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신세를 지려는 이유와 사람에 대한 예의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어제 교회에서 거부당하자 화를 냈는데, ‘몸이 안 좋아 과민반응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도 들 수 있다. 물론 그런 의문은 합당하다. 몸이 안 좋으면 신경은 날카로워지는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하도록 하겠다.
왜 부담을 주면서까지 신세지려 하는가?
잘 것을 부탁한다고 해서 모두 다 받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찌 모르는 사람을 이야기 몇 마디 듣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지금처럼 ‘사람이 가장 무서운 세상’에선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현실을 알기 때문에 부탁을 할 때 망설여지고 혹 받아준다 해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세를 지려 하는 건 왜인가?
돈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듭니다. 하루에 30킬로미터를 걷고 나면 분명 지치고 피곤하고 배가 고플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끼니를 해결할 식당과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을 테고, 다음 날 다시 일어나 두 발로 걷기 시작할 테죠. 그렇게 하는 데 다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끼니와 잠자리를 제공해 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겠지요. 당신은 겸손해지는 법, 그리고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비노바 바베, 『버리고, 행복하라』, 13쪽
위에 인용한 구절처럼 사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으로 치장하는 여행은 거만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이 먹고 마시고 자며 맘껏 즐길 수 있으니, 그 사람은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만 보게 되는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는 딴 게 아니라, 사람과 관계 맺지 못하고 자연과 관계 맺지 못하면서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는 마음인 것이다. 이런 생각이 극단으로 치우치면,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면서 사람을 사귄다고 착각하게 되며, 자연을 파헤치면서 정비사업을 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바로 이와같이 착각의 늪에 빠지는 여행을 하고 싶진 않았다. 돈이 아닌 사람과 만나고 싶었고 자연을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아 부탁이 거절당할 땐 미안한 마음으로 물러섰던 것이다. 하지만 어제는 상황이 달랐다.
사람에 대한 예의
사모님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없었고 쫓아내기에 바빴다. 나의 이야기는 애초부터 들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사정이 어떤지는 상관없이 이미 짜놓은 방식대로 처리하겠다는 뜻만 보였다. 나의 힘든 표정과는 달리 어떤 미안한 마음, 어떤 측은지심(惻隱之心)도 없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하는 걸 보곤 기가 질렸다. 어떻게 보면 말하는 방식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진심이 없다는 거였다. 이별한 친구 앞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위로해주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이론가들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이 일상에서 직접 대화를 나눌 경우,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언어는 다만 20% 이하 정도만 사용한다고 한다. 언어 외에도 눈빛ㆍ표정ㆍ차림새ㆍ동작 등에 의존해서 80% 이상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144쪽
인용된 구절과 함께 메러비안 법칙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메러비안 법칙(Law of Mehrabian)에선 ‘목소리는 38%, 표정은 30%, 태도는 20%, 몸짓이 5%의 영향을 끼치지만, 언어는 겨우 7%의 비중밖에는 차지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두 예화를 통해 언어가 실제 의사소통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별로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같은 말을 할지라도, 동작이나 표정이 어떠냐에 따라 말의 내용은 180°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표정이나 동작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건 아무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양 꾸미려 해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꾸미려 하면 할수록 더욱 가식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바로 『논어(論語)』 「학이(學而)」 3에 나오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이런 경우다. 사모님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계셨지만 목소리나 표정 등에선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참담한 기분이 들었고 화가 난 것이다.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년 사람여행 - 73. 멀리 살면 친구, 가까이 살면 원수 (0) | 2021.02.17 |
---|---|
2011년 사람여행 - 72. 도보여행과 관광여행 (0) | 2021.02.17 |
2011년 사람여행 - 70. 여행의 룰을 깬 것에 대한 비겁한 변명[제천 수산⇒충주 살미](11.04.15.금) (0) | 2021.02.17 |
2011년 사람여행 - 69. 사람여행 중에 닥친 최대의 위기 (0) | 2021.02.17 |
2011년 사람여행 - 6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오지 말거라 (0) | 2021.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