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신성
Fetishism
인간의 존엄성이 당연시되는 현대 사회지만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항상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정부조직의 하나인 교육인적자원부(敎育人的資源部)라는 부서의 명칭은 인간을 자원으로 분류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 군대나 학교에서는 인간이 정해진 병력이나 인원을 채우는 양적 개념으로 규정된다. 지하철의 공익요원에게 출근과 퇴근 시간에 만나는 인간이란 등을 떠밀어 지하철에 태워야 하는 짐일 뿐이다.
질적으로 대우받아야 마땅한 인간이 양적 ‘덩어리’로 취급되는 현상에는 자본주의 특유의 물신성(物神性)이 깔려 있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제기한 물신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전도 현상의 하나다.
인류 역사에서 경제적 생산은 언제나 있었으나 상품의 개념은 자본주의 단계에서 처음 출현했다. 물론 물건을 만들어 판다는 관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봉건 사회의 수공업적 생산에서도 직조공(織造工)은 자신이 짠 피륙을 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그는 피륙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생산수단과 자기 노동의 생산물을 자신이 직접 소유했다.
그와 달리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자본가가 소유하며, 노동자는 자본가에게서 임금을 받고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의 원리다. 과거의 생산양식과는 달리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자가 자신의 생산물을 소유하거나 판매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생산자들 간의 사회적 관계는 상품의 관계로 치환된다. 인간관계가 맺어져야 할 자리에 상품이나 화폐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상품은 마치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것처럼 서로 교환되고 그것들끼리 관계를 형성한다. 이것은 인간이 창조해낸 신의 존재가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것과 같다. 그런 전도적 현상을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상품의 물신성(物神性) 혹은 물신숭배(物神崇拜)라고 부른다.
물신성은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화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품이면서 동시에 다른 상품들의 교환가치를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상품화폐, 자본의 과정이 진행되면서 화폐는 단순히 가치를 표현하는 매개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상품들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이것이 화폐의 물신성이다. 자본가가 본래 사용가치가 거의 없는 화폐를 수전노(守錢奴)처럼 축장(蓄藏)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자본가는 합리적인 수전노이고 수전노는 미친 자본가 -『자본론』”라고 말했다.
정신의학에서는 물신성이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이성의 옷이나 소유물에서 성적 만족을 느끼는 질환을 가리켜 페티시즘(fetishism)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아닌 물건에 집착한다는 점에서는 자본주의의 물신성과 동일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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