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7년(명종2)에 정렴(鄭磏)ㆍ정작(鄭碏)ㆍ박지화(朴枝華)가 함께 봉은사(奉恩寺)를 놀러가면서 배안에서 지은 시에는 이들의 긴밀한 친분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먼저 정렴의 「휴박군실지화사제군경 향봉은사 주중작(携朴君實枝華舍弟君敬, 向奉恩寺, 舟中作)」부터 본다.
孤烟橫古渡 落日下遙山 | 외로운 연기 옛 나루에 빗기고 지는 해는 먼 산에 떨어지네. |
一掉歸來晚 招提杳靄間 | 외로운 배 느지막히 돌아오는데 절은 아득한 노을 사이에 있네. |
이 시는 『국조시산(國朝詩刪)』ㆍ『기아(箕雅)』ㆍ『대동시선(大東詩選)』에 모두 선록(選錄)되어 있는데 허균(許筠)은 이에 대해 “그 시람은 기이한데 시 또한 맑고도 고원하다[其人異也, 詩亦淸遠]”라 했다. 정렴(鄭磏)이 노을이 질 때 배 안에서 멀리 보이는 봉은사(奉恩寺)의 모습을 탈속(脫俗)의 분위기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음에 비해 박지화(朴枝華)는 자연물과 동화하려는 정신적 지향을 보이고 있다.
孤雲晚出岫 幽鳥早歸山 | 구름은 저녁에 산동굴에서 나오고 새는 일찍 산으로 돌아가네. |
余亦同舟去 忘形會此間 | 나도 함께 배를 타고 떠나가니 이 사이에서 때마침 이 몸 있는 줄도 잊었네.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보이는 “운무심이출수 조권비이지환(雲無心以出峀, 鳥倦飛而知還)”을 점화(點化)하여 서경(敍景)으로 기(起)ㆍ승구(承句)를 구성하고 전(轉)ㆍ결구(結句)에서 자연과 함께 동화된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日暮暝煙合 蒼茫山外山 | 해 저물어 어둠과 이내 잘 어울리고 아득히 산 밖에 또 산이 있네. |
招提問何處 鐘定翠微間 | 묻노니 절은 어느 곳에 있는지, 종소리 산중턱에서 그친다. |
정작(鄭碏)은 이때 나이가 열다섯으로 ‘산외산(山外山)’을 찾고자 하는 지향과 아울러 장형(長兄)과 사부에게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것을 묻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평보유(詩評補遺)』에서는 이 세편의 시를 비교하면서 북창(北窓)의 시가 다른 둘에 비해 당시(唐詩)의 수준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鄭磏(北窓, 溫陽人, 縣監. 嘗携其弟古玉碏朴守菴枝華)向奉恩寺, 舟中作詩曰: ‘孤烟橫古渡, 落日下遙山. 一掉歸來晚, 招提杳靄間.’ 守菴次之曰: ‘孤雲晚出岫, 幽鳥早歸山. 余亦同舟去, 忘形會此間’ 古玉次之曰: ‘日暮暝煙合, 蒼茫山外山. 招提問何處, 鐘定翠微間.’ (北窓最逼唐) -『詩評補遺』 上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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