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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Ⅳ. 말과 길 - 1. 중국 철학에서 도(道)의 의미, 도란 실천적 함축과 실행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Ⅳ. 말과 길 - 1. 중국 철학에서 도(道)의 의미, 도란 실천적 함축과 실행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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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란 실천적 함축과 실행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비록 장자 후학들이 지은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실천적 진리로서의 도의 의미, 즉 기술, 방법, 길이라는 본래적인 도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유명한 윤편(輪扁) 이야기를 직접 읽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천도(天道)편에 실려 있다.

 

 

환공(桓公)이 회당의 높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윤편은 회당 낮은 곳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나무망치와 끌을 밀쳐두고 올라와서 환공에게 물었다. “공께서는 지금 무슨 말들을 읽고 계십니까?”

齊桓公讀書於堂上,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 “敢問公之所讀者, 何言邪?”

 

환공이 성인의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편은 그 성인은 살아 있습니까?”라고 묻자 환공은 그는 죽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윤편은 말했다. “그렇다면 공께서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가 아닙니까?”

公曰: “聖人之言也.” : “聖人在乎?” 公曰: “已死矣.” :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그러자 환공이 말했다. “수레바퀴 깎는 장인인 주제에 네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을 논의하려고 하는가! 만일 네가 자신의 행위를 변명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너는 죽을 것이다.”

桓公曰: “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 有說則可, 無說則死.”

 

그러자 윤편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제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것입니다. 만일 제가 너무 느리게 바퀴를 깎으면, 끌은 미끄러져서 움켜잡히지 않습니다. 만일 너무 빠르면 그것은 꼼짝 못하게 되어 나무에 말려들게 됩니다.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을 손으로 느끼고 그것에 마음으로 대응합니다. 입은 그것을 말로 옮길 수 없고, 거기에는 제가 저의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저의 아들도 또한 제게서 배울 수 없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이 70이 되도록 제가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 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 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輪扁曰: “臣也, 以臣之事觀之, 斲輪徐則甘而不固, 疾則苦而不入. 不徐不疾, 得之於手, 而應於心, 口不能言. 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 是以行七十而老斲輪. 古之人, 與其不可傳也, 死矣. 然則,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환공이라는 제후가 성인(聖人)이라고 숭상되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을 때, 제후에 비해 너무나도 천한 윤편이라는 장인이 글로는 결코 성인이 말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없기에 결국 성인의 경전 자체는 하나의 찌꺼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은 그가 결코 성인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이 수레바퀴와 소통해서 그것에 정통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아들에게 소통 자체를 전할 수가 없듯이, 성인도 그 당시 세계와 소통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는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윤편이 환공에게 한 질문, 당신이 읽고 있는 경전을 쓴 성인이 지금 살아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윤편의 이 질문은 만약 그 성인이 환공과 동시대의 사람이라면 그의 소통의 흔적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차피 환공이라는 군주가 읽고 있는 것은 단순한 수레바퀴 깎는 방법에 대한 책이 아니고, 정치와 통치에 대한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성인이 환공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과는 전혀 다른 조건 속에서 소통했었던 사람이라면, 결국 성인의 글은 환공이 자신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하나의 선입견으로 작용할 뿐이라는 것이다.

 

환공이 읽고 있는 경전에는 천하를 다스리는 도가 실려 있다. 그것은 경전에 나타난 성인이 천하와 소통하면서 얻은 사후적 흔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분명 성인은 실천을 통해서 천하를 다스리는 도를 얻은 사람이다. 이 점에서 성인은 천하를 다스리는 도를 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성인은 지행합일(知行合一)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조우하던 천하와 환공이 조우하고 있던 천하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마치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법과 급류에서 수영하는 법이 다르듯이 말이다. 여기에 바로 사변적으로 이해된 도, 지적으로 이해된 도의 부적절함이 있다. 왜냐하면 도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생생하게 살아서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실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편은 자신이 얻은 수레바퀴 깎는 도를 결코 언어로는 자신의 자식에게조차도 전해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도란 실천적 함축과 실행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윤편의 아들이 윤편이 강의한 수레바퀴 깎는 도에 대해 아무리 유려하고 이론적으로 상세하게 들었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가 실제로 그렇게 깎지 못한다면, 그는 도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는 실천을 함축할 때에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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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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