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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라말려초시의 성격과 만당의 영향 - 1. 라말려초시의 일반적 성격, 1) 최치원과 라말의 유학생들: 최치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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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라말려초시의 성격과 만당의 영향 - 1. 라말려초시의 일반적 성격, 1) 최치원과 라말의 유학생들: 최치원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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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치원(崔致遠)羅末의 유학생들

 

최치원(崔致遠)이 당()에 유학할 당시에는 이미 유학생의 수가 수백명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이 가운데서 후세까지 이름을 전하고 있는 것은 불과 10여인이며 이들 가운데서도 시문(詩文)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최치원(崔致遠)ㆍ최광유(崔匡裕)최승우(崔承祐)ㆍ박인범(朴仁範)ㆍ최언위(崔彦撝, 仁滾) 등이 있을 뿐이다. 특히 최언위(崔彦撝)최치원(崔致遠)최승우(崔承祐)와 더불어 삼최(三崔)’로 불리운 문장가로서 고려가 건국한 뒤에도 문한(文翰)의 임()을 도맡아 궁전 누각의 액호(額號)를 모두 그가 선정하였다고 하지만 그러한 문자들 중 전하고 있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고려 충숙왕(忠肅王) 6(1337)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십초록(十鈔錄)(夾注名賢十鈔詩)에 그들의 시편을 전하고 있는 최광유(崔匡裕)최승우(崔承祐)ㆍ박인범(朴仁範) 등이 최치원(崔致遠)과 더불어 우리나라 시사(詩史)에 중요하게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려초까지도 생존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최승우(崔承祐)가 여초(麗初)에 문장으로 그의 행적을 남기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조(麗朝)에서의 발자취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인용

목차

서사한시

한시미학

16~17세기 한시사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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