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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 의미와 자유 - 2. 자유란 무엇인가?,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과 거부하는 것 본문

고전/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 의미와 자유 - 2. 자유란 무엇인가?,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과 거부하는 것

건방진방랑자 2021. 7. 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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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과 거부하는 것

 

 

칸트의 자유 개념에서 문제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내면에 떠오르는 실천 명령, 또는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자유와 양립 가능한 생각이냐는 것이고, 둘째는 순수한 도덕 법칙에서 등장하는 보편적 법칙이 과연 진실로 보편적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선 첫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앞에서 이미 우리는 정신분석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 중 특히 중요한 것은 전통적으로 양심의 소리, 또는 내면 깊이 울려나오는 소리란 다름아닌 공동체적 규칙이 내면화되어 이루어진 것, 즉 초자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즉 내가 판단하고 행위하는 것의 기준이 초자아라면, 결국 나의 행위는 자유롭다기보다는 구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초자아가 원하는 것이 타자 일반(=공동체 일반)이 원하는 것과 그 내용상 같은 것이라면, 여기서 나의 자유란 전혀 성립될 여지가 없을 수밖에 없다. 단지 나의 자유란 초자아, 실천 이성의 명령에 따를 것인가 또는 따르지 않을 것인가의 여부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만약 내가 초자아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되면 나는 의식적으로 악이라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초자아의 지배를 계속 받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악을 선택한 것에 죄책감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반면 내가 초자아의 명령을 따른다면 나는 선을 선택한 것이고 따라서 내면에서의 초자아의 칭찬, ‘그래 잘 했어. 일체의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렇게 자리를 양보하다니 너는 참 훌륭하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보람을 느끼기까지 할 것이다.

 

이제 두 번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순수한 도덕 법칙의 핵심을 이루는 보편적 입법이라는 원리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 앞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너는 젊은 사람으로서 노약자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실천 이성의 명령을 통해서 이 청년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했을 때, 만약 이 노인이 그 좌석을 양보받는 것을 싫어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 우리는 순수한 도덕 법칙 또는 실천 이성의 명령이란 단지 이 청년 내면에서 작동했던 유아론적 원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실천 이성의 명령이 내가 만나고 있는 타자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사실이다. 내가 자기만족이나 혹은 내면화된 초자아의 만족을 위해 타자와 관계한다면 이것은 과연 윤리적일 수 있는가? 오히려 초자아의 만족이 아니라 내가 삶에서 관계하는 구체적인 타자가 원하는 것을 부단히 파악하기 위해서 자신의 초자아의 작동을 약화시키는 것이 윤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의 사례에서처럼 우리가 좌석을 양보했는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양보를 거부했을 때,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 이런 회피적 행위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윤리란,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타자와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회피하고, 실천 이성이 내렸던 명령의 순수함을 보존하려는 초자아의 경향성 때문에 발생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보편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경험을 피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 입법의 보편성은 고정된 의미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정된 의미를 기준으로 올바른 의미와 그렇지 않은 의미가 갈라져 나오는 것이다. 칸트의 자유 개념이 책임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고, 나아가 법정의 구조와 유사했던 것도 바로 이런 보편적 입법의 원리라는 고정된 공동체의 의미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자유란 이 보편적 입법이 전제하고 있는 특정한 공동체의 의미를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것 사이의 결단 능력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칸트의 자유는 공동체의 규칙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려는 자유를 의미할 뿐이다. 사실 주체로 하여금 고정된 의미에 강제로 복종시킬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고정된 규칙이나 의미가 이미 주체에게는 초자아의 형태로, 즉 양심의 소리라는 형태로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가 권고하는 윤리적 행위에는 고정된 의미를 따랐을 때 외적인 칭찬이나 보상이 없었을 때조차도 내면의 칭찬, 혹은 초자아의 만족이라는 대가가 주어지게 된다. ‘그래. 할아버지가 비록 내가 양보한 좌석에 앉기를 거부했을지라도 나는 자유롭게 윤리적으로 행위했던 거야.’ 반대로 만약 내가 의식적으로 양심의 소리를 거부하고 그것에 반하는 행위를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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