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 의미와 자유 - 2. 자유란 무엇인가?, 자리 양보와 실천 이성 본문

고전/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 의미와 자유 - 2. 자유란 무엇인가?, 자리 양보와 실천 이성

건방진방랑자 2021. 7. 4. 14:59
728x90
반응형

2. 자유란 무엇인가?

 

 

1. 자리 양보와 실천 이성

 

 

온전한 의미에서 자유에 대한 논의는 칸트(I. Kant)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칸트에서부터 자유는 정당하고 깊이있게 다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칸트는 자유를 어떤 상태를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 혹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자유에 대해 접근해간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칸트의 자유 개념이 법정 논리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법정은 기본적으로 어떤 행위의 책임을 묻고 따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살인을 해서 재판을 받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재판정에는 판사ㆍ변호사ㆍ검사가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살인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변호사와 검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변호사는 살인이라는 그 행위가 피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만약 살인 행위가 피고의 자유 의지 외에 다른 원인들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면 그 정도만큼 피고의 책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검사는 그 살인 행위가 피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만약 살인 행위가 피고의 철저한 자유로부터 수행된 것이라면, 피고는 법에서 정한 최고의 형량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변호사는 우호적이고 검사는 악의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데, 사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변호사가 우리에게 너희들은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직업이라면, 검사는 우리에게 너희들은 철저하게 자유로운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어떤 외적이고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어떤 행위를 선택해서 수행하였다면, 우리는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역으로 만일 우리의 어떤 행위가 부자유스럽게 행해진 것이라면, 다시 말해 타율적으로 수행된 것이라면, 우리는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전철 안에서 좌석에 앉아 있는 어떤 청년이 있다고 하자. 몇 역을 지나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전철을 타서 자기 앞에 서 있게 되었다. 여기서 두 가지 경우가 가능해진다. 첫째, 이 청년은 자유롭게 실천 이성의 명령, 너는 젊은 사람으로서 노약자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실천 이성의 말을 듣고 자리를 양보할 수 있다. 둘째, 이 청년은 주변의 눈치 때문에 혹은 할아버지가 야단을 치자 자리를 양보할 수도 있다. 첫째 경우라면 이 청년은 도덕적이라고 칭찬받을 만하다. 왜냐하면 이 경우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는 다른 일체의 외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천 이성에 따라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수행된 것이기 때문에, 그 선행에 대한 책임(=칭찬)은 전적으로 이 청년에게 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두 번째 경우라면 이 청년은 칭찬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청년의 행위는 타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따라서 칭찬받아야 할 것은 이 청년이 자리를 양보하게끔 강제했던 주위의 시선이나 할아버지의 야단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의 깊은 독자들은 칸트의 자유 혹은 자유 의지라는 생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질 것이다. 실천 이성의 명령을 듣고 한 행위가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너는 젊은 사람으로서 노약자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것은 마땅하다라는 실천 이성의 명령 자체가 어쩌면 오히려 타율적인 것이 아닌가? 단지 실천 이성의 명령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내면에서 저절로 떠올랐다고 해서, 그 명령이 바로 나 자신이 나에게 내리는 실천 명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칸트가 우리가, 동일률이나 모순율과 같은 순수한 이론적 원칙을 자명한 것으로 의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실천 법칙을 의식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그는 너무 단순하고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자명하다고 의식하는 실천 법칙 혹은 도덕 법칙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원칙이다.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이런 순수한 도덕 법칙에 따라 지하철의 청년은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보편적 법칙으로 수립되어도 좋은 것이다라고 자신의 행위 준칙을 정하고,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는 것이다.

 

 

 

 

인용

목차

장자

원문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