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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조선전기의 다양한 전개 - 3. 초기의 대가들(서거정)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전기의 다양한 전개 - 3. 초기의 대가들(서거정)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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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거정(徐居正, 1420 세종2~1488 성종19, 子元剛中, 四佳亭亭亭亭)은 뛰어난 재주를 타고나 일찍부터 그의 기재(奇才)가 중국에까지 알려졌으며 40여년을 관료로서 영예를 누리었다. 26년 동안 문형(文衡)의 자리를 고수하여 김수온(金守溫)강희맹(姜希孟)김종직(金宗直) 등 일시의 문장들이 그로 말미암아 진출의 길이 막혔다고도 하지만 그러나 대각(臺閣)의 높은 솜씨로 동문선(東文選)과 같은 선발책자(選拔冊子)의 편찬에 주역을 담당하였으며, 처음으로 시화(詩話)라는 이름을 붙인 동인시화(東人詩話)를 따로 편찬하여 사장(詞章)의 재능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동문선(東文選)을 편찬할 때의 서거정(徐居正)은 이미 효용론자(效用論者)로 급선회하였지만 동인시화(東人詩話)를 편찬할 때의 서거정(徐居正)은 분명히 보기 드문 기상론자(氣象論者)였다. 그래서 그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행한 비평의 양상도 대체로 풍골(風骨)과 사어(詞語) 용사(用事)점화(點化)의 기술에 이르기까지 예술적인 경계를 두루 포괄하는 여유와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동인시화(東人詩話)권하 45에서 그는 ()는 소기(小技)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세교(世敎)에 관계되는 것은 군자(君子)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것이라[詩者小技. 然或有關於世敎. 君子宜有所取之]’하여 오히려 구제론(救濟論)을 펴는 여유를 보이고 있으며 이것도 전편(全篇)에서 단 한 번 언급했을 뿐이다.

 

그의 시작(詩作)은 대체로 부염(富艶)한 것으로 정평(定評)이 나 있지만 그의 오랜 관료 생활 때문에 평가(評家)들의 관심권에서 소외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감(藻鑑)으로 이름 높은 신흠(申欽)허균(許筠)은 그를 정이오(鄭以吾)이첨(李詹) 이후 조선초기의 제일대가(第一大家)로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는 애써 신경(新驚)을 쫓는 모험을 거부하고 스스로 옛사람을 배워 품위있는 아름다운 표현을 익히는 일에 힘써 대가(大家)의 풍도(風度)를 잃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술회(述懷)한 것을 들어보면, 그는 병중에 한가하게 있을 때에는 하루에도 34수 혹은 67수 또 10수가 넘는 때도 있었다 하며, 가업(家業)을 이을 어진 자손이 없어 자기의 시작(詩作)이 마침내 장독의 덮개가 될 줄을 알면서도 스스로 읊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것을 탄식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다음 시편(詩篇)에 더욱 명료하게 나타난다.

 

시성자소(詩成自笑)는 다음과 같다.

 

一詩吟了又吟詩 시 한 수 읊고 나면 또 다시 읊고
盡日吟詩外不知 종일토록 시 읊는 일 그 밖에 아는 게 없네.
閱得舊詩今萬首 지금까지 지은 시 만 수나 되는데
儘知死日不吟詩 죽는 날엔 읊지 못할 것 다 알고 있지. 四佳集29

 

겉으로는 엄숙하게 효용론(效用論)을 외쳤지만 무료한 시간에는 시() 짓는 일외에는 따로 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만수(萬首)나 시()를 읊고도 죽는 날까지는 시()를 짓게 되리라는 솔직한 심정(心情)의 토로(吐露).

 

서거정(徐居正)의 시편(詩篇)은 후대의 선발책자(選拔冊子)에서 20여수를 뽑아주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일즉사(夏日卽事)(七律), 칠월탄신하례작(七月誕辰賀禮作)(七律), 춘일(春日)(七絶), 고의(古意)(七古) 등이 명편(名篇)으로 꼽히고 있으며 추풍(秋風)(五律)유봉비부정 한압수상의(遊峰飛不定, 閑鴨睡相依)’는 특히 가구(佳句)로 훤전(喧傳)되어 온 것이다.

 

하일즉사(夏日卽事)는 다음과 같다.

 

小晴簾幕日暉暉 반만 개인 햇살이 주렴에 비치는데
短帽輕衫暑氣微 짧은 모자 가벼운 적삼에 더운 기운이 스미네.
解籜有心因雨長 껍질 벗은 죽순은 비를 맞아 자라고
落花無力受風飛 떨어지는 꽃잎은 바람을 받아 나네.
久拚翰墨藏名姓 오래전에 붓 던지고 이름도 감추었으며
已厭簪纓惹是非 벼슬길에 시비하는 일 이미 싫어졌다..
寶鴨香殘初睡覺 향로불 가물가물 첫잠을 깨었는데
客曾來少燕頻歸 찾는 손은 본래 적고 제비만 자주 돌아오네.

 

춘일(春日)은 다음과 같다.

 

金入垂楊玉謝梅 누른 빛 버들에 들고 흰 빛은 매화를 떠나는데
小池新水碧於苔 작은 연못 봄물은 이끼보다 푸르네.
春愁春興誰深淺 봄 시름 봄 흥취 어느 것이 깊고 얕은가?
燕子不來花未開 제비가 오지 않아 꽃도 아직 피지 않네.

 

풍부한 그의 말솜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는 것이 하일즉사(夏日卽事)라면 춘일(春日)은 한마디로 그의 첨예한 재주와 호탕한 기상을 함께 읽게 해주는 작품이다. ‘금입수양옥사매(金入垂楊玉謝梅)’는 뛰어난 색채감각이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연자불래화미개(燕子不來花未開)’에 이르러 모처럼 그의 호탕을 실감하게 한다. 제비가 오지 않아 꽃도 아직 피지 않는다고 한 풍도(風度)가 그것이다.

 

이는 그의 시가 송시권(宋詩圈)에만 갇혀있지 않았음을 사실로 증명해 준 것이다. 그는 문형(文衡)다운 솜씨로 응제시(應製詩)에도 뛰어나 칠월탄신하례작(七月誕辰賀禮作)과 같은 명작(名作)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의 평담(平淡)한 구법(句法)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의심한 평가(評家)들도 있었지만【『용재총화(傭齋叢話)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막연하게 언급한 것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제졸고후(題拙稾後)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해명해 주고 있다.

 

文章體格似詼諧 문장 체격 우스꽝스러워
自愧才名價日低 이름값 떨어지는 것 스스로 부끄럽기만 하네.
老去放翁餘舊癖 늘그막에도 육유(陸游)의 옛 버릇은 남아 있고
愁來王粲有新題 근심스러울 때엔 왕찬(王粲)의 새 시()가 기다리고 있네.

 

그의 시의 평담(平淡)이 육방옹(陸放翁)에게서 온 것임을 스스로 실토하고 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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