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듣고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에 대해
오늘 같은 날은 가만히 있고 싶다.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비 오는 날엔 무언가 하지 않아도 좋다. 내리는 빗소리를 가락 삼아 마루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인가?
권력욕을 계단에 오르는 것으로 비유하다
그건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남에게 떵떵거릴 지위에 올라 있어도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매우 어긋나는 발언인 셈인데, 왜 그런지 『열하일기(熱河日記)』 「일신수필(馹汛隨筆)」를 보며 생각해보자.
한참 동안 서서 바라보다가 내려오려 하니 아무도 먼저 내려가려는 사람이 없다. 벽돌 쌓은 층계가 하도 높고 험해서 내려다보기만 해도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하인들이 부축하려 하나 몸을 돌릴 공간이 없어서 일이 매우 급하게 되었다. 대개 올라갈 때엔 앞만 보고 층계 하나하나를 밟고 올라갔기 때문에 그 위험함을 몰랐는데, 급기야 내려오려고 눈을 한번 들어 밑을 내려다보니 저절로 현기증이 일어나니 그 허물은 눈에 있는 것이다.
眺望良久, 欲下而無敢先下者. 甎級岌嶪, 俯視莫不戰掉, 下隷扶擁, 無回旋之地, 勢甚良貝. 余從西級下立於地, 仰視臺上諸人, 皆兢兢莫知所爲. 蓋上臺時, 拾級而登, 故不知其危. 欲還下, 則一擧目而臨不測, 所以生眩, 其崇在目也.
벼슬살이도 이와 같아서 바야흐로 위로 자꾸만 올라갈 때엔 한 계단이라도 남에게 뒤떨어질세라 혹은 남을 밀어젖히면서 앞을 다툰다. 그러다가 마침내 몸이 높은 곳에 이르면 그제야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외롭고 위태로워서 앞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길이 없고, 뒤로는 천 길이나 되는 절벽이어서 다시 올라갈 의욕이 사라질 뿐 아니라 내려오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법이다.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그렇다.
仕宦者, 亦若是也. 方其推遷也, 一階半級, 恐後於人, 或擠排爭先. 及致身崇高, 懾心孤危. 進無一步, 退有千仞, 望絶攀援, 欲下不能. 千古皆然.
연암(燕巖)은 삼종형(三從兄)을 따라 청나라에 가게 됐고 여러 곳을 구경했다. 그러던 중 층계를 밟아 높은 곳으로 맹렬히 오르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들이 높은 곳에 오를 땐 자신이 먼저 올라가려 애쓰고 앞선 사람을 밀치며 앞만 보고 나갔다. 하지만 막상 내려갈 때가 되어 비로소 뒤를 돌아보니 고도가 만만치 않음을 알고 다리가 후들거려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높은 곳에 오르려는 마음을 연암은 벼슬에 접목시켜 사고를 확장하고 있다. 벼슬을 하게 되면 더 높은 직급으로 오르려 누구 할 것 없이 아등바등하지만 그렇게 높은 직급에 오르고 나선 마음이 안정되고 푸근해지기보다 더욱 불안해지고 겁에 질리게 된다는 것이다. 최고의 자리지만 언제든 ‘뒤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견제해야 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걱정해야 한다. 그렇게 욕망의 노예가 된 자신이 싫어져서 벼슬에서 내려오려 할지라도 내려가는 건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가능하기에 ‘잘 되지 않는 법’이라고 못 박고 있다. 한 번 벼슬의 단맛에 빠진 이상 그 루트에서 벗어나지도, 그렇다고 오르는 것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니 권력욕에 취하면 취할수록 더욱 크게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성공이라 할 수 있는 것엔 권력욕만 있는 게 아니라, 재물욕도 있다. 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돈은 자신을 더욱 옥죌 것이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할 것이다.
성공의 기준, 마음에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가?
이처럼 권력욕이든, 돈이든 성취하면 성취할수록 오히려 마음의 여유를 빼앗긴다는 점에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저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억만 장자가 되어 그 돈에 치이고 사느라 비 내리는 날의 운치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팍팍’한 삶을 사는 것과 돈은 비록 많진 않으나 빗소리를 즐기며 사람과 한껏 어울려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을 사는 것 중 어느 게 더 매력적인 삶일까?
하지만 이런 여유를 운운하면서도, 그렇게 맘 편안하게 즐기고만 있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본다. 누군가 재촉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빗소리를 즐기기보다 빗속을 뚫고 가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게 내 모습이다. 무언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아무 것도 안 할 자유가 있음에도 늘 무언가 부산히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그건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고, 무언가에 대한 조바심이 있기 때문이다. 참 서글프다. 막상 여행을 떠나서도 예전에 하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난 아직도 멀고도 멀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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