 타격과 함께 이미지 타격도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충주시는 이미 결정된 사안이니 올해는 그냥 진행하고 내년엔 협의하자고 밀어붙였다.
내가 지금 제천시에 있기 때문인지, 왠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땐 울분이 치밀며 제천시민들이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을 들었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이 순간 충주에 있었다면 전혀 반대의 생각을 했을 테니 말이다. 이런 걸 보면 두 도시 중 어느 도시가 더 힘이 센지도 알 수 있다. 찜질방에서 TV를 통해 충북의 도시들의 힘의 구도를 알게 되었다.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년 사람여행 - 75. 우리네 어머니들의 마음 (0) | 2021.02.17 |
---|---|
2011년 사람여행 - 74. 우리네 아버지들의 서글픈 자화상 (0) | 2021.02.17 |
2011년 사람여행 - 72. 도보여행과 관광여행 (0) | 2021.02.17 |
2011년 사람여행 - 71. 여행 중 신세를 지려는 이유와 사람에 대한 예의 (0) | 2021.02.17 |
2011년 사람여행 - 70. 여행의 룰을 깬 것에 대한 비겁한 변명[제천 수산⇒충주 살미](11.04.15.금) (0) | 2021.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