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사팔척방(開聖寺八尺房)」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百步九折登巑岏 | 백보(百步)에 아홉 번 돌아 높은 산에 올랐더니 |
家在半空唯數閒 | 허공에 집 몇 간이 떠 있을 뿐이네. |
靈泉澄淸寒水落 | 맑디 맑은 샘물은 찬물로 떨어지고 |
古壁暗淡蒼苔斑 | 암종(暗從)한 낡은 벽에 푸른 이끼인양 얼룩졌네. |
石頭松老一片月 | 돌머리 소나무는 한 조각 달에 늙어 있고 |
天末雲低千點山 | 하늘 끝 구름은 천점산(千點山)에 나직하다. |
紅塵萬事不可到 | 세상만사 이곳에는 이를 수 없으니 |
幽人獨得長年閑 | 숨어 사는 사람만이 오래 오래 한가롭겠네. |
정지상(鄭知常)의 시작(詩作) 가운데는 사찰이나 누정(樓亭)을 소재로 한 것이 많거니와 그의 경물시(景物詩)를 대할 때마다 항상 한 폭의 스케치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유려(流麗)하게 뽑아낸 사경(寫景)의 솜씨는 문자 그대로 일창삼탄(一唱三嘆)의 감동을 어쩔 수 없게 한다. 이러한 그의 취향은 노장(老莊)을 좋아하는 삶의 본바탕과도 무관하지는 않을성 싶다.
그의 명편(名篇)은 대부분 요체구(拗體句)로써 성공하고 있으며 이 작품도 그러한 기법을 시범한 것 중에 하나다. 서거정(徐居正)이 일찍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요체(拗體)란 평자(平字)를 놓을 자리에 측자(仄字)를 바꾸어 쓰는 것이며 그것이 노리는 것은 어기(語氣)를 기건(奇健) 발군(拔群)케 하는 데 있다. 요체(拗體)로써 가구(佳句)를 얻은 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밑줄이 拗體의 例)
地應碧落不多遠 僧與白雲相對閑 「제등고사(題登高寺)」
石頭松老一片月 天末雲低千點山 「개성사팔척방(開聖寺八尺房)」
綠楊閉戶八九屋 明月捲簾兩三人 「장원정(長遠亭)」
浮雲流水客到寺 紅葉蒼苔僧閉門
秋風微京吹落日 山月漸白啼淸猿 「변산소래사(邊山蘇來寺)」
만당인(晩唐人)들이 이 체(體)를 즐겨 썼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지상(鄭知常)이 그 묘리(妙理)를 얻었을 뿐이다. 그 밖에 김구(金坵)도 이를 애용(愛用)했다 하나 실례(實例)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이수광(李睟光)이 그의 『지봉유설(芝峯類說)』 문장부(文章部)에서 요체(拗體)를 예증(例證)한 것도 이 가운데서 뽑은 것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