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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Ⅶ. 단독자[獨]의 의미 - 1.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의식’, 소의 물살에서 자유자재 헤엄치던 사람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Ⅶ. 단독자[獨]의 의미 - 1.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의식’, 소의 물살에서 자유자재 헤엄치던 사람

건방진방랑자 2021. 7. 4.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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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의식

 

 

1. 소의 물살에서 자유자재 헤엄치던 사람

 

 

장자는 나는 나다라는 인칭적 자의식을 마음에서 해체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해체를 통해서 우리는 접촉한 타자에 따라 임시적인 자의식을 구성할 수 있는 마음의 유동성, 즉 비인칭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장자에게 고착된 자의식이 자신을 이것이라고 여긴다[自是]’라는 의식형태로 규정될 수 있다면, 임시적이고 유동적인 자의식은 자신을 저것으로 여긴대[自彼]’라는 의식형태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은 이것[]이라고 개념 규정되기에, 자신을 저것으로 여기는[自是] 주체의 의식 상태는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인 상태, 이것=저것인 상태라고 정의될 수 있다. 장자는 이것을 도의 지도리[道樞]라고 정의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것과 저것[是彼]이라는 대대 관계가 해소된 무대[無待]의 상태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스스로를 저것으로 여긴다는 것, 다시 말해 무대의 상태는 결코 주체와 타자변증법적으로 지양되어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주체가 타자와 더불어 공생의 흐름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는 이런 우리의 분석에 대한 증거로서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공자가 여량(呂梁)이라는 곳에 유람을 하였다. 그곳의 폭포수가 삼십 길이나 되었는데, 그 폭포수에서 떨어져 나온 물거품이 사십 리나 튈 정도로 험해서, 자라나 물고기 등도 수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 사나이가 그런 험한 곳을 수영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고, 공자는 그 사람이 어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살하려고 물에 들어간 것이라고 여겼다. 공자는 제자들로 하여금 물길을 따라가서 그 사나이를 건지게 하였다. 그 사나이는 한참이나 물 속에서 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마침내 물에서 나와 젖어 흐트러진 머리로 노래를 부르며 둑 아래를 유유자적하면서 걸어갔다. 공자는 그를 따라가서 물어 보았다.

孔子觀於呂梁, 縣水三十仞, 流沫四十里, 黿鼉魚鱉之所不能游也. 見一丈夫游之, 以爲有苦而欲死也. 使弟子幷流而拯之. 數百步而出, 被發行歌而游於塘下. 孔子從而問焉,

 

나는 그대가 귀신인 줄 알았네. 그러나 지금 보니 자네는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군. 그대에게 수영을 하는 어떤 특이한 방법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네.”

: “吾以子爲鬼, 察子則人也. 請問: 蹈水有道乎?”

 

그 사나이가 대답했다.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나는 과거의 삶의 문맥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현재의 삶의 문맥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부득이한 소통의 흐름에서 제 자신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始乎故, 長乎性, 成乎命].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 속에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 나옵니다. 물의 길을 따라서 그것을 사사롭게 나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 “, 吾無道. 吾始乎故, 長乎性, 成乎命. 與齊俱入, 與汩偕出, 從水之道而不爲私焉. 此吾所以蹈之也.”

 

그러자 공자가 물어 보았다. “과거의 삶의 문맥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의 삶의 문맥에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부득이한 소통의 흐름에서 자신을 완성했기 때문이라고 그대는 말했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孔子曰: “何謂始乎故, 長乎性, 成乎命?”

 

그 사나이가 대답했다. “제가 육지에서 태어나서 육지에 편해진 것이 옛날의 삶의 문맥[]이고, 제가 현재 물에서 자라서 물에 편해진 것이 지금의 삶의 문맥[]이고, 내가 지금의 삶의 문맥에서 어떻게 그렇게 수영을 잘 하는지 모르지만 수영을 잘하는 것이 소통의 부득이한 흐름[]입니다.”

: “吾生於陵而安於陵, 故也; 長於水而安於水, 性也; 不知吾所以然而然, 命也.”

 

 

계곡에는 소()라는 연못이 있다. 소는 폭포와 같은 물줄기가 떨어지는 큰 웅덩이처럼 생긴 연못이다. 그런데 이 소 안에서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설 수가 없다. 왜냐하면 폭포로 떨어졌던 물은 소의 바닥을 타고 강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소에 빠져 중심을 잡고 물살에 말려서 허우적거릴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엄습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다. 위의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이런 죽음이 엄습하는 듯한 공포 분위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우리는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서 이제 소용돌이치는 소의 물살에 따라 자유자재로 수영하는 사람에 대한 공자의 감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리도 자유롭게 수영을 잘 할 수 있었을까? 이 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사사롭게 고착된 자의식을 가지고 물의 흐름을 판단하기보다는, 오히려 매 순간마다 미묘하고 특이하게 변하는 물의 흐름에 맞추어서 자신의 몸동작을 조절했던 인물이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은 마음의 유동성을 회복했기에 타자와 어울리는 임시적 자의식을 구성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용

목차

장자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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