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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Ⅳ. 말과 길 - 3. “사물들은 우리가 그렇게 불러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物謂之而然].”, 인간의 말과 새소리는 구별되지 않는다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Ⅳ. 말과 길 - 3. “사물들은 우리가 그렇게 불러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物謂之而然].”, 인간의 말과 새소리는 구별되지 않는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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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간의 말과 새소리는 구별되지 않는다

 

 

 

언어에 대한 고찰을 심화하기 위해 장자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도입하고 있다. ‘인간의 말과 새들의 소리는 구별되는가? 구별되지 않는가[其以爲異於鷇音, 亦有辯乎]?’ 일단 이 의문에 대해 장자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고 있다. 아마도 장자는 우리로 하여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숙고하도록 함으로써 언어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파악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장자의 질문에는 가능한 답이 두 가지 있을 수 있다.

첫째, 인간의 말과 새 소리는 구별된다.

둘째, 구별되지 않는다.

사실 인간의 말과 새 소리가 구별된다는 것은 상식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이런 상식적인 주장이 생각만큼이나 그렇게 자명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낯선 언어를 쓰는 사람의 말과 새 소리는 우리에게 무의미한 소리로 현상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나 그 낯선 언어를 쓰는 사람이 자신의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말이나, 또는 어린 새가 자기의 어미에게 지저귈 때의 새 소리는 의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점에서 인간의 말과 새 소리가 구별된다는 상식적인 주장에는, 쓰임[]과 일상성[]을 강조하는 장자의 통찰이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상식적인 주장은 인간과 새가 다르다는 전제된 통념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새 소리가 우리 인간에게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의 쓰임이 새들이 모여 사는 새의 공동체라는 삶의 문맥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낯선 언어를 구사하는 이방인의 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말은 새 소리와 구별되지만, 그 이유는 새 소리가 그 자체로 쓰임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와는 무관한 쓰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말은 새 소리와 구별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말과 새 소리는 모두 각각의 삶의 문맥에서 쓰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자는 지금 쓰임을 강조하는 문맥주의 혹은 상대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말과 새소리를 비유하면서 장자는 우리의 삶이 숙명적으로 유아론적일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일까? 성급한 대답을 자제하고 그의 이야기를 조금더 경청하도록 하자.

 

 

 

 

인용

목차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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