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
Sturm und Drang
예술이 시대를 선도하는 이유는 이성보다 감성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냉철한 분석보다는 예리한 직관을 바탕으로 하므로 철학이나 사회과학보다 현실과 연관되는 정도가 약하다. 역사적으로도 예술은 이성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런 예술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18세기 말 독일에서 일어난 질풍노도 운동이다.
독일어의 Sturm은 ‘폭풍’이고, Drang은 ‘압박’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storm and stress로 번역되지만 거의 고유명사화되어 있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도 독일어 원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괴테와 실러 등의 작가들이 주도한 질풍노도 운동은 그때까지 유럽의 지성계를 지배하던 계몽주의의 합리성을 거부하고 자연, 감성, 인간의 개성 등을 찬양했다. 바야흐로 낭만주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 도덕과 감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도덕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못했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을 앞세운 젊음의 반란은 질풍노도처럼 터져나왔다.
질풍노도라는 말은 원래 18세기 말 독일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폰 클링거가 발표한 희곡의 제목이었다. 클링거는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전통을 거부하고 극의 캐릭터에 주안점을 두어 셰익스피어 풍의 인물을 중심으로 극을 구성했다.
그런데 질풍노도 운동이 터지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보적인 역할을 했던 계몽주의가 왜 느닷없이 낡아빠진 틀로 전락해버린 걸까? 이는 당시의 철학적 쟁점과 무관하지 않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근대 철학의 문을 열고 이성의 시대를 개막한 이후 이성은 마치 만능키처럼 모든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탁월한 성능을 자랑했다. 그러나 영국 경험론은 이성의 인식 능력에 제동을 걸었고, 경험론의 난제를 해결한 칸트(Immanuel Kant,1724~1804)도 이성의 근본적인 한계(→ 물자제)는 끝내 어쩌지 못했다.
그 경계선에 선 인물이 프랑스의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였다.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계몽주의자로서의 루소는 이성의 기치를 내걸고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제공했는가 하면, 낭만주의자로서의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에밀』”고 외치며 이성의 고루한 틀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괴테와 실러가 영향을 받은 루소는 물론 낭만주의자인 루소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에서 금기시하는 감정, 특히 열정을 찬양했다. 이것은 당시 지식인 사회에 갓 뿌리를 내린 계몽주의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이성의 시대가 만개하려는 시점에 강력한 도전자를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질풍노도에서 보듯이 낭만주의는 확고한 사상적 뿌리가 없이 폭풍처럼 밀어닥친 일시적인 현상이었으므로 이성을 꺾을 만한 지속적인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질풍노도 운동은 단순히 문예사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기도 했다. 남의 약혼녀 로테(Lotte)를 사모하다가 끝내는 권총 자살로 극적인 최후를 택하는 ‘젊은 베르테르(Werther)’는 당시의 대표적인 ‘신세대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을 모방하여 젊은이들은 유행병처럼 자살병을 앓았고 실제로 자살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 이성의 힘은 막강했다. 칸트(Immanuel Kant,1724~1804)의 선방으로 이성은 낭만주의 신세대의 때 이른 도전을 거뜬히 물리치고 여전히 시대의 아이콘임을 입증했다.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이성의 광기가 드러날 때까지 이성은 학문과 생활에서 계속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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